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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ra Oct 22. 2023

소풍 가는 날

아이가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이른 아침.

평소보다 빠르게 일어나 주방에서 도시락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아이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보통 깨워도 안 일어날 시간이었지만 잠이 저절로 깼다며 배시시 웃었다.

아직 더 자도 된다는 말에 방에 들어가더니 설레어 잠이 안 온다며 금방 다시 나왔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직 어둑한 창밖과 엄마의 규칙적인 도마 소리, 코끝을 간지럽히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나는 소풍날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며칠 동안 ‘131’에 전화를 걸어 날씨를 확인하곤 했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참 옛날이야기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131’ 대신 날씨 앱에서 현장체험학습 날의 날씨를 체크하고 비예보에 걱정했다.

전날 잠들기 전 확인한 일기예보는 오전에만 비가 내릴 거라 했다.


함께 나선 등굣길, 새벽에 비가 내렸던지 땅이 조금 젖어 있었고 쌀쌀했지만 하늘이 맑았다.

맞지 않은 일기예보가 이렇게 예쁠 수가..

아이의 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마주 잡은 손을 힘차게 흔들며 걸으니 나도 함께 설레는듯했다.


아이는 한 시간 반의 차량 이동시간에 멀미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지만

“엄마, 너무 설레어~ ”라며 방긋 웃었다.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걱정의 말은 넣어두고

“재밌게 잘 놀다 와~”라고만 말했다.


학교로 들어가는 신나는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휙 돌아 나를 찾고는 손을 흔들었다.


나도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조심히 안전하게 잘 다녀와~’라는 넣어둔 걱정의 말을 대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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