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우리의 삶
한 3, 4년 전 무렵, 위암 판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한 번쯤 소회하고 싶어, 글을 쓰다 지우다, 2년 전 한 웹매거진에 투고한 에세이만큼 더 투명하게 쓸 자신이 없어, 먼저 그때 썼던 제 글을 올려봅니다.
2년 여전, 난 위암 판정을 받았다. 이 단 한 문장을 쓰고 마감일이 다 되도록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암에 걸린 후 세상이 전부 아름답고 소중해 보였다며 신파적으로 쓸까. 아니면 닥쳐보니 치사하게 비집고 들어오던, 슬프고 억울하고 원통했던 감정들을 통렬하게 풀어볼까. 머릿속으로 셀 수 없이 쓰고 지우고를 했지만 실은 그 어떤 말로도 당시의 나의 감정은 표현이 되지 않았다. 다 가짜였다. 소소한 일상 하나에도 우주보다 더 광활한 감정과 생각이 휘몰아치는 법인데, ‘죽음’ 앞에서의 모습이 어떤 하나의 가닥으로 정리될 리 절대 없었다. 당연히 지금까지도 나의 감정들이 명확히 어떠했는지 여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도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대강 이러하다.
나라에서 해주는 무료 건강검진을 받고 위내시경상 이상 소견이 보인다며 3차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까지도 나는 전혀 의심치 않았다. 건강에 무심한 성격에다 평생 위가 아파본 적도 없고, 가족력도 없어 설마 암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까닭이다. 그러고 의사 선생님에게 위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음, 코끝이 한번 시큰하면서 눈물이 찔끔했던 것이, 전부였다. 굳이 분석하자면 그동안 참 억척같이 살아왔던 자신에 대한 서글픔 플러스 남겨질 아이들에 대한 무한의 죄책감과 걱정 등등이 스쳐 갔다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고 정말이지 시큰, 찔끔 이게 다였다. 오열하며 의사에게 따지지도 캐묻지도 않았고, 가족들에게 전화로 알리며 주저앉지도 않았다. 그냥 의사에게 치료법과 다음 과정 그리고 보험이 되는지 물어보고, 간호사와 다음 예약을 잡고 수납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러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이때 내가 느낀 감정들은 무엇이었을까. 기억을 억지로 떠올려보면, 슬펐다. 억울했다. 두려웠다. 그랬다.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속 섞이던 사람들과 또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의 병이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이 염려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동안 세웠던 자잘한 계획들도 모두 전면 수정해야 했다. 생각과 생각, 감정과 감정들이 태풍 속 파도처럼 끊임없이 내 온몸으로 들이쳤다. 그래서 오히려 진짜 같지 않았다.
겉으로는 평온했다. 소름 끼치도록 잔인하게 실감이 나다가도 마치 악몽을 꾼 것처럼 찝찝하면서도 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집 안을 청소하고 밥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반듯하게 개어놓은 빨랫감이나 해맑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휘몰아칠 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게 왠지 꼭 그래야만 할 거 같은 학습된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항상 함께 스며들었다. 내가 느꼈던 진짜 마음과 감정들을 나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그 어느 때보다 수없이 의심하고 고민하는 동시에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을 초월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당연히 주변 가족이나 지인들은 나의 태도나 감정들(무관심 혹은 초연으로 보이는)에 대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이때의 나의 상태가 사실은 회피나 두려움이었을 거라고 어느 정도의 가늠은 했지만, 이 또한 무의미했다. 파도가 물러가면 모두 흔적이 없어지듯 무수한 감정들이 들고 나갔음에도 또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치료가 쉬운 암임에도 말기 암 진단이라도 받은 것처럼 울어대던 가족들과 친구들이었기에 병에 진지하지 못한 나에게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전염이라도 되듯이 그들 역시 점점 나의 죽음에 익숙해져 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염려하지 않았다는 의미 혹은 시간이 약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새털 같은 시간 동안 그냥 우리 모두 죽음 역시 우리 삶의 일부라는 진리를 직접 겪으면서 자신도 모른 채 함께 깨달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아이들이 어떤 미운 짓을 해도 사랑스럽고, 원망스럽던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분했던 사건들이나 관계들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철이 들지도 성숙해지지도 또 무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바뀌지도 않았다. 가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나 감정들이 휘몰아치기는 했지만, 그냥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혹여나 세상에서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현미경을 가져와 들여다본다면, 아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내가 조금은 성숙해진 거 같다는 생각은 가끔 들었다.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해도 전보다 조바심이 덜 나고, 상상치 못한 행운을 만나도 전후를 생각하는 성숙함이 조금은 생긴 것 같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진짜 최고 성능의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아주 조금 말이다.
