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uzzle #2. 커피 향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야근이 일상이었다.

팀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국지성 호우처럼 일을 던졌다.

야근을 하고, 막차를 놓쳐 철야를 하고,

반복된 날들.

그렇게 보내고도, 성과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특별할 것도 없이,

규정된 기간을 다 보낸 후 대리, 과장을 달았다.

그동안의 내 땀과 열정은 어디에 사용된 걸까?

설마,

그것이 Default 값인가?


나는 나만의 무언가를 쌓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남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그런 상황.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찍히는 급여를 보며

어딘가 텅 빈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내 열정은 급여를 유지하기 위한 연료 이상은 아니었나?


도. 대. 체.

무엇을 쏟아부어야, 남들과 달라질 수 있지?

특별해지는 데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가?

내가 모르는?


그 아침,

몸을 겨우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뜨거운 물을 끓이고, 커피를 준비했다.

내용은 다 빠진,

축 쳐진 인형처럼 걷는 내가 짜증 난다.


드리퍼 위에 천천히 내려앉는 물줄기,

피어오르는 향.

언제나처럼 냄새를 맡는다.

정말 마음에 드는 향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고르고 고른 향이니,

고르고 고른 맛이니.

아~

노력을 바칠 곳도

고르고 골라야 할까?


원래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데,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것 하나 없는 아침인데.


주전자를 내려놓고,

테이블을 짚었다.

몸을 기울여

드리퍼 위로 올라오는 커피 향을

평소보다 깊이 들이마셨다.


바로 그때!

나는 아직 여기 있다.

타인이 만든 게임 룰에 휘둘리는, 힘없는 낙엽이 아니라,

이런 향을 좋아하는, 바로 나다.

내 안의 작은 세계가 여전히 살아 있다.

잊었던 내 세계의 한 조각, ‘커피를 좋아하는 나’.

아무리 피곤한 아침이라도,

실 같은 활력을 얻기 위해 아침마다 정성을 기울이는 행동.

오늘 아침 생각해 보니,

난 실 같이 얇은 활력을 얻기 위해

커피를 고르고 내림에 정성을 다 한 것이 아니다.

커피를 내리고, 향을 즐기고,

커피를 마시고 맛을 즐기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난, 타인 게임의 격류에서 사라지거나 뒤섞인 것이 아니고, 이렇게 존재한다.

훌륭하다.


아!, 놓칠 수 없다.

텀블러를 꺼내 커피를 한 번 더 내렸다.

다시 타인의 룰 속으로 들어가는데 필요한 준비물이다.

휘둘리기만 하는 하루가 될 것 같을 때,

이 향을 꺼내, 아침의 이 순간을 기억하고, 내가 버젓이 존재함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다.


나는 타인의 룰에 휘둘려 희석된 것이 아니다.

살아 있다.

커피 향을 좋아하는 나는 쭉 이렇게 살아오고 있다.


다른 것도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취하는 것, 내 취향을.


커피 향,

내 세계의 퍼즐 한 조각.


나는 몇 피스로 된 인간일까?

자각하지 못한 취향도 있을까?


아!

이 여정은 그야말로 여행이구나.

집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이.

내가 아는 취향을 확인하고, 내가 모르는 취향을 발견하는 여행.

지금까지 해 보지 않은 일은 정말 많다.

그것을 하나 둘 해보면서 내 취향을 확인하자.


완성된 퍼즐의 그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분명, 그것은 ‘나’ 일 것이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