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하다 동사할 뻔.

존 뮤어 트레일 - Day 5

by Noelles Adventure

2016년 6월 7일 Day 5.



출발: Crabtree Meadow

도착: Forester Pass 앞 어딘가

총 거리: 17.06 km

누적 거리: 74.64 km






Hike my own hike. I should be in control of my life. Don't mind what other people say like "oh that's lame to do only 10 miles a day and get a resupply in the middle of the mountain."

이것은 내 산행이고 내가 만들어가는 길이다. 남들이 내가 고작 하루에 10마일 밖에 못 걷는다고, 고작 3주짜리 JMT 하면서 산 중간에서 리써플라이를 받는다고 남들이 나를 비웃더라도 나는 내가 삶의 주체임을 명심하고 내 갈길을 가자.

출처: 내 일기장






992ED63A5BAA9B36333301 Crabtree Meadow부터 포레스터 패스까지는 20 km



패스 (pass)는 우리나라말로 하면 고개?정도 되는데 JMT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포레스터 패스로 4000미터가 넘는다. 휘트니에서 기껏 내려왔건만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이 날은 Crabtree Meadow를 지나 포레스터 패스 (Forester Pass) 직전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약 20킬로미터인데, 거의 2800 미터대로 내려갔다가 다시 4000미터 고개를 올라야 한다. JMT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넘는 식이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고개씩 넘었고 나중에 trail leg가 생기고 나서는 두 고개씩 넘게 됐다. 헥헥대면서 오르막을 올라 겨우 고개를 넘고 나면 주구장창 3000미터 대로 내려갔다가 그다음 날 또 4000미터대의 고개를 올라야 하고 그러고 나면 또 내려가야 하고 그다음 날 또 반복한다.



시에라 네바다는 6월 초가 아직 겨울이다. 그래서 포레스터 패스를 포함한 모든 패스들은 눈이 정말 많이 쌓여 있는데, 약 오전 10시 이후에 건너면 속도도 안 나고 위험하다(이유 유약: 눈 녹으면 발 빠짐 -> 발목 삘 확률 증가, 속도 느려짐, 더 힘듦). 그래서 패스를 건너기 전날 밤, 최대한 패스 가까이까지 가서 텐트를 쳐야 한다. 그리고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해 뜨자마자 눈이 녹기 전에 패스를 건너야 가장 효율적이다. 앞으로 거의 매일의 일정 이런 식이다. 새벽같이 고개 하나 넘고, 또 다른 고개 직전까지 가서 그 밑에서 자고 다음날 또 새벽에 고개를 넘고.





9928683A5BAA9B3F34D402 주한미군이었던 Joe를 처음 만났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고 나니 나무와 풀은 사라지고 좀 황량해졌다. 포레스터 패스는 저 산등성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왼쪽 호수 근처에 그 전날 근처에서 캠핑한 PCT 하이커들을 만났다. 역시 나보다 훨씬 빨리 걸어 먼저 가 있었다. 여기에 어떤 아저씨를 만났는데 거의 50대였다. 이 아저씨는 트레일 네임은 안 알려주고 본명인 Joe를 알려줬다. 자기가 한국에서 미군으로 2번 근무했다고 아는 한국말 대방출하면서 "소주소주? 소주 좋아하냐고?" 자기 소주 너무 좋아했다고 그랬다. 먹을 것도 나눠주고 아주 친절했다. 이 Joe와는 앞으로 세 번을 더 만나게 된다.








990E443F5BAA9CA5369264 내 몸통보다 두꺼운 배낭


배낭 바깥에 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까만 것은 팬티 빨아서 말리고 있는 거다. 왜냐면 눈치 없이 생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으으 존싫... 팬티는 울 100%짜리를 가져가는 데 좋은데, 면보다 가볍고 대충 빨아도 냄새가 안 난다. 흰 것은 손수건인데 내 등산용 휴지다. 소변볼 때마다 휴지를 쓰면 환경도 훼손될 뿐만 아니라 휴지를 어마어마하게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손수건으로 닦고 나서 그냥 배낭에 널어서 말린다. 검색해서 다른 하이커들이 이렇게 하길래 나도 이렇게 했다. 좀 뜨악스러웠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냄새 안 나고 괜찮더라. 일단 걸으면서 햇볕에 땃땃하게 말려지고 나면 기분이 좋다. 배낭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슬리핑패드다. 저렇게 꺼내 놓고 다니는 건 비가 안왔을 때만 가능하다.



