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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토 Oct 19. 2024

내 뇌가,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말 하는 대로_ 말이 가지는 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싫은 것이라 치부했던, 싫은 것이 그리도 많던 어린 시절, 저는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 사람이 유난히 싫었습니다. 사투리를 쓰는 지방에서, 몹시도 무뚝뚝하던 부모님에게 자라서 그럴까요, 단순히 나쁜 단어와 말투가 아니라 사납고, 날카롭고, 부정적인 어조의 말들, 남편과 결혼을 결정한 이유도 그 서울 특유의 온화한 말투가 한몫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또 그런 배경 때문에 나의 기준에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내심 조소하고 비웃었습니다. 나만 고상한 척, 훌륭한 척, ‘이런 단어를,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은 기본이 안 되었어.’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항상 들이밀었던 것이지요.   


       

나이가 들면서 인생이 점점 제멋대로 흘러가고, 뜻밖의 역경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밀어닥쳤지만, 저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평생 원망하면서, 발악하면서 자신을 끌어내리면서 인생까지 망치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나락에서도 언제나 올라오려 안간힘을 다해 발을 내밀었다. 그렇게 말입니다.


그렇게 한 십여 년 정도 흘렀을까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욱 훤하게 드러났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만은 소름 끼치게 느낄 수 있는, 어딘가 사납고 상스러운 단어들, 묘하게 거슬리고 뒤틀린 어조, 은근하게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말 사이의 표현과 태도들.

하, 저는 내가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던 '그런  인간'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돌연 그 민낯을 마주하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토록 원망했던 운명이 내 삶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내뱉은 말들이 나를 그렇게 되도록 나락으로 이끌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말들이, 그동안 탓했던 남이 한 말이 아니라, 늘 어느 한구석 찝찝하고 불편하고, 종국엔 자신에 절망하게 되는 순간들을 한없이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그렇게요.          






저는 올해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확언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매일 긍정적인 확신의 말이나 목표, 다짐, 명언, 감사 일기로 자신을 돌아보는 확언일기의 효과가 생각보다 훨씬 좋아 앞으로도 꾸준히 할 계획입니다. 하루에 6, 7가지의 내용을 한 줄로 쓰는 식인데, 저 같은 경우 <고운말, 긍정적인 말을 쓴다>가 항상 빠지지 않을 정도로 진정으로 ‘말’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중입니다.          


제가 요즘 심취해있는 뇌과학 분야의 연구내용들을 보면 ‘말’이 뇌를 바뀌게 만든다는 전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수많은 연구에서 긍정적인 표현은 전전두엽 피질(정신적 의사결정과 관련된)을 활성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반면 부정적 표현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시켜, 불안감을 높이고 집중력을 떨어트려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결과의 연구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말이 바뀌면 생각도 따라서 바뀐다.

-말에 의해 몸의 모든 기관이 움직인다.

-부정적인 말은 현실이 된다.

-언어 습관이 삶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그저 따분한 명언인 줄 알았던 이런 법칙들이, 모두 과학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던 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때, 뉴런에서는 뇌의 경로를 따라 전기적 자극을 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뉴런은 더 민감해지고 해당 경로는 강화된다고 합니다. 즉 긍정적인 말을 반복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뇌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정적 말을 반복하면 말하는 대로 나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셈이지요.)               

말이 가지는 힘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는 것이지요.





몇 달 전부터 저는 <긍정적인 표현>, <다양한 감정 표현> 같은 목록을 프린트해 책상 앞에 붙여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공부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이보다 저한테 더 시급해 보였던 까닭이죠. ‘대단하다.’, ‘그렇지 뭐.’ ‘완전 좋으네.’, ‘심란하다.’, ‘우울하다’ 어느덧, 갓 10개도 안 되는 말들로 나의 감정 하나 알아차리지 못하며, 부정적으로 살아왔더라고요. 그렇게 나 자신을 세세히 살피지 못하니,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안달만 하면서, 되는대로 살아왔는데 인생이 잘 풀릴 리가요.        






       

내가 내뱉은 말이 결국 나의 인생이 된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이제라도 깨달은 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내 뇌가, 지금도 내가 내뱉는 말을, 나 자신에게 하는 혼잣말까지도 모두 듣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하려 노력합니다.

내가 잘하는 거, 그럼에도 나아가려고 공부하고 애쓴다는 거.

오늘도 책을 펼치고, 강의를 들여다봅니다.


매일 이렇게 공부를 해도 막상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거나, 관계가 삐걱거리는 거 같은 상황이 생기면 배운 것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습관처럼 부정적인 말들은 쓰레기처럼 뱉어내고 후회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달라지지 않을까, 오늘도 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연습해봅니다.     



“이건 네가 잘못한 일이 아니야. 배우면 되는 거야. 모두 그렇게 배운단다. 이번에 좋은 것 배웠다 우리.”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당신한테 거북스럽게 들릴까 봐 내가 지금 약간 겁은 나지만, 당신이랑 더 잘 지내고 싶어서 당신한테 부탁하는 말을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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