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스트레스란 독을 몸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앞좌석에 앉은 두 여자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회사 동료가 최근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론은 그 동료는 암에 걸릴 만한 성격이라는 것이 그녀들의 결론이었다.
암에 걸릴 만한 성격 !
1. 치밀한 성격 (지나치게 꼼꼼한 )
2. 모든 사람이 자기같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 중독자.
고개를 끄덕일 뻔 한 나 !
톡톡톡 ! 그녀들의 어깨를 두두리며 "제가 작년 까지 암환자 였는데 당신들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이제라도 까칠한 성격을 고쳐 볼께요. " 라고 말해 볼까? 아니면 버스에서 내리면서 실수인 척 가방으로 한대 때리고 내릴까? 실행에 옮기지도 않을 고민을 하며 혼자 피식 웃는 사이 두 사람은 휘리릭 먼저 내렸버렸다.
씁쓸한 기분
그랬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 같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라는 곳에서 월급을 받으면, 당연히 월급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직급이 낮은 친구들 보다 더 받는 것 만큼 그 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에는 당연히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있었고, 워킹맘도 한두명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의 복잡한 삶을 온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오직 머릿 속에 일만 자리 잡고 있었고, 일이 있음에도 집에 가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 위에 선배들도 늘 그랬으니까.
과한 열정주의였고, 지나친 완벽주의자였다.
체력이 좋은 20대는 가능했었다. 전문적인 일만 하면 되었을 때는 나의 이런 성격이 빠른 성장을 가져와 큰 장점이 되었지만,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30대 후반부터, 회사에서는 어느덧 일보다는 관계 (내부.외부)에 더 치중해야 위치가 되었을 때, 난 그것에 대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아 있었다.
스스로 스트레스란 독을 몸으로 끊임없이 투여하기 시작했던 것이 이쯤이었던것 같다.
삶의 조화!
나 자신을 들여 다 보는 일! 에 나는 굉장히 서툴렀다. 아니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부터, 나는 철저히 좋은 제품으로 정해져 잘 만들어져 , 제품으로의 기능만 하고 살았다.
그 제품이 어느날 부터 삐그덕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본사로 넘어가는 길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슬쩍 빠져 멍하니 앉아 있다 본사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폭파해 버릴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숨쉬기 위해서 땡땡이를 치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아래와 같이 노래하는 조각작품이 있다. 작품명은 '싱글맨' . 얼마나 구슬픈 소리를 내는지, 아이러니하게 삐걱대는 '싱글맨'의 구슬픈 소리를 듣고 있다보면 마음의 안정이 찾아와서 어느덧 습관처럼 한두시간은 멍하니 앉아 있다 본사로 들어가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상암 oo 프로젝트다.
아픔과 사건이 많았던 그 현장은 PM으로써 마무리를 다하지 못한 유일한 현장이기도 하다. 보통은 2~3개 정도의 PM를 맡는데. 그 당시 이 현장은 문제가 많아서 상무는 현장에 직접 거주하면서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해결하고, 어느정도 정리가 되면 본사로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난 내 프로젝트도 아닌 엉망진창이 된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현장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었지만, 체력 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얼굴도 꺼끌 꺼끌 하고, 뭔가가 이상한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뭐지?
평소에 건강검진은 꾸준히 규칙적으로 받았지만, 아무래도 결혼을 안한 아가씨(?)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산부인과 검사는 늘 적당한 핑계를 되고 요리조리 빠져 나갔는데 ..웬지 받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반차를 냈다. (나의 놀라운 직감력이 날 살렸다. 역시 난 잘 살 운명이었나 보다)
금요일 오후.
의사 선생님은 결과를 속성으로 알려 줄테니(토요일 오전), 내일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다.
뭐지? 나 아픈가 ?
내일 회사에 나가 봐야 한다고 하니, 맘모톰 한 곳을 과하게 붕대로 칭칭 감아주며, 내일 회사에 가면 맘모톰 한 곳에 병균이 들어갈 수 있으니, 내일은 가지 말고 꼭 보호자와 함께 병원에 오라고 했다.
뭐지? 나 심각한가?
일단 상무와 현장소장에게 몸에 이상이 있어서 검사 받으러 왔다가 조직검사까지 하게 되었고, 의사 권유로 이틀정도 휴식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 하고 과감히 핸드폰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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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 상무.
당신 엿 좀 먹어봐라. 나 한테 다 떠넘겨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