나름 4일째인데 이쯤 되면 좀 오르막이 쉬워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계속 힘들었고 계속 숨이 찼다. 이때부터였을까 앞으로는 거의 다 아이폰으로면 찍고 카메라는 꺼내기 귀찮아서 배낭에 장식품으로 사용하게 됐다. 가방 무게를 줄여보려고 일부러 잘 들어가지도 않는 트레일 바나 초콜렛을 꾸역꾸역 1시간에 한 번씩 먹었는데도 딱히 무게가 줄었다는 걸 체감은 못했다.





2016-06-07 16.32.48.jpg 고도가 높아져 눈밭이 또!




포레스터 패스에 가까워질수록 눈밭이 또 등장한다. 눈밭이 아니면 눈이 녹아서 땅이 질척하게 젖어있다. 이런 데에서는 텐트를 못 치지. 일단 계속 걷는다. 혹시 포레스터 앞에도 다 눈밭이면 어떡하지 조바심이 났다. 이상한 것이 이성적으로는 그럴 확률이 낮다는 걸 분명히 알지만, 마음으로는 그걸 믿고 싶지가 않아서 괜히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스스로를 속이며 걸었다. 왜 그럴까?



나는 포레스터 패스 한 3-4킬로미터 직전까지 와서 텐트를 쳤다. 정말 정말 다행히 마른 땅이 있었다. 바람으로부터는 전혀 보호가 되지 않아서 밤에 추울 것 같았지만 여기서 더 가긴 내 체력이 따라주질 않았다. 바람이 하도 불어서 텐트 폴 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돌을 주워서 눌러놨다. 주변에 딱히 호수나 시냇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눈이 워낙 녹아 있어서 일시적으로 졸졸 흐르는 물이 있었다. 거기서 물을 받아다가 정수해서 밥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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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보이는 것이 곰통이다. 아무리 곰이 와서 뿌시려고 해도 절대 열리지 않아서 내 식량을 털릴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근데 곰이 곰통 속에 음식 냄새를 맡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곰통은 무조건 텐트에서 멀리멀리 가져다 놓아야 하고, 웬만하면 밥도 텐트에서 좀 동 떨어진 곳에서 먹는 게 좋다 (하지만 힘들면 그런 거 안 지킨다).






9930573A5BAA9B4533C060 허허벌판에 텐트



아까 만난 Joe (옛 주한미군 아저씨)는 포레스터 너무 코앞에다가 텐트 치면 많이 추울 거라고 자기랑 같이 오늘 넘어가자고 했다. 추위도 싫지만 이미 너무 지쳐서 더 걷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아저씨 말씀이 맞았다. 자다가 입 돌아가는 줄 알았다. 울 100%인 잠잘 때 입는 얇은 옷 위에 더럽고 냄새나지만 추운 거보다 낫겠다 싶어서 등산할 때 입는 옷까지 껴입었다. 그리고 밑에는 레인 팬츠 하나 더 입고 모든 하의는 양말에 구겨 넣었다 (고쟁이핏 장난 아님). 위에는 후리스, 다운 패딩, 레인 자켓 입고, 얼굴에는 반다나 눈까지 올려 쓰고, 모자 쓰고, 레인 자켓에 있는 모자를 또 쓴다. 그리고 패딩 안으로 쏙 들어가면 거대한 곰이 된 것 같다. 그리고는 장갑 끼고 레인 자켓 주머니에 손 넣고 잔다. 근데도 너무 추웠다. 신기한 것은, 피곤하니까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떨어지는데 너무 추우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깬다. 밤새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DSC_1733.JPG 어으 보기만 해도 춥다.




오들오들 떨며 4일째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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