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린이의 패닝바잉기 10편
내집마련을 하는 1년 가까이 넘는 시간동안 제일 많이 했던 말이 "했더라면"입니다. 2019년 12월 정책이 나오기전에 집을 샀더라면, 코로나가 터졌을 때 주식이라도 크게 했더라면, 20년 6월 대책이 나오고 바로 샀더라면, 7월 임대차 3법이 통과되고 바로 샀더라면, 8월 거래가 뜸해질때 먼저 움직였더라면, 9월전에 미국주식을 정리했더라면... 모든 가정들이 무의미했습니다.
과거 어떤 선택을 하는가, 했는가는 현재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고민을 할수록 미래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 뿐이죠. 부동산, 주식, 코인 이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선택들 앞에 주저함이 나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든 것을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만들어냈습니다.
어쩌면 주저함은 과감한 선택이기도 했죠. 하지 않음에 대한 선택이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과정이 고통스러운것입니다.
누군가는 패닉바잉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2030의 부동산 패닉바잉이 위험해보일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어른들이 사회초년생이던 시절은 월셋방에서 시작하고 차곡차고 예적금을 통해 모으면서 기다리다보면 분양 당첨되는 시절이었으니까요.
물론 8,90년대도 월급으로 아파트를 사는게 어려웠다고합니다. 집값이 크게 폭등하기도 했다고하죠. 그 덕분에 1기 신도시 공급폭탄이 나오기도 하고, 반값아파트들이 쏟아져나오기도했죠. 100만호 공급으로 한동안 아파트 값이 꺾이기도했고, 반값아파트가 나오던 시절부터 근 6~7년은 하우스푸어가 쏟아지기도 했죠.
요즘 젊은 친구들은 생각보다 똑똑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곳곳에 산재한 정보들을 모아 과거 이력을 통해 앞으로를 예측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공급없이 대출을 조이는 정책, 가점으로 로또파티를 만드는 청약제도 등으로는 이 똑똑한 친구들의 순서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상당히 많은 젊은 친구들이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내집마련은 소득이 낮고 현금자산이 많은 소위 금수저들만이 가져갈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죠. 그래서 이전 어떤 글에서도 밝혔지만, 조금 똑똑하고 사회적으로도 잘 큰 2030들이 좀처럼 결혼하지 않으려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 기인합니다.
대학을 가기위해 노력했고, 회사에 취업하기위해 노력하여 여기까지 올만큼의 성실한 2030정도라면 성실함으로는 어느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죠. 그리고 이런 친구들일수록 셈이 많아집니다. 무작정 저지르고 보는게 아니라 신중하게 자신의 미래를 계산해보죠. 그리고 대부분이 자신이 집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는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하고 있죠.
사회에는 이런 패배감, 위기감이 짙게 깔려있습니다. 이렇게 똑똑하고 능력있는 친구들이 매년 수십만명이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사회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영끌하지말고 공급을 기다리라고 하고 있죠.
2017년부터 집팔 기회를 드린다던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시장에 전혀 먹혀들지 못하고 근 4년만에 작게는 2배, 크게는 3배까지 집값을 상승시켰습니다. 한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가 되지만, 세번 속으면 그건 공범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집권 5년차, 시장에 절망만 던지는 정책속에서 패닉바잉하는 바보로 불리던 2030은 1년이 지난 지금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고, 우려를 하던 역대 최장기간 국토부 장관은 사퇴하였습니다.
며칠전 전세를 살고 있는 세입자를 내보내기위해 은행을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대출을 옥죄다 못해 끊어내기위해 DSR로도 타이트하게 조이고 있더군요. 충분히 소득이 된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슬아슬하게 보증금을 맞출만큼 대출이 가능하다는 은행원의 말을 들으며 다시한번 안심하면서도, 지금부터 알아보려는 청년세대, 예비부부, 신혼부부, 초기가정들은 어떻게 감당할까 싶습니다.
은행에서 도장, 사인만 10번을 넘게하고, 대출상담과 신청에만 2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제 온전히 나의 집을 가지게 되면서 그간 해온 회사 지원금 신청, 세입자 관리, 은행 대출신청, 등기 업무, 계약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깨달은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귀찮고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 집을 마련했을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동지의식이었습니다.
청년들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패닉바잉을 치기어린 투기행위로 치부했던 어른들의 손가락질이 너무나도 철없어보였습니다. 집을 마련하고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꼭 나와 나의 주변 내친구들도 경험했으면 좋겠지만, 불과 1년만에 너무 많은 환경이 바뀌었고 더 어려워진 지금의 환경에서 누가 감히 과감한 선택을 권유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 중요한 것은 "했더라면"을 반복하며 아쉬움만 쌓여가는 삶은 추억하기 어려운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조금더 과감해지면서 저지르고 얻는 후회가 그러지 않고 주저했을 때 얻는 후회들보다 훨씬 값지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인생의 큰 변곡점을 거쳤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 선택부터는 부동산처럼 주저함으로 시간을 허송세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별로 흥미가 없었을 수도 있는데 10편에 이르는 부린이의 패닝바잉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가 모바일서비스기획, 브랜딩,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며 브런치를 풍부하게 채울 수 있도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