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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Jul 11. 2021

1. 양말의 주인은 주영이었다.

밤색 양말 한 짝

양말  짝이 보인다. 열차 출입문 바로  빈자리에. 밤색의 목이  양말이 좌석 끝에 반쯤 걸쳐져 있다. 발목 부분에 프랑스어로  문장이 자수로 놓여 있다. 멀리서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진 체크무늬 같다. 자세히 보면 청포도색, 올리브색, 잔디색, 솔잎색으로 단어마다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양말의 주인은 주영이었다. 주영은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그 양말을 손에 들고 나왔다. 급하게 나오느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자마자 지하철이 도착했다. 주영은 양말을 신을 적당한 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출입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했다. 몸이 약간 흔들릴 때 주영은 자신의 신발을 봤다. 양말을 신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끈이 긴 신발이었다. 역에 내려서 편하게 신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영은 출입문 옆 빈자리에 앉았다. 잠깐 눈을 붙이려다가 잠에 들었다. 세 정거장이면 도착하는 곳이었지만 주영은 전날 늦게까지 깨어있었기 때문인지 그 짧은 시간에도 눈이 감기고 고개가 숙여졌다. 역에 도착했다는 목소리에 잠에서 깬 주영은 서둘러 일어났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다. 보도블록을 밟으며 찬 공기를 깊이 마셨다. 일월 중순인 것치고는 따뜻한데, 이상하게 발만 시리다고 생각한 순간 주영은 자신의 손을 확인했다. 양말 한 짝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영화관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조금 여유가 있었다. 양말도 신지 못하고 급하게 나온 덕분이었다. 주영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개찰구 앞에서는 잠시 고민했다. 교통카드를 찍자 삑, 하고 소리가 울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서 주영은 전화를 걸었다.


“제가 방금, 뭘 잃어버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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