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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Jun 14. 2024

친정에서 택배가 왔다

맛있는 사랑을 듬뿍 먹어야지

한 달에 두 번은 부모님에게서 택배가 온다. 할머니께서 담근 김치와 청국장, 열무 물김치, 그리고 엄마가 만든 진미채와 떡국 꾸미(경상도식 떡국 고명)와 제철 과일까지. 결혼을 했더니 이전보다 두 배로 챙겨서 보내주시는 덕분에 냉장고가 늘 두둑하다. 그러잖아도 같이 살면서 차려 먹는 재미가 더 늘어 각자 살도 어마무시하게 쪘는데 큰일이다. 살은 찌겠지만 주신 건 모두 맛이 보장 되어 있으니 되도록 다 활용해 먹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사랑에 보답하는 일이므로!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김장 김치

우리 엄마는 평생 외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들이 최애 음식이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점이라 해서 찾아가도, 할머니의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 만큼 간단하게 끓여도 깊은 맛을 내는 곳은 없고, 할머니가 직접 쑤신 된장으로 만든 된장찌개만큼 군내 없이 깔끔한 곳이 없다는 게 엄마의 말이다. 외할머니의 손에 컸던 나도 백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장담하건대, 우리 할머니의 손에는 정말 ‘손맛’이라 불리는 어떤 조미료가 있는 것처럼 맛을 내는 무언가가 있다고 농담할 정도니까.

할머니의 물김치로 만든 열무 냉국수

외할머니는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자식들의 반찬을 해 주시는 것이 가장 보람 있다고 말씀 하신다. 그래서 엄마는 아직도 할머니께서 해 주시는 반찬을 받아 식탁을 꾸릴 때가 많다. 엄마는 작년에 심장 수술을 받고 나서도 할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만 찾았다. 병원 밥은 통 삼키지도 못하던 엄마가, 할머니가 해 주신 된장찌개와 나물을 먹고 싶다며 콕 찍어 말한 덕분에 외할머니는 딸의 회복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음식을 만드셨다. 할머니 손맛이 깃든 음식의 힘 덕분인지 엄마는 당신을 한 번 더 태어나게 만들었던 수술을 잘 이겨내고 계신다.


잘 먹이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는 할머니의 마음을 엄마도 이어받아, 그 사랑을 이제는 사위에게도 전해주시려고 하는 것 같다. 나에게서 사위가 어떤 음식을 잘 먹더라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기억하셨다가 그 음식을 꼭 보내주시곤 한다. 가령 전에 나 혼자 친정에 내려갔을 때 사위가 대구의 무침회를 잘 먹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는 집 가는 길에 꼭 포장해서 들려주신다거나, 수박을 잘 먹는다는 말에 특등 수박을 부쳐주신다거나 하면서. 먹는 데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위지만 또 그 마음이 감사해서, 또 특히 더 맛있다며 정신 없이 먹는다. 그 모습을 꼭 보여주려고 나도 식탁을 사진으로나마 남겨놓고 인증샷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빠가 보내주신 치즈와 루꼴라, 토마토로 만든 여름 샐러드

아빠 역시 맛이라고 하면 일가견이 있는 분이셔서, 각종 음식 재료들을 엄마가 챙겨주신 것에 더해 보내주시는데 그 종류는 내가 쉽게 구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라 반갑다. 가령 루꼴라, 바질, 아스파라거스, 그라나파다노 치즈, 모짜렐라 치즈 등.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계셨던 덕분에 다양한 요리들을 해 내시는 아빠는 내게도 그 식탁을 물려주셨다. 보내주시면 나는 그 재료들을 가지고 아빠에게서 보고 배운 음식들을 차려낸다. 또 사진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빠가 물려준 입맛을 나도 나의 남편이자 아빠의 사위에게 잘 전해주고 있다고. 그럼 아빠는 또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이모티콘을 보내신다.


부모님의 택배에는 딸과 사위에 대한 제철의 사랑이 담겨 있다. 먹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주고 받는 우리 가족에게는 식탁 인증샷이 아주 기다려지는 연락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덕분에 이 맛있는 걸 먹는다는 말도 덧붙이며. 내가 부모님을 챙길 때가 언젠가 오겠지만, 부모님께서 이 고생으로 사랑을 표현하시는 동안 만큼은 맛있게 잘 받아 먹고 싶다. 결혼을 하고 난 뒤 어째서 더 자주 연락하게 되는 부모님의 맛있는 사랑을 오래도록 차려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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