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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이 SG Oct 20. 2022

상하이 출신 아내 덕분에 한국 대기업에 취직한 사연

상하이 여자 vs. 한국 남자

내 아내다. 원래 이렇지 않았다. 나를 만나 고생후 부어서 그런것 뿐이다.

영어는 못하지만 운이 좋게 글로벌 기업에 다녔다. 

사실 외국계 기업도 메일만 100% 영어로 쓸분 실질적인 대화는 모두 한국어로 하니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15년전 당시 글로벌기업이면 대부분 하던 SAP ERP 드디어 내가 다니던 기업도 1,000억을 투자하여 SAP 시스템을 셋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본사를 비롯하여 중요한 국가부터 하나씩 시스템을 깔고 있었다. 표준화와 각 나라의 특성을 반영하면서 말이다.


Wave 4라며 중국과 한국은 4번째로 작업을 시작했고, 각 국가의 해당 업무 담당으로 10명이 차출당했고, 6개월간은 기존업무에 손을 떼고 SAP 만 전념해서 셋팅하는 업무가 주어졌다. 당시 중국은 성장하는 국가, 한국은 정체된 국가 모든 관심이 중국에 맞춰졌음은 물론이다.

미국 본사 인력과 딜로이트 컨설턴드도 함께 지원을 하며 업무를 진행했다. 두그룹의 고급인력이 중국과 한국 모두 출장을 다니기에는 효율도 떨어지고 비용도 낭비였다. 저렴한(?) 너네 한국인력들이 중국에 와서 함께 작업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얼떨결에 그 해당 인력 10명은 중국에서 6개월간 먹고자며 일을 하게 되었다. 생산관리, 생산, 구매, 재고관리, 회계 마스터 데이터 관리, 세무, 경영계획&분석, 원가, 전체 마스터 데이터 관리 등의 업무였다. 


차출된 중국 인력중 유일한 미혼인 아내, 차출된 한국 인력중 유일한 미혼이었던 나

자연스럽게 관심을 받았고, 귀여워 호감이 갔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살려고 미쳐서 중국어 한마디도 못하면서 중국까지 오게 된 나, 나를 받아주는 곳은 어느 도시든 갈 준비가 되었고, 여러곳을 지원하다 드디어 남경이란 곳에 일할 기회가 생겨 2년 6개월간 일하게 되었다.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당시 다니던 회사는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았고, 하루 24시간 생산을 돌리고 있던 터라 하루하루가 전쟁터였다. 하루 16시간 일하던 때라 아내를 돌봐줄 상황도 여력도 되지 않았다. 처가가 있는 상하이의 장모님 댁으로 갔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서 2주일간은 좋았다. 자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2주가 지나가니 내가 뭐하나 싶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나 혼자 살다니, 이럴려고 중국에 왔나 싶었다. 게다가 회사가 안정이 되고 일요일은 쉴 수 있게 되자 매주 왕복 600km를 운전해서 토요일 남경에서 상하이로 왔다가 일요일 저녁 남경으로 복귀하는 삶이 지속되었다. 피곤하기도 했다. 


때가 되었다 싶었다. 아직 중국어는 부족해서 이직이 쉽진 않으나 더 이상 기다릴 순 없었다. 상하이로 이직할 자리를 알아보았고 마침 기회가 생겼다. 


한 대기업에 면접을 보았고, 취직이 되었다. 

면접후 결과가 좋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다만 면접에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중국인과 국제 결혼한 나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들이 있었다는 점과 생각보다 질문과 관심이 과했다는 점이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상하이에서 그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당시 포지션이 지원팀장이었다. 말이 지원팀장이지 보고자가 법인장님이었고, 관리, 지원관련 모든 업무를 맡은 말하자면 구매, 인사, IT, 재무, 관리, 인사, 총무업무의 직원역할부터 CFO 역할까지 해야 하는 업무였다. 총 19명 그중 내 직속 직원들이 7명 있었으나 막 성장하기 시작한 회사라 능력이 부족한 직원들이 대부분이었고 말이다. 그때 나를 면접 보았던 분은 법인장님과 다른 한분은 2개 법인 자회사의 법인장님으로 있던 영업책임자였다. 재미있고 성격도 좋은 분이었다. 지원팀장이다보니 당시 나와 함께 면접을 보았던 다른 2분에 대한 평가 그리고 나의 채용 품의서를 보게 되었다. 살펴보니 나를 포함 3명의 경력이나 정황들은 비슷비슷했다. 굳이 나를 뽑을 이유는 보이질 않았다. 3명중 어느 누구룰 뽑아도 될 정황이었다. 궁금했다. 법인장님에게 여쭤보긴 부담스럽고 친해진 영업책임자 분께 여꿔보았다. 


"명선(가명)님~ 저랑 면접본 분들 보니 경력 등 비슷비슷하던데 왜 저를 뽑으셨어요?"

"비슷비슷한게 아니라 3명중 당신 뽑는거 한국재무팀장은 반대했어. 당신의 재무경력이 가장 부족하다고 말야."


"그래서요?"

"그래서 뭔 그래서야~ 그래서 내가 당신때문에 고생했지. 전화로 설명하고 메일도 많이 쓰고 그랬지. 그래서 그때 의사결정이 늦어진거야. 그때 많이 기다렸지?"


"예. 분위기 좋아서 전 금방 결과가 나올지 알았는데 면접후 3달이나 기다리긴 처음이었어요."

"그때 중요한 포지션이라며 중국 현지에서 채용을 하는 것이 맞을까? 혹은 한국 재무팀에서 별도로 보낼까? 고민을 했거든. 근데 법인장님이 여기 중국에 있으려면 무조건 중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보내는건 안된다고 강력히 반대했어"


"아~ 예. 그럼 그건 그렇고 3명중 왜 저를 뽑았어요?"

"아~ 그거~ 당신이 상하이 여자랑 결혼해서."


"예?"

"정확히 말하면 상하이 여자랑 결혼해서 2년 넘게 살았는데 아직 이혼하지 않아서."


"이해가 안되는데요?"

"나랑 법인장님은 상하이 여자들 보고 와~ 이런 여자들과 어떻게 사냐~ 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 밥도 안해, 성격도 쎄~ 단 하루도 못살것 같은데 근데 당신은 2년 넘게 살았고 아직 이혼안했잖아"


"..."

"그정도 참을성이면 막 성장하는 회사 그리고 갖춰진게 없고 하나하나 만들면서 일을 해나가면 왠만하면 지치고 힘들어서 나갈꺼거든... 그래서 일을 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참을성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


"ㅎㅎ"

"힘들어도 최소한 2~3년은 회사 안나가고 버틸 수 있는 사람말야. 그게 당신이라 판단했지"


이 이야기를 듣고 아내에게 해주었더니 깔깔 거리며 웃는다.


결국 그분들이 맞긴 했다. 

내 직장 인생중 가장 오래된 직장생활이었다. 그동안은 3년 => 3년 => 2년 6개월 로 보통 3년 근무했는데 이 직장에선 무려 6년을 했으니 말이다. 내가 퇴사할때 보니 나보다 오래 근무한 한국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상 한국이었다면 입사하기 불가능했던 그리고 한국에서 취준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매년 입사하고 싶은 기업 5위안에 드는 기업을 아내 덕분에 입사하게 된 경험을 공유해 봅니다.



p.s 제 개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지 중국 혹은 중국인의 전반적인 성향을 설명하는 글은 아니니 재미로만 혹은 참고로만 읽어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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