다행히 암은 치료가 되었다. 다른 곳에 전이될까 봐 계속 추적 검사도 해야 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외줄 타듯 조심해야 하지만 아무튼 지금은 괜찮다. 죽음이 또는 삶의 고난들이 유발한 감정들이 만든 블랙홀이 존재하는 우주에서 나의 작은 우주선은 유유히 표류 중인 것이다. 언젠가 빠지게 될까 두려운 블랙홀이 어딘가에 있지만, 또 마치 없는 것처럼 나란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폭우처럼 쏟아지는 운석을 만나는 날도 혹은 황홀한 오로라를 목격하는 날도 맞이할 것이다.
나는 가끔 이유 없이 울컥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산스레 살림을 하고, 배달 앱을 한참 들여다보며 고민을 하고, 옛날 드라마를 틀어놓고 낮잠을 잔다. 어색함에 우스개 농담을 건네고, 오지랖에 가까운 친절을 베풀고 또 그러다 투덜거리기도 인자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는 잠들고 나서야 미안한 마음에 귓속말을 속삭이고, 가족들에게 짜증을 냈다가 아무 일 없었던 척 전화를 건다. 변한 거 없이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다. 더 깊이 이야기하려면 어쩌면 참는지도 모른 채 삼켜왔던 눈물이 왈칵 터질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나와 암이 함께 한 동행(同行)의 짧은 기록이다.
글에서처럼 저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수없이 경험할 실패와 좌절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도, 또 조금은 내일을 기대하면서, 떠다니는 마음을 지금, 여기에 잡아놓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지겨운 소리 그만하라고 해도, 아무리 매번 실망하고 절망한다고 해도, 삶과 관계 그리고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끌어안고, 또 그렇게 나의 삶을 한발 한발 걸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매번 잊어버리고 같은 실패를 하는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함일 것입니다.
특별한 계기로, 사건으로, 시간으로 인생이 또는 자신이 확 달라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제가 살아본 삶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따뜻한 눈빛 하나, 고맙다는 한마디, 반가운 표정, 깊은 포옹 같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소한 일들이 삶 전체를 살아갈 만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걸, 항상 뒤늦게 깨닫습니다.
온종일 육아에 무심한 남편에, 독박육아에 가시 돋쳐 있었는데, 애들 재우고 라디오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 이 한 시간이 또 내일을 버티게 할 힘을 줍니다. 유난히 오늘따라 졸려 30분도 안 될 거 같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허지원 박사님의 글 중 일부분으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한 실패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일하는 장면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장면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겠지요. 우리는 그때마다 우아한 쇠퇴, 우아한 실패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늘려갈 회복탄력성에 기반해, 내가 지금 실패한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성공할 때에는 아이처럼 굴어도 좋지만, 실패할 때만큼은 더 세련되고 우아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라고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어쩌라고' 하면서 기억과 사고를 다잡으세요. 기분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표류하게 두지 말아요. '뭐라도 하자'며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의 머리 끄덩이라도 잡아서 일으키는 게 더 우아합니다. 또다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불안감과 우울감이 당신을 들여다볼 때, 입 밖으로 소리 내어서라도 당신이 종결해야 합니다. '뭐라도 하자', 꾸준한 습관만이 당신의 길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