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각로 강성길 Nov 24. 2017

설거지 본질, 2가지

설거지 교대론

설거지 교대론     


음 ~ 그래, 좀 어렵지만,

설거지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카뮈의 '이방인'과 그리스 신화 ‘시시푸스(Sisyphos)의 형벌’의 의미를 살펴보자.     


카뮈의 이방인에 의하면 이 세상은 비합리적으로 되어있다. 그 속에 사는 나약한 인간은 ‘부조리(Absurdity, 不條理)’를 느끼지 못하고 허무한 의무(회사(단체), 가정, 남녀 등에서 ‘성실’), 관념(진보와 보수, 이념논쟁, 지역주의 등), 이론 등 즉, 본질만 쫓아가는 삶을 산다.      


설거지에 뚱딴지같은 카뮈의 이방인을 등장시켰다. 쉽게 풀어보면 태양 아래 인간은 천천히 걸으면 일사병에 걸리고, 빨리 걸으면 땀이나 탈수병에 걸린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순된 세상을 카뮈는 ‘부조리’라고 보았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의 이유가 그래서 ‘태양(우울증)’이라고 하였다. 이 부조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깨닫지 못하고 회사(단체), 가정, 남녀 등에 의무와 진보와 보수, 이념논쟁, 지역주의 등 관념이나 이론 등을 추구하는 생활만이  삶의 본질인양 착각하고 산다. 여기에 설거지를 슬며시 넣어보자. 허무한 의무를 빙자한 남녀 역할 구분에 ‘성실’까지 비벼 넣어 익숙한 사회적 관습 비빔밥이 된 지 아주 오래전이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도시국가) 중 하나인 코린토스의 왕인 시시푸스(Sisyphos)는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그는 교활한 사나이로 못된 짓을 많이 한 탓으로 저승의 왕 하데스는 그 형벌로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했는데, 산꼭대기에 이르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이러한 고역을 영원히 되풀이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여기에 설거지를 다시 한번 넣어보자. 고풍스러운 찬장(부엌 수납장)에 가지런히 놓인 깨끗한 그릇(산꼭대기)이 가족의 성스러운 식사 때마다 쓰이고 나서 다시 찬장(부엌 수납장)의 제자리에 가기까지 과정이 또 다른 모습의 시시푸스(Sisyphos)의 커다란 바위 산꼭대기 올리기 아닌가? 교대가 없는 주부는 죽기 전까지 말이다. 


위 2가지 본질을 함유한 설거지에 이번에는 지구를 끌어들이자.  우리나라 2016년 가구 수는 1984만 가구이다. 적어도 한 가구에 3번씩 설거지를 한다 하면 19,840,000(가수수) ×3(회)=59,520,000 엄청난 숫자가 나온다. 여기에 한번 설거지에 1g 정도 세제만 줄여도 지구는 충분히 건강해진다.     


이제 설거지 본질로 들어가자. 우선 설거지 그릇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를 자박지(개수대) 허드레 물을 이용하여 깨끗하게 휭거 낸다. 설거지의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인데 이 과정만 제대로 하여도 세제 사용은 이미 60% 정도는 절약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유는 음식물 찌꺼기가 엄청난 세제를 먹는 하마이기 대문이다. 이 부분에서도 생선과 관계한 그릇과 기름에 연루한 그릇은 각각 분리하여 기름은 휴지로, 생선 관련 그릇은 끓인 물로 닦아 준다.


다음에는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그릇을 반드시 안과 밖(쌓아놓기 때문)을 같은 정도로 깨끗하게 닦은 다음 이미 받아놓은 자박지(개수대) 물에 바로 넣는다. 그래야 세제가 바로 그릇에서 찌꺼기와 세제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이 두 과정이 정상적으로 성숙하게 진행되었다면 그 이후는 개인의 취양에 따라 흐르는 물에 2~3회 정도 휭구기를 하면 된다.       


설거지에 대한 구체적인 부분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군다나 위에 전제한 2가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태양이 우울증이고 설거지가 시시푸스의 형벌이라는 것을 아니 인식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종료, 졸업, 마침, 정년, 교대 등이 없는 반복되는 설거지는 인간을 충분히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02화 양치질 이대로 좋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