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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n 17. 2022

물은 부족하고 샤워는 해야겠고

케이프타운에서 헬스클럽을 등록하다니

상상 속의 아프리카와 실제 남아공이 일치하는  가지가 있었다. 바로  부족. 홈스테이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자마자 할머니가 집을 소개하셨을 때다. 가장 처음부터 제일 강조하셨던 말씀이  절약이었다. 사실   내내 뜨겁다 못해 타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던 남아공의 날씨엔 사실 뼛속까지 시린 겨울도 있고 여름이라도 그늘 아래에선 시원하다는, 직접 살아보기 전까진 생각지도 못한 구석 있었다. 그럼에도   시즌 모두 강수량이 적어 언제나 부족하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아프리카 대륙과 비슷한 듯했다. 설거지를  때도, 샤워를  때도, 빨래를  때도 생활 속에 배어 있는 할머니의 물을 절약하는 모습에 나도 자연스레 닮아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나름 정말 노력했는 할머니는 마음에 차지 않으신 모양이다. 홈스테이에서 지낸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이라는 단어가 차지하는 분량이 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날씨도 춥고 마음도 추운데, 따뜻한 기운이 잠시라도 머물  있는 만큼 뜨거운 물에 샤워를  번만   있다면 몸도 마음도 조금은 따뜻해질  같은데... 할머니는 용납을 하지 않으실  같았다.


남의 집이고,  외국이고, 그것도 아프리카라 샤워할   쓰는 것을 특별히 신경 썼다. 그럴줄 알고 남아공에 올때 머리도  단발로 자르고 와서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샤워하는  그리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며칠이 지나고 나서부터 내가 샤워하는 도중 노크를 하며 물을 아껴 쓰라고 문밖에서 핀잔을 주셨다. 이후  말을  번째 들었을  나는 샤워가 무척 하고 싶었지만 하기 싫어졌다.  


그렇게 마음껏 따뜻한 물에 샤워  번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점심시간, 학원 휴게실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는 유키와 함께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어떤 곳에서 홍보를 나온  같은데 빨간색 유니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유인물을 나눠준다. Virgin Active? 운동복을 입은 몸매 좋은 모델들이 상큼하게 점프하는 모습들이 스포츠 의류 광고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지은이가 보였다.


“이게 뭐야? 지금 뭘 홍보하는 거야?”

“헬스클럽에서 사람들 모집하고 있나 봐. 그린포인트에 있는데 지금 신청하면 학생 할인 가격으로 등록할 수 있대. 조금 있다가 직접 헬스클럽 가서 설명해준다는데 구경하고 마음에 들면 그때 신청해도 된대. 우리 심심한데 한번 가볼래?”


무슨 어학원에서 헬스클럽 홍보를 하는 거지 싶으면서도 어차피  일도 없는데, 남아공 헬스클럽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졌다. 한국에서도 가끔씩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다니곤 했으니까 부담 없이 놀러 갈까 싶어 동양인 소녀 3명이 소풍 가듯 그 빨간색 간판의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아프리카의 헬스클럽. ‘아프리카라는 수식어는 너무나 강력해서 그것이 어떤 명사를 꾸미고 있던지 주연과 조연을 바꿔버리는 마력을 가진 듯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프리카의 헬스클럽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어떤 사람들이 다니는 걸까? 무엇을 배울까? 어떤 기구들이 있는 걸까? 등등의 평범한 질문 안에서도 무언가 '아프리카'스럽지 않을까 싶은 괜한 상상력을 펼쳐보게 한다. 남아공이 특별히 아프리카에 있다보니 헬스클럽보다 ‘아프리카의라는 수식어가  궁금하게 되는 나라였다. 


궁금증의 대답은 어마어마했다. 생각보다 대단했. 그린포인트와 씨포인트를 지나칠 때마다 매번 마주친 건물이었지만  번도 헬스클럽일 것이라곤 생각해  적이  건물 하나가 있었는데,  건물이 바로 헬스클럽이었다. 홍보가 아니라 정말 널따란 주차장에 최신식 운동기구와   서양인들도 닿지 않는 깊이의 수영장, 2층에는 스쿼시, 사이클, 필라테스, 요가, 각종 운동프로그램들이 시간별로 진행되는 방이 있다. 밖에는 조그마한 야외풀장이 있고 사우나가 었으며, 무엇보다도 나에 가장 절실했던 샤워실이 있었고, 따뜻한 물이 나왔다!! 내가 남아공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의미는 내가 우리나라에서 티브이나 신문으로 봤을때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에 당장 물이 없어 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기에, 양심상 펑펑 물을 쓰진 않겠지만 그래도 헬스클럽을 다니면 정말   번쯤은 마음껏 따뜻한  샤워를   있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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