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테라, 세상의 끝에 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 카미노 데 피스테라 (Camino de Fisterra)
+32 Day / 2016.08.05
Iphone record : 11.60km (차량 타고 이동)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이야기, 피스테라 세상의 끝에서 그녀와 조우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산티아고 대성당 도착 후 한인 민박 집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투어 프로그램이 있어서 차량으로 이동했다.
조금만 가면 Fisterra라고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데,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한다.
굉장히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인데, 음악을 틀어놓고 반려견과 해수욕을 즐기는 아저씨가 보였다.
언덕에 올라가 마을 전체를 내려다본 풍광인데,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다.
망망대해에 살랑거리는 파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서쪽 땅 끝에 십자가가 세워진 이곳은 정말 세상의 끝.
순례자를 상징하는 신발상도 있는데요. 제 발과 비교하면 굉장히 크다.
예전에는 이 땅끝에서 순례를 마친 후 신발과 옷가지를 태웠다고 하는데 요즘엔 환경 문제로 신발을 태우는 관례는 사라졌다고 한다. 산티아고의 길 내내 나와 함께 걸은 이 등산화는 아일랜드에서 생활 마무리하면서 샀던 것인데, 지난 한 달간 저를 지탱해 준 (베드 버그 대란일 때도, 이 신발만큼은 사수) 신발이라 정말 한국까지 가져오려고 했었다. 나중엔 결국 여행하다 캐리어에 짐이 넘쳐나서 버려야 했지만. 흑흑.
이제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묻힌 곳이고, 이곳이 그가 처음으로 내린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묵시아에서 성모 마리아 님이 야고보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하셨고,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셨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 발현지 묵시아는 가지 못했지만, 다음에 다시 한번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다면 꼭 가봐야겠다.
성당 밖에서 장난치는 남매도들이 사랑스럽다.
그렇게 성당을 둘러보고 나오니,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연인이 보인다.
나는 혼자 넋을 놓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뭉클했던 순간이었다. 순례길을 걸었던 순간,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 아일랜드에서의 지난 1년 6개월 등등 여러 추억이 떠올랐던 것 같다.
이제 바르(BAR)나 기념품 숍에 가서 순례 도장을 찍으러 가기로 한다. 요기 인상 좋은 아저씨가 찍어주셨는데 한글로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이었다. 한국인이 정말 많이 오나 보다.
사실 저 순례자 여권 2개로 도장 꽉꽉 채웠는데, 보조 가방에 넣어두고 절벽 앞에서 사진 찍다가 바람에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그거 찾겠다고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내려가려는데 일행이 그러다 사고 난다고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 그렇게 물욕을 버리며 순례 길을 걸었는데, 이렇게 또 물욕이 일어나니 참... 여권은 너무 아쉽고 상심이 컸지만 이내 체념을 했다.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에필로그
길을 처음 걸을 때 '과연, 내가 무사히 이 길을 마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32일 차에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피스테라에 오니 정말 뭐라 표현을 해야 할지 몰라 감개무량했다. 지난 31일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소설 속 그녀와 칠 년 만에 조우하며, 꼭 소설이든 극본이든 완성하리라 다짐했다. 왜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었는지, 그 처음에 대해 생각도 했다.
피스테라, 세상의 끝. 이 장소가 내게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2009년부터 기획한 소설 속 배경이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해 준 그와 이별 후.
나는 어떤 연유에서든 산티아고의 길을 무작정 걷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찼었다.
당장 산티아고의 길로 떠날 수는 없었지만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소설을 쓰고 있자면 내가 가보지도 못한 산티아고의 길을 배경으로 도저히 글의 속도가 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꼭 피스테라, 세상의 끝에 가보리라 다짐한 지 8년 만에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산티아고의 길을 걸은지 2년 후 소설은 아니지만 산티아고의 길을 배경으로 극본을 하나 완성했다.
길이 여기서 끝나다, 하지만 길은 다시 시작된다.
모든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듯 우리가 살아있는 한 아무것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