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색 양말 한 짝
가방이요? 아니요, 양말이요. 양말 박스인가요? 아니요, 양말 한 짝인데요, 지하철에 두고 내린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인데, 찾을 수 있을까요? 아 네, 양말 한 짝을요.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승차했던 시간이나 객차 칸 번호 알고 계시면 말씀해 주시고요, 어떤 양말이죠? 주영은 머뭇거렸다. 발목 부분에 프랑스어 문장이 자수로 놓여 있는, 목이 긴 밤색 양말이에요. 자수는 글자마다 색이 조금 다른데요, 전체적으로는 초록색 계열이고, 그게 청포도색이기도 하고 솔잎색이랑 잔디색이기도 하고.
“아 네, 밤색 양말 한 짝이요. 알겠습니다.”
밤색 양말 한 짝. 그렇게 요약된 말을 들으니 주영은 자신이 그런 양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고, 다시 설명하고 싶었다. 그것보다 더 구체적인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주영이 사진도 보내드릴까요? 라고 물어보기 위해 다시 숨을 짧게 들이마셨을 때 전화가 끊겼다. 주영은 승강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판기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도 가까이 다가갔다. 같은 층에 있는 모든 쓰레기통을 한 번씩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양말은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양말 한 짝은 가방 깊은 곳에 넣었다. 주영은 일 번 출구로 나왔다. 편의점에 들어가 연한 회색 양말을 구입했다. 포장지를 열어 꺼내보니 복숭아 뼈가 드러나는 짧은 길이였고 발바닥 부분에 연노란색 줄이 촘촘하게 그어져 있었다. 주영은 전자레인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양말을 신었다. 편의점을 나오자 바지와 양말 사이로 드러난 발목이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