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뮤정 Jul 16. 2024

새를 두려워하던 도시 아이

우연 혹은 필연


어릴 적 동물은 내게 낯선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 중에서도 새는 가장 두려운 대상이었다. 특히 올빼미나 부엉이는 사진을 보기만 해도 식은 땀이 날 정도였으니. 어느 날, 실내에 들어와서 파닥파닥 벽에 부딪히는 새의 영상을 보고나서는 한 평생 방충망없이 창문을 열어본 일도 없었다. 곤충이나 벌레와 같은 동물도 대면할 자신이 없었지만 한 켠에는 혹시라도 새가 들어올까봐 불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 잘못 날아 들어와 방향 감각을 잃고 벽에 계속 부딪히는 새, 그런 새를 만지거나 구해줄 수 없이 어쩔 줄 몰라하는 나. 이 장면은 상상만 해도 최악이었다. 새는 내 머리 위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아마 몇 년 전,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겪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새를 피해다니는 도시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나는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몸이 경직되고, 소름이 돋는 통에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최대한 멀리 원을 그려 걸어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다 공교롭게도 고양이를 키우는 회사를 2번이나 다니게 되었고, 직접 밥을 주고 쓰다듬고 눈을 맞추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맑고 영리한 그 생명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려움이 사랑과 환희로 가득차는 경험을 한 것이다.


가끔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일들이 이미 꿰어진 구슬처럼 하나씩 굴러 내 앞에 멈추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고양이가 동물에 대한 인식을 바꾼 구슬 하나였다면, 새는 내게 아예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준 구슬이었다. 2022년 새해를 기다리던 12월 끝 겨울, 산책을 하다가 문득 하천에 흰 새가 서 있는 광경을 보았다. 제법 큰 새여서 신기한 마음에 잠시 바라보다가 혹시라도 날아오를까 사진 한 컷만 찍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같은 길을 산책했는데 그 자리에서 같은 새를 다시 만났다.

그 다음 날에도 그 새는 같은 언저리에서 유유히 걸어다녔다. 나는 처음으로 ‘뭐지?’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무릇 날개가 있는 동물이라함은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존재인데, 왜 계속 저 자리에 서 있는 걸까, 이름은 뭘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크고 하얀 새 옆에 깜찍하게 떠다니는 오리들, 비슷한 생김새의 회색빛을 가진 새를 보고는 마침내 이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크고 하얀 새는 백로과의 중대백로, 작은 오리들은 흰뺨검둥오리, 비슷하게 생긴 회색 새는 왜가리였다. 그 후 나는 도감을 사고, 쌍안경을 사서 산책길에 들고 나가는 습관 하나가 생겼다. 혼자하는 소소한 탐조 생활의 시작이었고, 그렇게 몇 개월 간은 산책로에서 만나는 새들이 누군지 찾아보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 다시 찬 바람이 부는 계절, 본격적으로 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필연적 우연의 시작은 어쩌면 그 때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첫 모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