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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05. 2024

알바에게 3주 휴가를 주는 나라

+독일 반려견 라이프 간접 체험

벌써 4월이 다 가고 5월의 첫 주가 지났다. 확실히 온도는 전보다 훨씬 따뜻해졌고, 사람들의 옷도 많이 얇아졌다.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이 있었던 한 주였다.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계약서도 연장되었고, 학교 와서 처음으로 현장 학습도 나가보았다. 학교 친구의 강아지를 맡아주게 되어 작은 털뭉치 친구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고, 영사관 개방 행사도 있었고, 좋아하는 비건 도넛도 먹으러 갔다. 이번 주는 좋았던 추억들, 기록해두고 싶은 것들도 많아 짧게 짧게 적어 모아두려고 한다.



현장 학습 가던 기차에서 만난 귀요미 (c) 2024 noi



알바에게 휴가 3주를 주는 나라


지난해 말 즈음부터 로컬의 한 가게에서 서비스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개월의 단기 헬퍼로 시작한 일인데 서로 잘 맞아서 계약을 연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약을 연장하면서도 조금 걱정했던 부분은 바로 8월에 있을 한국행 여행 일정이었다. 처음 휴가에 대해 설명을 들을 때에 최대 3주까지 쓸 수 있다고 설명을 들었었다. (원래 독일의 다른 회사들은 4주까지도 쓰는데 여기는 서비스직 특성상 3주로 제약을 두는 듯했다. 특별한 경우에는 4주까지도 가능하다고.) 가족 결혼식 행사가 있어서 무조건 그때 가야 하고, 한국은 멀다 보니 가면 짧아도 3주는 있고 싶은데 일한 지 반년 정도 된 내가 쓸 수 있을지 눈치가 보였다. 옛날 얘기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정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회사 눈치를 보거나 회사 사정을 봐주다가 첫 2년은 휴가를 못쓰고 지나갔었다. 그때는 그게 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휴가를 쓴다 해도 길어야 며칠이지, 3주는 가당치도 않았다. 아마 그건 지금도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한국을 너무 오래 떠나 있어서 감이 떨어졌으므로 혹시 다른 점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아무튼 계약 연장이 구두로 확정된 후에 바로 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서비스직이라 모든 직원이 휴가를 다 같이 쓸 수는 없어서 한 주당 휴가 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치 보다 못 가게 되느니 빨리 선수를 쳐야 했다. 다행히 내가 한국에 가고자 하는 기간에 휴가 자리가 남아있었다. 보스는 함께 스케줄을 체크해 주고 휴가 신청 양식을 알려주었다. 자리가 있으니 ok. 아무래도 고국으로의 여행이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일처리가 진행될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작년 11월부터 일했는데 써야 하는 휴가가 3일인가 4일인가 있다고 하면서 올해 3월까지 안 쓰면 날아가 버리니까 쓰라고 3월에 휴가 장려도 받았었다. 지금까지의 내 계약은 주당 10시간, 월에 길어야 40시간을 일한 미니잡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계약은 근무 시간이 좀 늘어나기는 하지만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 파트타임 계약이고, 아직 새로운 계약서상으로는 일을 시작도 안 했는데 나를 믿고 휴가를 잡아주었다. 보스가 나를 배려해서 좀 더 신경 써준 부분이야 있겠으나, 애초에 다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했고 나의 고용주는 그것을 착실히 지키려 했다. (물론 여기도 단점이 아예 없진 않지만 법은 지킨다는 의미로 봐주면 좋겠다.)



그리고 법정 공휴일에는 하루당 2시간 일한 것으로 유휴 수당을 쳐주었다. 미니잡이라서 2시간 인 것 같았다. 미니잡은 말 그대로 소득이 많지 않은 일자리이다. 미니잡의 장점은 세금 납부 의무가 면제이다. 그래서 월급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고 최저시급의 변경에 따라 그 기준은 조금씩 바뀌지만,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일주일에 최대 1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그래서 일주일 10시간 근무를 5일로 나눠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을 2시간으로 잡아서 유휴 수당을 주는 듯했다. 실제 근무는 5시간씩 2일 이런 식으로 몰아서 하지만. 어쨌든 미니잡의 기준 이상 넘어가서 돈을 받게 되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다. 그런데 일주일에 40시간도 아니고 한 달에 40시간 일하는 미니알바에게도 주휴수당과 휴가를 꼬박꼬박 챙겨주었다는 게 난 좀 감동이었다. 심지어 나는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그대로 그만둘 예정이었던 단기 계약 알바였고, 독일법 같은 거 처음에는 잘 몰랐던 외국인 직원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독일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역시 최고의 장점은 휴가를 길게 한 번에 쓸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영사관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c) 2024 noi




