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일상을 평온하고 일관된 정성으로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글을 짓고 미소를 쓴다
문장이 뭔가 어색합니다. 동사 전후의 위치를 바꾸니,
글을 쓰고 미소를 짓는다
이제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미소에는 쓴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글에는 쓰다와 짓다 모든 표현이 가능합니다. 의미가 통한다고 해도 글을 쓰는 것과 짓는 것에는 미묘한 의미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는 것은 사각사각 연필로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이고, 짓는 것은 글 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바닥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 집을 완성하듯, 글의 소재를 찾고, 연결을 하고, 여러 번 고쳐 써 완성하는 의미로 읽힙니다.
짓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는 점에서 문화도 글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문화라는 단어에는 글(文)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마치 글처럼, 문화는 자연스럽게 생기고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좋은 글이 그렇듯, 좋은 문화는 짓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냥 말고, 정성껏 말입니다. 세상은 너무 넓고 상황도 다양하니, 이야기의 시선을 잠시 옮겨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로 향해보겠습니다. 정확히는,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느 회사든 문화는 있습니다. 조직문화 파트에서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문화는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꼭 규정으로 정하지 않아도 의식으로 여겨지는 문화는 어디에든 존재하며, 이는 사업의 성쇠(盛衰)나 기업 리더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같은 공간에 사람이 모이므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조금의 참신함과 정성을 재료로 만드는 그런 문화도 있습니다. 팀에서 생일을 축하해 주는 문화, 부서에서 자율적으로 하는 월별 이벤트 문화, 피플팀에서 주도하는 매월 셋째 주 금요일의 패밀리데이(반나절 근무) 문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티타임 문화, 책 돌려 읽고 후기를 나누는 북 토크 문화, 함께 즐거운 일들을 하는 동호회 문화, 새로운 식구를 환영하는 대표이사의 손편지와 웰컴 키트 문화, 퇴사자를 위한 롤링페이퍼 문화 등이 그렇습니다.
구전이 신화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구전(口傳)이라고 합니다. 구전되는 이야기는 흥미롭거나 놀랍거나, 좋든 나쁘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에게는 흥미로워하는 청자의 눈빛이 동기이자 보람입니다. 청자의 공감에 중독된 이야기꾼들은 원래의 사실에 살을 붙여 풍선처럼 부풀려 말하기도 합니다. 과장은 과하면 거짓이지만 적당하면 스토리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들 중 기록되어 남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좋은 문장력으로 써 내려간 흥미로운 작품들은 나중에 그것이 사실에 근거했는지가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은 말보다 더 깊이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 잡으며 더 멀리, 더 오래 전해지고 이어지고 발전합니다. 그때는 별 것 아니었던 이야기들이 신화, 즉 문화의 일부가 되는 과정입니다.
회사로 다시 자리를 옮겨 본다면, 우리는 이야기로부터 생겨나는 조직문화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벼운 대화처럼 들리지만 내용은 심각한 험담부터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가십까지, 빠르게 전파되고 소멸되는 이야기는 미담(美談)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반해 널리 알려 공감할만한 미담은 남기고 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영감과 귀감이 되어 구성원들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화를 고민하는 이들은 '스토리텔링'에 주목합니다. 스토리텔링은 어렵지 않습니다. 돈이 많이 들지도 않습니다.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도 뜻만 있다면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참 많습니다. 우선, 너와 나의 대화를 청취하고 간단하게나마 기록해 남기는 일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에 의미를 더해 스토리로 만들어 봅니다.
살아 숨쉬는 글
글을 지었다면 이제 생명을 불어넣을 차례입니다. 그 일의 시작은 확산입니다. 작가의 컴퓨터에만 있는 글은 사실 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기 되지 않으려면, 글은 고여있지 않고 '흘러야' 합니다. 뉴스레터나 사내블로그 등이 좋은 통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글에 숨을 불어넣는 일에 가장 기본이 있습니다. 바로 흥미로운 주제선정 입니다.
옆자리 김동료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도 주제가 되고, 뒷팀 최동료의 밴드 취미생활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너와 나의 이야기들은 모든 연관된 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참여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면, 이는 내부 소통에 의한 문화 발전과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문화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기도, 이야기가 곧 문화가 되기도 합니다. 글이 일방적 전달의 도구가 아닌, 양방향 소통의 징검다리가 되는 셈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며 서랍에서 첫 주제로 ‘글’을 꺼내놓은 것은, 문화도 글도 모두 좋아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면 쓸수록, 조직문화를 이야기할수록 이 둘이 서로 연관이 없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는 주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짙어져서입니다. 사내 매거진 작가로서, 또 외부 HR플랫폼 필진으로서 주로 회사를 이루는 사람이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만드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글은 문화를 드러내거나 문화 자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바탕으로 문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글로써 문화를 지으려면 마케팅 방식과는 조금 다른(더 높은) 정성이 필요했습니다. 문화에서의 글은 그 소재부터 분위기, 형식, 홍보 방식까지 구성원들의 공감을 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료를 칭찬하는 글이 누군가에게는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반감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신경써야 했습니다. 글로부터 알리고, 참여를 이끌고, 다시 그로부터 생산된 글이 여럿의 마음에 좋은 음으로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가수 신용재는 <가수가 된 이유>라는 곡에서, 본인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그리운 옛사람이 자신을 알아봐 주었으면 해서’라고 했습니다. (가사가 그냥 꾸며낸 이야기 같지 않은 애절함이 느껴지는 명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다가, 문득 ‘내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뭐지?’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문화의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문화를 소재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