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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Sep 10. 2020

밥 먹자고 하는 사람에게 감사하자.


"우리 다음에 이거 먹으러 가요"


나만 보면 밥을 먹자고 하는 직장 후배가 있다. 사실 후배지만 나이는 언니라서 둘 다 퇴사를 한 지금까지도 서로의 직위를 부른다. 내가 먼저 퇴사할 즈음에 이제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 호칭을 좀 정리해보자고 넌지시 제안하길래 단박에 거절했다. 내가 꼰대 여서도, 선배이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저 과장님을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게 너무 어색해서 상상도 못 할 일이라서 거절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 너무 단호박이었다고 웃으면서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호칭은 '과장님'이다.


과장님은 나만 보면 이거 먹으러 가요, 여기 카페 가봐요 늘 좋은 곳을 제안한다. 육성이나 카톡으로 말하는 것 외에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태그 하는 것까지 합치면 무수히 많이 그래 왔다. 그때마다 나는 '그래요 좋아요' 정도의 다소 밋밋한 반응이었는데 분명 싫지는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최근 들어서 그 반응들이 후회스러워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과장님은 언제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고, 우리 만남의 주체와 주도적인 입장은 나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나는 맛있는 음식과 좋은 공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고, 특별해 보이지만 시시콜콜한 일상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그저 인사치레라 생각하고 열 번의 제의에 한두 번 정도 응답하는 무례한 사람이었다. 과장님은 나의 비정한 반응에도 항상 다음을 기다려주었고, 개그코드와 관심사가 통하는 우리는 관계를 꾸준히 이어 나가는 중이다.



음식 맛은 '간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벗의 눈빛으로 간을 조절하라.


한 10년 전쯤 서울 외곽에 있는 가든 같은 카페에 놓인 휴지케이스에 적힌 말이다. 식구라는 개념이 단순히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넘어 하나의 조직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처럼 '밥'으로 묶인 사이에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 밥정이란 말이 괜히 나왔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정이 '밥정'이라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밥 한 끼 하는 것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일이다. 밥을 먹으면서 차를 마시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 어제 있었던 황당한 사건같이 서로가 몰랐던 내 과거의 안부를 전하고, 우리가 겨울에 떠날 여행, 다다음주에 열리는 페스티벌같이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는 대서사적인 행위이다.


밥을 먹자고 먼저 말하는 사람에게 감사하자. 내 마음이 그렇진 않았으니 과장님을 함부로 대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녀 입장에서 나의 맹숭맹숭한 반응에 맥이 빠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꾸준히 나와 놀아줌에 감사하고, 여전히 나에게 밥이며 빵이며 커피며 먹자고 해줌에 감사하다. 나는 남을 살뜰히 잘 챙기는 성격은 못되지만 과장님과 만날 때마다 내 개그에 눈물 나게 웃어주는 모습이 좋아서 만나기 전에 어떤 개그를 던질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부분을 정상 참작해주었으면 좋겠다. 과장님, 저는 과장님이 눈물 또르르 흘리면서 웃는 게 너무 좋아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요. 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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