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다음 주부터 겨울날씨가 된다는 뉴스를 들었다. 집에서는 아직 가을 옷도 내질 못했는데, 다음 주부터 패딩을 꺼내야 할 판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지기 전에 독감주사를 맞아야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빨리 겨울이 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봄과 가을이 한 달도 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다음 주부터 겨울날씨가 된다고 하면 이번 연도 가을은 일주일 밖에 없었던 것이 된다. 그것도 온통 비로 물든 일주일. 그것도 그럴 것이 오늘 저녁부터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작년에 주사를 맞으러 갔을 때는 한 단어, 두 단어를 말할 때라 대화가 거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사를 맞으러 가는지도 모른 채, 주사를 마주했던 아들이었다. 이제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니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는데, 같은 반 친구가 놀이터에 오지 않고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민수는 오늘 어디 가요?"
"오늘 독감 주사 맞으러 가요!"
"아빠! 주사?"
아들이 '주사'라는 단어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우리도 독감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 아들은 극도로 기분이 좋지 않더니 당장 지금 병원을 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연신 '주사 싫어!', '주사 맞으러 안 갈 거야!'를 외쳤다. 사실 아이도, 어른도 주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필수로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말했다. (당시 주변에 물어보니 생각보다 독감주사를 맞지 않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 필수사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또 누군가에게는 필수사항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무조건이란 없다.)
마침 오늘 늦은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하원하면서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독감 주사를 맞으려고 준비를 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평소와 다르게 차를 가지고 온 나의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잿빛으로 변하는 아들.
"아빠, 왜 차를 가지고 왔어요? 우리 어디 가요?"
"아~ 지금 주사 맞으러 병원에 가려고~!"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독감주사는 안 맞을래요!"
다른 이유도 아니고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주사를 안 맞겠다니, 이 재밌고 귀여운 대답을 듣고는 병원에 가지 않고 놀이터로 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들 독감주사를 맞으러 가야겠다는 것은 다음 주가 바쁠 것 같은 내 일정을 고려한 거였고, 아들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당장 다음 주부터 겨울날씨가 되고, 2시간 뒤면 비가 올 텐데 이 남은 시간을 재밌게 놀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에 차를 주차하고, 짐을 차에 놓고, 트렁크에서 자전거를 꺼내 놀이터로 향했다.
"이런 날씨가 얼마나 있겠어! 지금 날씨도 좋은데 놀이터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