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법정의 공기는 먼지 하나 없이 서늘했다.
강지혁은 피고인석에 서서 판사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변호인단은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의 거센 포화를 막지 못했다.
앱 개발 및 운영 책임자로서 사용자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논리는 명백했다. 충분히 예견 가능한 위험을 방치하여 사망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재판부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혁은 에누리 없는 판결을 수용했고, 항소 없이 자숙하자는 것이 임원진들의 입장이었다.
'훗,,, 회사 입장과 지분 가치를 생각하라고? 그 주가 올려놓은 게 누군데!'
지혁은 허무와 분노와 모멸감에 희미하게 떨었다.
결국 재판 결과는 강지혁의 예상을 빗겨나간 것이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5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소송 금액은, 회사가 유가족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소울 링크’의 수익금 일부를 정신건강 기금으로 기부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판사가 내린 마지막 한마디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 피고인 강지혁에게 사회봉사 200시간과, 100시간의 의무 심리 상담을 명한다.”
그 순간, 지혁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었다.
사회봉사? 심리 상담?
그것은 그의 지성에 대한 모독이자, 그의 시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일주일 후, 강지혁은 그의 테슬라 모델 S 플레이드에 몸을 실었다.
스티어링 휠에 손을 댈 필요도 없었다. 완벽한 자율주행 시스템이 활성화되자, 그는 허공에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워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무실이자 시간을 아껴주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였다. 1분 1초의 오차도 없이 최적의 경로를 계산해 내는 이 기계는,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오늘, 그의 완벽한 동반자가 안내하는 목적지는 지독하게도 비논리적인 곳이었다.
서울 외곽의 유기견 보호소.
그는 ‘봉사활동’이라는 비생산적인 단어를 경멸하며, 어젯밤 새로 구입한 이탈리아제 명품 트레이닝복을 내려다보았다. 보호소 소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시선은 자연스레, 번쩍이는 은색 스팽글이 박힌 그의 트레이닝복에 꽂혔다.
“오늘부터 봉사활동 오신 분? 근데... 그… 옷은 좀 거시기 한디….”
지혁이 소장의 말을 잘랐다. 그는 자신의 옷소매를 우아하게 한번 털어내며, 지극히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옷, 이탈리아에서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겁니다. 내 사회적 지위를 고려했을 때, 이게 내가 봉사활동에 대해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입니다.”
소장은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듯 '지가 현빈이야 뭐야...'를 중얼거렸다. 지혁은 그런 반응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인생에 없었던 단어인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견사 청소였다.
그가 비효율적인 삽질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잿빛 푸들 한 마리가 그의 작업복 바지에 무심히 실례를 했다. 따뜻하고 축축한 감촉. 지혁의 동작이 그대로 굳었다. 그는 자신의 발목을 타고 흐르는 노란 액체를 내려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감히... 이… 이... 이! 좁쌀같은 똥덩어리가아!!”
그의 고함에 개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했다. 그는 이 비논리적인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분노의 삽질을 하던 그는, 발밑의 다른 배설물과 비눗물에 그대로 미끄러져 버렸다.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시야가 땅과 하늘을 오갔다
“으악! 이 똥덩어리들이!”
그가 오물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두 번째 절규를 토해냈다.
애수는 멀리서 견사를 청소하다가 이상한 남자의 원맨쇼와 고성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애써 웃음을 삼켰다. 다른 봉사자들도 이 진귀한 광경을 곁눈질로 훔쳐보지 웅성거리는 눈치였다.
멜빵바지에 낡은 티셔츠 차림, 느슨하게 묶어 흘러내린 갈색 곱슬머리, 큼지막한 투명 뿔테 안경. 누가 봐도 애수는 영락없는 시골의 말괄량이였다.
‘풉, 웬 돌아이가 혜성처럼 납시었군.’
애수는 피식 웃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나섰다. 어쩔 수 없었다.
저렇게 두었다간 오늘 안에 견사 하나 청소하기도 글러 보였다.
"이봐요!"
지혁은 짜증 섞인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역광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눈 앞에 있는 여자는 순박과 무해성 및 토속성 지수가 높았다. 그리고 햇빛이 그녀의 투명한 안경테에 부딪혀 어지럽게 반짝이는데다가, 헝클어진 곱슬머리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탓에 더 이상의 분석은 불가능했다.
지독한 개 축사 냄새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시야가 흐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다가오는 순간 자신을 둘러싼 불쾌한 공기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꼈다.
여자의 분위기는 여름의 반짝임과 잘 어울렸다.
“훗, 이승이 그리도 좋으세요? 개똥밭에서 나뒹굴게. 바닥 미끄러운데 이거 잡으세요. ”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었다. 지혁은 그녀의 손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됐습니다. 신경 쓰시죠.”
"후훗, 작업복 안에 그런 불편한 트레이닝복을 입고있으니 움직임이 둔하죠."
"당신이 뭘 모르나본데, 이건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읍..."
그는 자존심 때문에 손을 쳐내고, 혼자 힘으로 일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발을 딛는 곳마다 질퍽한 오물뿐이었다. 그는 팔을 짚고 일어나려다 다시 미끄덩, 무릎을 꿇으려다 또다시 미끄덩. 두어 번의 실패 끝에 그의 얼굴은 오물과 분노로 범벅이 되었다.
"저기요, 이러다 바닥에 입맞춤이라도 하시겠어요."
여자는 걱정스러운 눈빛과는 대조적으로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혁의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결국 패배를 인정하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 손. 이리 줘 보쇼.”
애수는 그제야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지혁은 마지못해 그녀의 손에 이끌려, 굴욕적인 개똥밭에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완벽하게 통제된 지혁의 세계에, 예측 불가능한 아날로그 변수가 접속을 시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