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 공간에서 같이 잠을 자는 사이, 혹은 같이 일을 하는 사이라면 대개 최악의 상황이 되면 공간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렇게만 해도 얼마간 숨은 쉴 수 있게 되니까. 그런데 사회생활에서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반드시 생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은데 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괴로워진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한국 회사들이 딱 그런 공간일 경우가 많다. 마음에 안 든다고 때려 치울 수가 없다. 물론 전출/이직 등 여러 카드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업계인 이상 돌다돌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는 생각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니 별 수 있을까? 일단은 버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어느 선임이 있었다. 학벌을 제외하고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찌든 사람이었다. 다른 후임들처럼 나도 그에게 맛있는 먹잇감이 되었는데 회사생활 6년 중에 가장 힘들었던 1년으로 기억한다. 차라리 더 힘든 업무를 맡더라도 그의 옆자리를 나가고 싶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마다 그에게 대응하는 방식은 달랐다. 적당히 아부를 떠는 유형도 있었고, 참지 않고 박치기 공룡마냥 일단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유형도 있었다. 정면으로 싸우기엔 용기가 없고, 그렇다고 아부를 떨기엔 요령이 없는 내가 그에게 택한 거리두기 방법은 '지극히 정중한 말투' 였다. 다른 선임들에게는 장난도 치고 가벼운 농담도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사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웃음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무시하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털끝만큼도 나는 당신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 사무실에서 주축이 됐을 때도, 여전히 난 그에게 이 태도를 유지한다. 여전히 나는 그에게 아주 날카로운 검같이, 바짝 날이 선 신입처럼 말을 한다. 친근한 말투나 경계를 푼 말투를 그는 평생 내 입에서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도 이제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나에게 아주 정중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때 든 버릇은 이제 내 습관이 되었다. 그 대상이 후배든 선배든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에게 하는 방식은 이것 하나다. 나는 그들과 '언어'를 주고 받을 뿐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요즘은 이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꽤나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사실을 그들이, 시간이 지나 무겁게 깨닫기를 바란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상대가 예의가 바르고 존중하는 말을 건네더라도 그건 철저하게 외면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말에는 표정이 있고, 그 표정은 감정을 보여준다. 말의 표정이 관계의 거리다. "점심 뭐 먹을까?"와 "우리 뭐 먹을까?"는 다르다. 말의 뉘앙스, 어감은 마음의 표정이고, 감정의 거리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런 감정을 배제한 아주 공식적이고 사회적인 언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면, 빨리 그와 나 사이에 얼마만큼의 거리가 벌어져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더 늦어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