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리더의 상
오늘도 일상을 평온하고 일관된 정성으로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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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주신 방학숙제는 미술관이든 음악회든 종류에 상관없이 예술 공연 체험을 하고 그 소감을 적어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와 제 동생에게 각각 5000원을 쥐어주시며, 집에서 멀지 않은 예술의 전당에 가서 음악회를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티켓 값은 3000원이었습니다. 나머지 2000원은 간식 값이었습니다.
저는 네 살 터울인 동생 손을 붙잡고 예술의 전당으로 갔습니다. 고작 열 살 정도의 꼬마에게 예술의 전당은 정말 크고 넓은 성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서, 어머니께서 알려주신 오케스트라 콘서트 티켓 부스 앞으로 갔습니다. 티켓 부스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저희 같이 꼬마 둘이 온 일행은 없었습니다. 줄은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고 우리도 천천히 앞으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키도 조그매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왔습니다.
"얘들아, 너희 내 티켓 살래? 이거 비싼 티켓인데, 아저씨가 사정이 생겨서 금방 가 봐야 하거든"
저는 동생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아저씨를 보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티켓 사려고 줄 서 있는데요, 저희 만원 밖에 없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티켓 두 장을 꺼내 보여주면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 알아. 근데 이 티켓 아주 비싼 거야. 여기, 3만 원이라고 쓰여 있는 거 보이지? 제일 앞자리에서 볼 수 있어. 아저씨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만원만 주면 이거 두 장 너희에게 줄게"
아주 미심쩍은 아저씨였고 무척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그저 '제일 앞자리'라는 말에 덥석 그 티켓을 아저씨에게 샀습니다. (3만 원이면 아마도 지금 가치로, 한 15만 원 정도 되는 로얄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우리로써는 과자며 딸기우유를 사 먹을 돈까지 모두 들여 장당 3만 원 티켓으로 바꾼 셈이니 큰 결심이었습니다. 그 티켓을 가지고 콘서트홀 입구로 갔습니다.
"얘, 너희 둘만 왔니? 부모님은?"
입구를 지키던 말끔하게 차려입은 누나가 물었습니다.
"저랑 동생만 왔어요"
"그래? 저기 제일 앞줄로 가면 돼, 시끄럽게 떠들거나 하면 안 된다"
누나는 우리 둘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당부하고는, 콘서트홀 앞쪽을 가리켰습니다.
'휴, 다행이다'
덜컥 티켓을 사고서도 이 티켓이 가짜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티켓은 진짜였고 제일 좋은 앞자리가 맞았습니다. (그 티켓이 '비매품 초대장'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콘서트홀은 컸고,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음악가들은 각자의 악기를 만지며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뿌-', '보~', '팅~' 하는 여러 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들렸습니다.
'악기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니!'
오케스트라며, 그걸 구성하는 악기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가까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게 음을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한 십여분쯤 지나고, 홀의 조명이 꺼지더니 잠시 후 무대 좌측 출입문을 비추는 하이라이트 조명이 켜졌습니다.
문이 열리고, 마치 제비의 꼬리처럼 두 갈래로 뒷부분이 갈라져 늘어진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하이라이트 조명은 그가 걷는 대로 따라가더니, 그 사람이 멈춘 곳에 함께 멈췄습니다. 그 사람은 무대 제일 앞에서 음악가들을 바라보도록 위치한 단 위에 올라서, 가느다란 막대를 들고 잠시 숨을 고르듯 그대로 멈췄습니다. 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은 적막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서서히 무대의 조명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의 팔이 조금 움직이면서 순식간에 음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로 두어 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내내 그 연주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마치 바람 같이, 흐름과 방향이 일정하지만 그 형태는 무척 자유로운 선율 속에서 이리저리 의식이 흔들흔들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잔잔한 호수 같기도, 때로는 거센 폭포 같기도 했던 그날의 클래식. 저는 클래식이, 오케스트라의 합주가, 그리고 지휘자의 지휘가 이렇게 멋진 줄 이전에는 몰랐습니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립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제일 앞자리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낀, 아주 큰 인생의 사건이었습니다.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는 제게, 리더란 그런 지휘자의 모습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데는 그 날의 클래식이 시작이었는지 모릅니다. 훌륭한 리더란, 귀에 편안한 합주를 위해 연주자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모두 조화롭도록 아우르고, 이곳저곳의 음이 불협치 되지 않도록 돌보며 최적의 화음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지휘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리더를 많이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현실의 장은 아름답고 웅장한 콘서트홀 무대와 달랐고, 훌륭한 지휘자와 오래 손발을 맞춰 온 오케스트라 같은 그런 조직이 대체로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럿이 있는 공간에서 자기 팀원을 깎아내리는 팀장님 태도도 그리 기본이 있어 보이진 않네요'
참고 참다가 결국 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럿을 참조로 이메일을 보낼 때 이전 대화를 온전히 포함시키는 것은 소통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행동’이라며, 타 부서원들까지 수신인으로 포함한 전체 회신 메일에서 저를 공개적으로 나무라는 팀장에게 1:1 개인 메신저로 보낸 말이었습니다. 저는 대체로 대인관계에서 원만한 소통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그의 거듭되는 이와 같은 행위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입니다. 메시지에 대한 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붉어진 얼굴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쏘아보는 무서운 얼굴을 한 팀장이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행위는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체로 서로가 주 수신인이자 발신인일 때, 여럿이 참조로 포함되었을 때, 그리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비판을 일삼았고, 그건 폭력에 가깝다고까지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는 있을까'와 같은 막연하고 현실감 떨어지는 고찰만 주야장천 하던 시기였습니다. 조직에 합류한 지 오래되지 않은 한 리더가, 본인의 입지와 존재의 확립 차원에서 기존 담당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는, 불확실한 개연을 유추하는 것조차 불쾌했던 경험이자 기억입니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리더를 맡았습니다. 직급은 부팀장이었지만 팀장과 업무 영역이 나뉘어 사실상 파트 리더의 역할이었습니다. 중간 관리자이다 보니 대체로 임원과 같은 의사 결정권자들과 소통할 일이 많았습니다.
