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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핌비 Sep 25. 2019

5화. 털에 대한 단상

몸의 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항암주사를 맞으면, 머리 털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 있는 모든 털이 몽땅  빠진다.  우리 몸에는 생각한 것보다 곳곳에 털이 많고, 그 털 어느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털을 모두 잃은 후에 깨닫게 되었다.


몸에 모든 털이 사라지면 어떨지 혹시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몸에 있는 모든 털이 사라지면 피부는 꿀 피부로 바뀐다. 맨질 맨질...보들 보들...그러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 " 고  했던가? 


속눈썹이 길어 슬픈짐승이여 ~

아..모가지구나.  암튼 


속눈썹이 없으면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눈꺼풀이 서로 꼬옥 붙어 있다. 그 동안 나의 짧은 속눈썹은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낮에 눈을 깜박이거나 잠시 피곤해눈을 살포시 감아도 쩌억 쩌억 잘 붙는다. 


늘 눈을 깜박일 때 끈적이를 때어내는 기분으로 눈을 떠야 한다. 매력적인 긴 속눈썹이 아니라 짧은 속눈썹이라 그 존재감을 몰랐지만 이제야 '속눈썹'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짧은 속눈썹이라고 무시하거나, 미안해서 미안해 ~'

'그런데..만약 다시 난다면 긴 속눈썹으로 다시 태어나 주지 않겠니?'

이런 생각을 했지만 새로 난 속눈썹은 얇고 짧고 더 희미해졌다. 어느날  나는 아침에 상쾌하게 눈을 번쩍 뜰 수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한참을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눈썹은 어떠한가? 

눈썹이 많으면 인복이 있고, 눈썹이 없으면 인복이 없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낭설이었다. 나는 모나리자 눈썹이 된 이후, 좋은 사람과는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고, 불필요한 사람과는 관계가 정리 되었으니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허전하다.  그래서 사진으로 남겼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나리자 분장을 하고 남겨 놓을 껄 ~ 누워서 남긴 셀카를  남동생에게 보냈다가 퇴근길에 '괴기영화' 한편 본 기분이라는 답장을 들었다.  그래도 짠돌이 우리 막내가 나에게 명품지갑을 선물로 보내준 걸 보면, 암이라는 것이 가족의 마음을 짠 하게 하나보다. 문제는 명품지갑이 동생취향이라는 것이...이왕 돈들이면 누나에게 물어보지  너무 서프라이즈 했다. 

모나리자가 된 누나의 예술 혼을 담은 사진 한장은 남동생에게 동생취향 명품지갑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 받은 사건이 되었다. 


 

그렇다면  콧털이 없어지면 어떡해 될까? 

좀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쉬도 때도 없이 콧물이 뚝 떨어진다. 콧물이 전혀 통제가 되지 않고, 코딱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먼지를 그냥 흡입하는 건가? 


털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부모님의 얼굴이 떠 오른다. 

아픈 딸 앞에서  의사 앞에서 펑펑 울던 엄마는 그 날이후  드러내고 속상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 

 '괜찮다' 괜찮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으니 쉬어가도 된다. 

'다행이다 ' '다행이다'  시집을 안가서 부모 밑에 서 이렇게 아파  마음껏 돌봐 줄 수 있어서  

말하는 당신 앞에서 나는 한없이 미안하고 미안해 미처 속상한 마음 조차 느낄 수가 없어서 세상에서 제일 밝고 철없는 아이로 돌아간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서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님을 드러내드리는 것이 효도의 마침이다. 


아직 효의 시작도 못했으니, 마침도 하지 못했는데, 부모의 흰머리는 늘어가고 마음은 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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