영사관의 긴긴밤


매년 이맘때쯤이면 ‘영사관의 긴긴밤 (Lange Nacht der Konsulate)’라는 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4월 말부터 5월 첫째 주 사이에 열렸다. 한국 영사관뿐만 아니라 중국,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 칠레, 프랑스, 인도 등 다양한 나라의 영사관에서 같은 기간에 열린다. 올해는 총 21개 영사관이 참여했다. 이름처럼 저녁부터 시작해서 아홉 시나 열 시 늦은 밤까지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모두에게 문을 여는 행사이다. 각자 나라의 문화를 알리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문화 교류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좋은 행사를 지금까지 왜 모르고 살았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첫 번째 참가이니까 의리를 지키고자 한국 영사관을 찾았다. 무료로 열리는 K-pop 댄스 일일 수업은 이미 예약이 꽉 차서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음에도 아무도 취소하지 않아 구경도 못했다. 그래서 오픈 행사에만 가보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긴 줄이 늘어서 있어 살펴보니 한국 음식을 사 먹기 위한 줄이었다.



솔직히 떡볶이는 실망이었지만 김밥과 치킨은 맛났다 (c) 2024 noi



김밥, 만두, 떡볶이 등은 2-3유로, 양념치킨은 5유로에 사 먹을 수 있었다. 예쁜 칵테일도 만들어 파셨지만 알코올 섭취를 자제 중이기 때문에 밀키스를 골랐다. 한식은 역시 인기가 많아서 행사 들어가고 나갈 때까지 줄이 계속 늘어서 있었다. 나갈 때 줄이 없으면 김밥 한 번 더 먹고 싶었는데 줄이 줄지를 않아서 그냥 포기했을 정도다. 장사가 정말 잘되었을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이 음식의 수익은 어디에 쓰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생각보다 한글을 예쁘게 쓰는 외국인이 많았다 (c) 2024 noi


먹거리 외에도 이벤트가 제법 풍성했다. 서예 체험, 한복 체험, 한글 에코백 제작 체험, 책갈피에 내 이름 한국어로 써보기 체험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체험은 모두 무료였고, 한글과 관련된 체험은 함부르크 한인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께서 수고해 주셨다. 체험 코너에는 현지인이나 외국인들이 꽤 많았다. 나는 에코백 코너에 앉아서 한글로 나만의 에코백을 만들었다. 자리에는 한글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서 한글을 예쁘게 쓸 수 있게 가이드 안내판 같은 것들도 잘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한 번도 안 가본 행사라 한 번쯤 경험해 봐야 나중에 주위 친구들에게도 소개해줄 수 있을 것 같아 호기심에 왔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에코백에 이렇게 쉽게 한글로 나만의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로웠고, 오랜만에 서예를 해본 지인은 옛날 생각이 난다며 좋아했다. 내년에는 다른 나라의 영사관도 방문해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해 보고 싶다.




