협소 주택이니 당연히 주방도 작다. 가끔 내가 요리를 할 때도 있어서 아내에게 주방만큼은 좀 크게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했는데 통하지 않았다. 손님 오는 날이 며칠이나 되고 평상시에는 저 정도면 충분하다는 논리였다. 평창동 저택이나 청담동 50평대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집 주방을 보고 너무 놀라 손으로 입을 막을지도 모른다. 싱크대 옆으로 오른쪽은 개수대를 놓는 공간이니 여유 공간 없음. 왼쪽에는 작은 공간이 있지만 컵이며 젓가락, 과일칼 담은 용기가 놓여 있어 콩나물 다듬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인덕션. 그곳에서는 밥도 하고 된장국도 끓여야 하니 또 제외. 그 옆으로 작은 공간이 있지만 키친 크로스며 행주며 아이들 그림일기장과 책이 올라가 있을 때가 많다.
그런 주방 앞에 서면, 휴, 도무지 요리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엄무도 안 난다. 이런 곳에서 뭘 한단 말인가. 가끔 생각한다. 아니, 내 아내는 언제부터 요리에 흥미를 잃었단 말인가. 어떨 때는 화가 나고, 또 어떨 때는 따뜻한 밥 한 끼 얻어먹기가 이렇게 힘들 일인가 통탄스럽다. 다른 집들은 주방을 크게 만들어 사람들과 음식 나누어먹는 걸 소확행으로 여기던데 그녀는 왜 밥상 차리는 것에 관심이 없을까? 맞벌이로 심신이 피곤한 건 이해하지만 점심을 늦게 먹어서 생각이 없네, 자기만 애들하고 알아서 먹어, 난 좀 누울게 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솔직히 짜증이 난다.
그저 밥상에 같이 앉아 밥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
분위기 좋을 때, 농담 삼아 "자기야 왜 이제 요리 안 해?"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아내는 늘 빠듯하게 살림을 하던 버릇 때문에 요리를 하고 싶지 않게 됐다고 했다. 오랫동안 우린 외벌이였다. 아내는 살림을 했고, 나는 잡지사 기자로 일했는데 벌이가 뻔하다 보니 식재료를 사는 데 풍덩풍덩 돈을 쓸 수 없었다. 반찬값 포함해서 그녀의 한 달 생활비는 70만 원 정도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증액된 것이고 신혼 초에는 아내에게 15만 원 정도를 줬던 것 같다. 지금 들으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금액인데 15년 전에는 또 어떻겠든 됐다.
그 금액 때문에 몇 번 큰 싸움을 했다. 친구 부부와 만나는 날이면 남편 흉보기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다. 쪼잔하다느니, 양말을 뒤집은 채로 세탁기에 던져 놓는다던지,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를 안 해 준다던지... 그런 아내들 옆에서 남자들은 초등학생처럼 밥을 잘 안 차려주네, 맨날 외식만 하자고 하네 또 불평을 늘어놓는다. 생활비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왔다. 친구 아내는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를 쓴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평소 부처처럼 차분한 아내도 "그것 봐. 자기야. 물가가 그렇다니까. 장 한 번 보고 나면 5만 원이 쉽게 깨져."라고 말했다.
그때 잠자코 있었으면 될 것을 나는 그 말이 너무도 상투적이고 뻔한 말이라고 생각해 "내가 장 봐 올 때도 많잖아. 퇴근길에 맨날 뭐 필요한 거 있어? 물어보고, 외식할 때도 내가 많이 내고. 다 돼요, 돼" 하고 깐족거렸다. 그다음 순서는 분노의 역류. 아내는 됐다며, 어떻게 자기변호하기 바쁘냐며, 그럼 앞으로 직접 요리하고 살림을 하라며, 차갑게 화를 냈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먼저 가겠다고 친구 집을 나온 적도 있다. 그런 아내를 길거리까지 쫓아가 붙들고 미안하다며, 앞으로 안 그러겠다며 사정했던 날도 떠오른다.
