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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an 09. 2019

김군, 당신은 누구십니까.

다큐 <김군>의 역사와 개인을 다루는 방식

극우 논객 지만원이 '광수 1호'라고 칭한 광주 5·18 항쟁의 무장 시민군.


 흑백 사진의 청년은 매서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철모 위에는 표어가 적힌 흰 두건을, 목 둘레에는 수건을 칭칭 감았습니다. 경계심이 곤두서있는 이 청년을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광주 5·18 항쟁을 대표하는 사진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는 밝혀진 적 없습니다. 극우 논객 지만원은 이 청년을 ‘광수 1호’라고 지칭합니다. 그는 5·18 항쟁이 1980년 광주로 남침한 북한 간첩들의 소행이라고 폄하해왔는데, 청년의 존재를 북한군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얼굴인식’ 기술을 들먹이며 기록사진 속 무장 시민군의 얼굴과 북한의 현 고위급 관리들의 얼굴이 일치한다고 설명합니다. 그가 2, 3, 4 … 의 번호를 매긴 ‘광수’들은 모두 북한 특수군인인 셈입니다. 정말일까요? 사진 속 이들은 반박하지 못합니다. 


 <김군>은 지만원의 주장에 의심을 품고 사진 속 시민군의 행방을 추적해가는 다큐멘터리 입니다. 지만원의‘광수’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 속 실존인물들을 찾는 작업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수 1호’로 지칭된 상징적인 인물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었습니다. 군용트럭을 몰고 무기를 보유했던 무장 시민군의 행방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감독은 당시 항쟁의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범위를 좁혀나갑니다. 막걸리집을 운영했던 사내에게서 종종 손님으로 찾아왔던 그를 ‘김군’이라고 불렀음을 듣게 됩니다. 하천의 굴다리 아래에서 천막 생활을 했던 그와 그의 친구들은 고아원 출신의 넝마주이였다는 증언도 듣게 됩니다. 




다큐 <김군>의 장면, 장면들.




 다큐의 감독은 정형화된 시선을 가지지 않고 5.18 항쟁과 이에 참여했던 개인들을 들여다봅니다.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는 뚜렷한 정치 사상을 가지지 않은 이들도 존재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전두환’이 어떤 사람인지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을 뿐, 그들을 행동하게 한 건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비참한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증언은 정치적, 이념적 해석이 짙게 투입된 역사의 사건에서 기존의 규범으로 설명되지 않는 개인들을 조명합니다. 시민군의 일부가 끝까지 무장해제에 저항했던 이유는 그들이 시민군이라는 지위를 버릴 때 사회적 인정과 관심-넝마주이였던 그들은 잃을게 없기도 했지만 한번도 그런 특권의 위치에 놓여있던 적이 없었으므로-이 함께 사라진다는 불안이 작용했다는 고백도 들려집니다. 항쟁에는 결코 열정의 투사나 무고한 희생자의 모습으로 규정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맥락의 개인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사건이 역사화되는 과정에서 이 다층적인 개인의 이야기는 모두 삭제되어 버리고 말죠. 마치 상징적인 이미지로서의 김군만이 남고, 진짜 그의 존재는 뒤편으로 밀려나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감독은 증언과 사진 속 단서들을 추적하여 ‘광수’로 폄하되던 시민군들을 찾아냅니다. 사진의 ‘광수 1호’ 또한 발견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이 추적의 과정 속에서 지워진 한 존재를 발견합니다. 바로 군인에 의해 논밭에서 사살된 한 명의 시민군. 누구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는, 공개 증언에서 지칭됐던 ‘김군’으로 계속해서 불려집니다. 그의 시신이 어디로 운구되어 묻혔는지도 알아내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김군의 정체는 영원히 밝혀지지 못한채 남아있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호명되지 못하고 잊혀지는 수많은 ‘김군’ 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이 ‘김군’들을 찾으려는 시도-기록되지 못한 개인과 그 서사를 탐구하려는-가 이어질 때 역사의 이면이 드러날 것입니다. 적어도 현재의 정치와 욕망에 간편히 이용되진 않겠지요. 다큐멘터리 <김군>이 시사하는 것처럼요. 이들을 다시 역사로 불러들이려는 감독의 신중한 태도는 카메라의 짐짓 멀고 침착한 움직임에서도 읽혀집니다. 풍경을 전경화하는 시선, 증언자들과 유지하는 긴장감, 다큐 마지막에 자동으로 닫히는 차단문까지. 





영화 <택시운전사>의 스틸컷. 



 우연찮게 <김군>을 관람한지 얼마 안돼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송강호 주연, 2017)를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광주의 참상을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지만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집단 총살 장면이나 자동차 추격전 등의 극적인 장면들은 충격과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됐을 뿐, 그 사건을 재현하는 데 있어 윤리적인 숙고는 결여된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5·18 항쟁이 상업영화의 극적 소재로 쓰인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택시운전사 김사복과 힌츠페터 기자는 광주의 외부인입니다. 광주가 삶의 터전이 아닌, 목표를 위해 거쳐가는 장소라는 제약을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그럼에도 영화가 뻔한 눈물을 강요하지 않고 더 섬세한 성찰을 주기를 기대했던 건 과욕이었을까요. 사실 그날 그곳에 있지 않았던 이상, 우리 모두는 광주의 ‘외부인’ 입니다. 그러나 같은 외부인의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택시운전자>의 전략과 <김군>의 결정은 달랐습니다. 무엇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인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김군> (강상우 감독, 2018)은 2018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살아남은 아이>(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가 선정하는 2018년 올해의 독립영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올해 5월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많은 분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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