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_가면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 어린이집 엄마들과 모임에서의 저는 최대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또 그러면서도 나의 이미지가 무게가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어서 화제나 태도 등 내심 평가나 시선이며 신경을 쓰는 편이고요.
일을 할 때는 그 어떤 사소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일 잘한다’라는 평가를 꽤 듣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있을 때면, 실없는 농담을 하거나, 직언을 하거나 나의 본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만, 3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친구들은 제가 한 번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모두 말합니다.
반면, 친정 가족들과 있을 때는 하고 싶은 말 가감 없이 다 하고, 짜증도 분노도 제일 많이 표출하는 것 같지만, 어릴 적부터 들었던 ‘장녀는 이래야 한다.’라는 가르침 때문인지, 항상 장녀라는 진중함과 책임감이 마음 한구석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편과는 가족보다 더 오래 지내 더 편한 부분도 있음에도, 앞에서 고향 사투리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 걸 알지만, 이상하게 나의 잘못이나 치부가 드러나면 책잡히지 않을까 느낌이 들어 조금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엄마 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려 하지만, 아이들이 어떤 선을 넘을 때면 폭발을 해버리고 또 그러고 오랫동안 후회와 자책을 합니다.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면은 이것 말고도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인 페르소나(가면)는 인지하느냐 못하느냐(혹은 안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이나 사람에게 따라서 각각에 맞게 특정한 태도를 취해 타인에게 보이는 이상적 모습, 즉 ‘사회적 가면’들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상당히 많은 매체에서 페르소나를 마치 심리적으로(혹은 정신적) 이상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증상처럼 묘사되면서, 저 역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부정적인 시각으로 페르소나를 대했습니다.
‘나의 본 모습이 아닌 가면들은 벗어야 해.’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면 가면을 쓸 필요가 없지.’
‘나약하거나 숨길 것이 있는 사람이 가면을 쓰는 거야.’
‘내 가면들 뒤에 진정한 모습을 꼭 찾아야 해.’ 이렇게요.
그러다 보니 항상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나의 모습은 부정하고 비난하게 되고, 이는 또 다른 분노와 좌절로 자연스레 쳇바퀴 돌 듯 이어졌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돌아와도 항상 어느 한구석 찝찝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한참을 가고, 그러면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한편으로 한심하고 초라하고, 그렇게 점점 관계를 맺을 때면 움츠러들고 물러서게 되는 모습, 혹시 아시나요.
물론 지나치게 과장되고 거짓된 페르소나를 자주 가지거나 나아가 자아와의 균형이 깨어지게 되면, 모든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물론 심각한 혼란을 겪으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병’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삶만 살다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삶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지요.
‘페르소나는 하나의 역할이자,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페르소나는 개인이 사회적 상황에서 사용하는 가면이자, 자아를 보호하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는 한 개인이 사회에서 적절하게 기능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이자 삶의 도구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진정한 감정, 생각, 가치관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자기 인식’을 꾸준히 하다 보면, 페르소나와 자아와의 건강한 균형도 이룰 수 있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절대적이 아니라 노력하면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저와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자기 인식'의 예입니다.
그러니, 부디 자기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가면을 쓴 모습도 ‘나 자신’의 일부입니다.
약점을 가리고자 가면을 좀 쓰면 어떤가요. 당신은 그저 좀 더 잘하려고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가면이 벗겨지면 또 어떤가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살아가고, 사실 사람들은 우리 생각보다 타인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가면과 자아가 똑같을 필요도, 자아를 몰라도, 자아가 그다지 멋지지 않다고 해도 다 괜찮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우주가 있고, 나의 우주를 남에게 하나하나 비교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우주를 무조건 수용하고 사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나의 우주에서 하루하루 성실히, 가끔은 게으름도 피우면서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다.
오늘도, 저처럼 신경 쓰이는 자리에서 말실수했다는 생각에 뒤척이고 있으신가요.
이것도 지나가면 기억도 안 날, 내 가면 혹은 모습 중의 한 티끌일 뿐입니다.
하루 이틀이면 또 잊어버릴 것이고 내일이면 우리는 또 다른 고민을 끌어안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공부를 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가면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