여하튼 그 짠내 나는 세월을 수년간 견디면서 아내는 서서히 요리에 흥미를 잃은 듯했다. 고기 한 번 살려다가도 다음에 먹자, 하고 내려놓은 때도 많았다고 했다(아이고 글이 왜 이리 신파조로 흐르는가). TV에서 뚝딱뚝딱 한상 거하게 차려내는 주부를 보거나 인스타그램에서 요리 솜씨를 뽐내는 이들을 부럽게 보고 있으면 의중을 읽은 아내가 그런다. "자기야 좋은 식재료를 별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요리도 재밌게 하는 거야. 파스타 한 번 만들려고 해도 토마토소스며 치즈며 좋은 걸로 넣고 싶은데 그게 다 돈이면 선뜻 만들고 싶지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으면서도 '뭐 그럼 요리는 부자들만 할 수 있나?' '오이무침이며 어묵볶음이며 맛있게 잘하는 주부가 얼마나 많은데' 생각한다. 유아적인 거지.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아내는 살림 가게를 시작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 그녀는 이쁜 옷도 사고 PT도 등록했다. 건강하게, 이쁘게, 잘 살고 싶다면서.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다면서. 가게도 바빠지면서 내가 밥상을 차리는 날이 많아졌다.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 판다고 배가 고프고 맛있게 밥은 먹고 싶으니 어묵 볶음이며 계란 말이며 김치찌개 같은, 맛없기가 힘든 기본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영특하게도 "맛있네, 정말 맛있어, 자기 요리에 자질 있는 것 같아~"하면서 나를 길들였다. 주방과 더 친해지도록,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고 이왕이면 아이들과 자기 밥까지 차려내도록.
바야흐로 내가 주방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고 그런 채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좁은 주방을 보고 있으면 영 의욕이 안 생긴다. 여성들이 왜 크고 좋은 주방을 원하는지, 좋은 식재료를 마음껏 사지 못했던 아내가 왜 요리에 점점 흥미를 잃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아내에게 제법 진지하게 인덕션 쪽으로든, 개수대 옆으로는 재료 손질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무심하게도 "괜찮아, 수저랑 컵 놓는 공간을 다 치워줄게, 거기서 해"라는 말만 돌아온다. 아, 그녀는 이렇게 그 긴 세월 짠내 나게 살았던 시간을 나에게 복수하듯 되돌려주는 걸까? 아님 그 옛날의 나처럼 본인이 직접 경험을 하지 않으니 실감하지 못하는 걸까?
다른 공간은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데 주방은 볼 때마다 답답~ 하다. 주방 옆으로는 아주 작은 욕조가 있는데 그걸 없애고 다 주방으로 계획했으면 이렇게까지 비좁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욕조는 아내가 신혼 때부터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라 차마 없애자고 말을 할 수 없었는데, 말이라도 해 볼 걸 그랬나 생각한다.
아내에게 밥 얻어먹는 건 얼마쯤 깨끗이 포기하고 이제 으레 껏 밥상을 차린다. 그러다 보면 한 번씩, 밥 좀 해 주지, 아 짜증 나 하고 울컥 분노가 치민다. 그럴 때면 남자들은 참 뼛속 깊이 밥상에 대한 환상과 로망이 있는 듯하다. 뜨끈하고 맛있는 밥을 정성껏 차려 내 "자기야 밥 먹어~" 하며 남편을 부르고, 아내는 그 옆에 앉아 행복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 금쪽같은 아들이었을 때 엄마가 차려줬던 밥상이며, 손길, 그 포근한 기억이 뇌세포 하나하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 같다. 위장이 약한지 속앓이를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닭죽을 끓이고 전복죽을 끓여 "막둥아 밥 먹자, 힘들더라도 먹어 봐, 먹어야 나아, 어서, 어서 일어나" 하고 아들을 챙겼다. 왜 안 먹냐고, 그렇게 못 먹어서 어쩌냐며 닭죽을 옆에 두고 우신 적도 있다. 그랬던 시절이 오버랩되면서 추락하듯 곤두박질친 지금의 상황에 화가 나고 서운한 감정이 종종 거세게 올라온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이가 나는 '성인' 같다. 그야말로 자립적 인간 아닌가 말이다. 나도 그래야 하는데 영 쉽지가 않고, 한 번씩 아내가 큰 맘먹고 밥상을 차리는 날이면 그전부터 기분이 너무 좋아 방실방실 초등학생이 된다. 아, 오늘 점심은 또 뭘 먹나. 끼니 걱정 안 해도 되니, 아, 여행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