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선인장 Mar 24. 2021

명상을 부르는 리시케시행 인도 버스

화는 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생겨난다고 할까?


“카슈미르 게이트에서 리시케쉬 가는 버스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해? 어떤 버스 타야 되는 거야? 승차권 파는 곳이나 승차장 같은 곳은 있겠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단 한 마디의 답으로 일축했다.


“음... 일단 가보면 알아.”


새벽부터 일어나 비몽사몽인 친구의 배웅을 맞으며 다시 가방끈을 등 뒤에 꽉 조였다. 한국에 있을 때는 기숙사에 살던 내가 이 친구를 가끔 재워주곤 했는데, 인도에서 이렇게 바뀐 대접을 받게 될 줄이야.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여기가 꼭 한국의 기숙사 같았는데,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어느새 다시 혼자 덩그러니 인도의 길거리 위에 서있었다.


카슈미르 게이트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시외버스터미널 정도인 듯하다. 인도 전역과 수도 델리를 버스로 연결해주는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시외버스터미널. 카슈미르 게이트로 가는 길, 인도 어느 지역에서나 애용되는 릭샤지만 나는 델리에서 만큼은 웬만해선 릭샤를 타고 싶지 않았다. 델리엔 지하철이 있으니까:) 특히나 카슈미르 게이트에 갈 때는 더더욱 그랬다. 다행히 카슈미르 게이트 버스 터미널로 가는 지하철 역이 있다.


지하철을 타기 전, 또 한 번 대대적인 검문을 통과하고 수월하게 카슈미르 게이트 역에 내렸다. 하지만 인도 지하철을 이용할 때 발견한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바로 지하철역까지는 잘 도착하는데 출구를 나서고부터는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슈미르 게이트, 터미널이라고 여겨질 만한 공간 주변을 5바퀴는 돌아다닌 것 같은데 온통 공사판이었다.





겨우 물어 물어 도착한 버스터미널 안. 보통의 버스터미널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지 않던가? 버스를 타는 이유는 어디를 가기 위해서이고, 그 어디를 가는 버스는 버스터미널에 있으니까 이곳까지 굳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버스터미널이라면 당연히 버스가 향하는 목적지와 버스를 탈 수 있는 증거인 버스표를 살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카슈미르 게이트에서는 도무지 모르겠다.


강남터미널을 떠올리며 던진 내 질문에 단 한마디로 “가보면 알아”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무슨 뜻인지, 2시간이 넘게 카슈미르 게이트를 떠돌아보니 알 것도 같았다. 특별한 정보가 없는 공사판 같은 버스터미널에서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 뿐이다.


막무가내로 내 앞 뒤로 줄을 선 사람들에게 “리시케쉬?”라고 물었다. 마음은 혹시나 정말로 이렇게 리시케쉬행 버스를 영영 찾지 못할까 쪼그라드는데도, 얼굴엔 미소 가득 담고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소통이 명확하지 않다. 인내심도 체력도 조금씩 떨어지고, 버스터미널이 주는 혼돈 속에서 원초적인 질문이 들었다.


‘나는 지금 왜 이곳에 서 있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왜 굳이 여행자 버스를 타지 않고 로컬버스를 타려고 했을까?'


사실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투어리스트 버스를 택했다면 조금 더 비싼 대신 찾기도, 타기도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조금은 다른 것을 원했었다. 물론 외국인이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단지 다른 공간에 날아와 구경만 하다 돌아가는 ‘관광객’보다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떠나고 있는 ‘여행자’로써, 인생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현지 사람들 안에 되도록 있어 보고 싶었다. 한국에 있을 때면 가끔은 가만히 있어도 새벽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이 바글대는 시장을 돌아다니면 나도 몰래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인도에서도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있으면 그들의 '생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왜 그 쉬운 버스 하나 탈 수가 없냐고...!!! 버스터미널 속에 존재하는 카오스와 마주한 무기력해지는 나. 모래바람, 공사장, 사람들. 모든 것에 예민하고 날카로워지는 순간, 아까부터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자꾸 들린다.


“하리드와르, 리시케쉬!

하리드와르, 리시케쉬!”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보니 먼지로 세차한 것 같은 버스 한 대가 터미널 한가운데 비스듬히 서있다. 티브이에서만 봤던 버스 안내원 언니가 오라이 하시던 옛날 버스. 리시케쉬라는 단어 하나에 끌려 버스 앞에 서긴 했지만 왜 정규 버스가 승차장이 아닌 길바닥 한가운데 그것도 대충 세워져 있을까? 도대체 하리드와르 리시케쉬는 뭐지?


“리시케쉬? GO?” 조심스레 물었지만 상대방은 힌디어인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답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버스에 올라타보긴 했지만 자꾸 돈부터 요구하는 이 사람. 안내원 아저씨 같긴 한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내 생각에 로컬버스라고 느낄만한 부분이 어느 하나도 없었다. 표를 살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여기서 우선 내면 된다고 하는 아저씨를 보니 갑자기 투어리스트 버스는 가격이 다르고,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냥 내려버리고 말았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건가... 아님 내가 여행을, 인생을 이리 힘들게 만드는 걸까... 갑자기 어제 헤어졌던 언니 오빠들, 친구가 다들 보고 싶다. 다시 승차장으로 돌아가 기운이 축 쳐져 앉아있는데, 아까부터 혼자 터미널을 쑤시고 돌아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는지 다른 지역 버스 관계자 아저씨 한 분이 다가오셨다.


“어디 가요?”


“리시케쉬요. 사실은요. 저쪽에서 리시케쉬 간다는 버스를 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요. 정류장에 서있지도 않고, 버스표는 왜 버스 안에서 파는 거예요? 마치 숨어서 파는 것처럼. 아무래도 관광객 대상으로 속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저씨가 픽 웃으셨다.


“보기에는 일반 버스가 아니라고 생각되겠지만 어쨌든 여기는 지정된 버스터미널이에요. 아무리 이리저리 널브러져 주차된 차인 것 같아도 엄연히 이 안에 있는 버스는 모두 로컬버스이니 투어리스트 버스가 속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리고 버스표 같은 경우는 이렇게 매표소에서 살 수 있는 지역도 있지만 버스 안에 있는 안내원에게 사야 하는 곳도 있어요. 버스 기사와 안내원이 한 팀이 돼서 가니까요.”


내가 그동안 '알고 있다'라고 생각한 것들이 모든 것이 새로운 곳에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얼마나 답답한 '장벽'이 될 수 있는지 처음 생각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닌데도 나는 끝까지 한국의 그 ‘강남 버스터미널’을 떠올리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남에서 북까지 정말 끝에서 끝을 달려도 열 시간이 남짓일 수 있지만, 인도는 하루가 이틀, 사흘이 될 수도 있는 땅 떵이 크기가 다른 곳이었다. 밑도 끝도 없을 것 같던 지루한 리시케쉬행 버스 찾기 숨바꼭질을 끝내주신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두 손 모아 거듭 드리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방금 전 버스를 향해 뛰어갔다.


이전 13화 네루대학에서 인도 사회학을 공부하던 나의 짜이 친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