강아지가 최애 간식보다 나를 선택한 감동의 순간(?) (c) 2024 noi



독일의 반려견 라이프 간접체험


작년에 학교에서 일을 하다가 알게 된 다른 과 친구가 있다. 그때도 제법 친해지긴 했는데 서로 바빠서 얼굴을 못보다 올해 다시 같은 일을 하게 되며 다시 만났다. 그렇게 서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친구가 자신의 개를 돌봐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여행을 멀리 떠나게 되어 데리고 갈 수가 없는 상황인데 원래 봐주기로 했던 도그 시터가 갑자기 돌봐줄 수 없다며 일정을 취소해 버렸다고 했다. 평소에 개를 키우고 싶지만, 매해 한국에 가는 사람인 탓에 반려견 입양을 못하고 있는 동물애호가인 나. 당장 손을 들어 내가 친구의 개를 돌봐주겠다며 어필을 했다. 개를 키워본 경험은 있지만 내가 어릴 때 가족이 함께 키웠기에 온전히 내 책임 하에 개를 키워본 적은 없었다. 대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만족 하느라 개에 대한 이론만 아주 조금 아는 반려견 애호가랄까. 이번 기회를 통해 정말 내가 개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일지 - 일상생활에서 겪게 될 크고 작은 고생들 - 스스로를 테스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함부르크나 독일의 반려견 규칙 같은 걸 알아봐야지 생각만 하면서 살다 보면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이제 내가 직접 개를 데리고 다녀야 하다 보니 그런 규칙들도 찾아서 보게 되었다.



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중 (c) 2024 noi



한 가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바로 산책줄 착용 의무에 대한 것이다. 함부르크에서는 밖에서 개를 데리고 다닐 때 산책줄을 하고 다니는 것이 의무이다. 그런데 나는 동네에서 산책줄 없이 평화롭게 산책하는 반려견과 견주들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모두 불법을 저지른 것일까? 답은 네니오이다. 시에서 전문가들이 주관하는 특정 시험을 통과하면 산책줄 없이 개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반려견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이 견주가 반려견을 줄 없이도 통제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 밖에서 줄 없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견주들은 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냐고 물으신다면, 세나개 마니아의 눈썰미랄까. 지금까지 줄을 풀고 다니는 개들을 보고도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모두 매너 있는 반려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개들은 대부분 주위의 사람이나 동물에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평화롭게 코를 박고 냄새를 맡다가 주인을 따라가거나 아니면 이미 주인 옆에 붙어서 여유롭게 걷고 있다.


안겨서 잘 때는 천사지만 타견을 만나면 씅내는 댕댕님 (c) 2024 noi



만약, 이런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반려견이 더 이상 주인의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또는 줄이 풀린 채로 마구 달리거나, 모르는 사람이나 동물을 쫓아가거나 위협하면 바로 줄을 다시 매야 한다고 한다. 이런 사항을 읽고 보니 지금까지 봤던 줄 없는 반려견들이 달리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벤치에 앉아있는데 줄이 풀린 래브라드 레트리버가 앉아있는 내게 쓱 다가와서 자신의 머리를 내 손 아래에 들이밀어서 깜짝 놀라면서도 너무 심쿵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우연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쓰담쓰담받고 싶은데 못하게 하니까 지나가는 척 머리를 들이민 것 같다. 귀여운 녀석…) 그때 견주가 단호한 지시와 함께 개를 데리고 바로 떠나버려서 나는 내심 서운했더랬다. 그런데 견주는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것이다. 어쩔 땐 허용해 주고 어쩔 땐 못하게 하면 일관성이 없어 유지가 되지 않으니까 개를 자유롭게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자격증을 유지하려면 타인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맞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레트리버의 갑작스러운 헤딩은 내게 심쿵이었지만, 만약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면 식은땀이 쫙 나오는 깜놀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이런 자격증이 없는 개들은 뛰어놀 수 있는 곳이 없는 걸까? 나도 그동안 몰랐는데 함부르크 곳곳에 도그파크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지정된 곳에서는 개들을 줄 없이 뛰어놀게 할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맡게 된 친구의 개는 타견에 대한 경계가 아주 심한 녀석이라 데려갈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친구의 개를 맡은 2일 만에 제법 많은 것을 배웠다. (여기에 적은 것 말고도 많이!) 그 이유는 친구의 개가 타견에게는 거의 90% 짖고, 가끔 사람에게도 짖는 녀석이라서 개인적으로 나와 함께 있는 동안만이라도 훈련하기 위해 더 빠짝 공부를 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은 내 개를 입양하는 것보다 이렇게 지인들의 개를 봐주거나 도그시터, 임시보호 등을 하는 게 내 삶에도 더 맞을 것 같다. 이 친구를 만난 건 그런 내 새로운 출발의 시작점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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