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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Jun 07. 2017

"결혼 해봐라, 연애 때처럼 살아지나"

'우린 연애하듯 그렇게 알콩달콩 살자'...는 뻥. 순 개 뻥.

로맨틱

연애할 때 사랑은 로맨틱 그 자체였다.
분위기 좋은 카페, 공원, 여행지에서 남긴 예쁜 사진들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영화,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
함께 걸었던 모든 길,
마음을 담은 손편지,
꼭 안겨 서로의 향기에 취하기,
부드러운 스킨십,
데이트 중에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은 로맨틱했다. 

싸웠던 날들도,
먼저 연락하고 싶고, 보고싶어하던 마음을 애써 숨기느라
로맨틱했다.


결혼 후, 사랑은 곧 생활이었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잘잤어?' 안부전화 하지 않고 아침밥을 짓는다.

내가 할 때도 있고 남편이 할 때도 있다.


이제는 싸우고 언제 연락하나 언제 만나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꼴보기 싫어도 어김없이 집 현관문만 열면 우리가 있다.


이제는 언제나 "여보, 오늘도 oo이는 웃으며 유치원에 잘 갔어"

"그래? 혼자 준비시키느라 수고했어. 당신 밥 잘 챙겨먹고 난 오늘 좀 늦어" 

매일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주고받지만 서운하거나 부족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출근해서 알콩달콩 카톡을 주고받던 대신 이제 나는 집안일, 남편은 일을 한다.

가끔 '뭐해?'라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거나 받을 때도 있지만 답은 하지 않는다.

답이 없어도 뭘 하느라 답장을 안하고 있을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퇴근 길에 서로 전화기 붙들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대신

"나 이제 퇴근!" 카톡 하나 보내놓고 한시간 정도 지나면 집 현관을 짠! 열고 나타난다.


이제는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줄었다. 나는 애 키우느라, 남편은 일해서 돈 벌어오느라. 

가끔 아이 재우고 둘이서 몰래 하는 맥주 한잔이 그렇게 달달할수가 없다.


이제는 데이트하러 나가기 전에 서로 어떤 옷이 더 괜찮아보일지 고민하느라

옷을 몇 번을 갈아입지도, 옷장을 들쑤시지도 않는다.

서로 이게 더 잘 어울리더라며 이야기해주곤 하니까.


예전엔 어쩌다 일이 생겨서 야근하느라 데이트 약속이 취소되면 아쉽고 서운했지만

이제는 그저 야근하느라 얼굴도 제대로 못보는 남편의 건강만이 염려된다. 


예전엔 남자친구가 무심코 말한 "자기 화장 떴어"라는 말 한마디에 헤어질 뻔도 했지만

이제는 "여보 오늘 나 아이라인 너무 쎄보이나?" "오늘 내 블러셔 너무 빨개?" 하고 검열을 자청한다.


예전엔 서로 사랑표현으로 뽀뽀 해주거나, 깜짝 선물을 줬지만

이제 나는 돈 아껴쓰기, 야식 챙겨주기, 시부모님께 잘하기, 잔소리않고 정리해주기로, 

남편은 야근 후 설거지 해주기, 자다 깨서 내 허리 주물러주기, 야근하느라 힘들어도 묵묵히 일하기로 변했다.


결혼은 하루하루가 사랑이 생활 속으로 녹아내리는 것을 견디는 과정이었다.

연애하는 것처럼 알콩달콩 살자고 약속했던 우리였지만 그런건 우리도 불가능했다.

결국 이게 결혼인가? 우리는 아닐 줄 알았는데... 싶어서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은 그것을 아쉬워하면 아쉬워할수록 큰 불행이었고  

숭고하게 받아들일 때 더욱 완성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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