임원과 부장은 예전에 같은 회사 출신이었는데, 그들은 습관적으로 과거 대기업 시절의 영광을 추억하듯 말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출신 회사뿐 아니라 아랫 직급자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했습니다. 특히 부장은, ‘큰 조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습관적으로 현 조직원들을 깎아내리곤 했습니다. 마치 자주 ‘누구누구네 아들은 어떻다더라’ 하며 비교하듯 이야기하는 엄마처럼, 리더의 이런 발언은 동기부여는커녕 직원들을 힘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직원들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조직을 부정하기 시작했고, 입만 열면 '퇴사'이야기를 했습니다.
‘적당히 하시죠’
입천장 끄트머리까지 나왔으나 끝내 이 말을 삼킨 건 외부에서 손님이 방문해 회의를 할 때였습니다. 부장은 손님이 참석한 회의 자리에서도 종종 ‘얘가 아직 어려서’, 혹은, ‘너 또 까먹었지?’와 같은 말로 부하 직원의 실수를 조롱하듯 질책하곤 했습니다. 빨개진 건 듣는 직원의 얼굴이었지만, 그로 인한 부끄러움은 사실 회의실에서 그를 뺀 모두의 몫이었습니다. 내 사람을 향한 핀잔, 조롱, 험담이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임을 그는 모르는 듯 행동했습니다.
인류 진화의 비밀을 다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외)에서는, 자기 가축화 이론에 의해 타 종에 다정한 개체만이 우월한 생명력을 가진 최후의 종으로 진화해 살아남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에 의하면, 우리는 유인원들 중 다정한 DNA로 진화해 온 유일한 개체이고, 진화와 생존의 핵심 열쇠는 인정(recognition)과 존중(respect)에 있습니다.
그들이 굳이 퇴화의 길을 가겠다면, 난 기꺼이 이런 리더들처럼 진화의 길을 가겠다, 고 다짐했습니다.
한 리더가 회식을 하던 중 술이 거나해져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했습니다.
“나, 괜찮은 매니저예요?”
나는 당연하게도 ‘매우 괜찮은 분’이라고 답했습니다. 그가 이 질문을 할 때만큼은 꽤 멋져 보였습니다. ‘괜찮은 매니저가 될게요’와 동일한 수준의 다짐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다짐을 한다고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리더가 했던 질문을 저는 종종 자문합니다. '나는 괜찮은 리더인가?, 나는 괜찮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2~3년 차 회사원일 때 일입니다. 당시 팀장님은 매우 꼼꼼한 성격을 가진 분이었는데, 저는 자주 실수를 하여 팀장님 앞에서 습관성 긴장 증후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분 앞에만 서면 왜 이리 작아지는지, 괜히 식은땀이 나고 논리도 잘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종이로 보고서를 출력해서 가져가면 한숨을 쉬며 빨간펜을 드셨는데, 요즘엔 최대한 지양해야 할 리더십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의 전형이었습니다. 팀장님은 또 종종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했는데, 허술한 대답이라도 나올라치면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러니 매 번의 보고는 마치 시험과 같았고,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자 저는 다각도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 시기에 배움이 참 컸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팀장님의 방식은 저는 선호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 팀장님 덕분에 아직까지 기반이 될 업무스킬 몇은 챙길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같은 회사 동료였던 친구가 그 팀장님에 대해, "그렇게 시달리고도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이유가 뭐냐", 고 물었습니다.
“적어도 밥은 잘 사주잖아”
고작 밥 자주 사준게 그리 고마웠을까 할 수 있겠지만, 호칭을 통일한 수평적 조직문화를 내세우고, 리더십 오너십 운운하다 책임질 땐 적당히 사회적 거리를 두는 스타트업의 흔한 리더들을 보면서 지지고 볶다가 퇴근하고 시원한 맥주잔에 같이 스트레스 얼려 털어버리던, 그 시절 그 팀장님이 가끔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배려, 존중, 겸손과 같은 기본, 책임, 결단, 회고와 같은 노력, 인정, 칭찬, 사과와 같은 자세, 그리고 열정, 냉정, 온정과 같은 온도 등 참 리더의 여러 자질을 모두 갖추는 것이 좋겠지만, 사실 리더도 사람이기에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리더'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그건 사실 좋은 동료의 기준과 다름없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앞선 여러 사례에서, 조율이나 화합은 고사하고 직원에게 경쟁의식을 갖거나, 구성원의 의지를 꺾는 행위만 하지 않아도 멋진 리더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리더는 자신의 팀원이 새로 출근하는 회사로 꽃바구니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팀을 버리고 이직한 것도 괘씸할 수 있는데, 꽃바구니라니요? 그 리더는 자신의 팀원과 아쉽게 작별을 하지만, 그건 회사와의 작별이지 자신과의 작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팀원이 새로운 공간에서 기죽지 말라고, 이 사람은 내가 아끼던 소중한 인재라고, 그러니 존중과 배려 바란다고 회사에 전하는 메시지라고도 했습니다. 바구니에 담긴 건 꽃의 모습을 한 리더의 따뜻하고 현명한 배려였습니다.
그런 리더를, 대면과 내면으로 직접 마주할 수 있길 오늘도 바라봅니다.
‘제게 필요한 경험을 주십시오'
농구를 모르는 이들조차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대흥행 극장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속 한 장면입니다. 주인공의 상대 팀 에이스는 가장 중요한 시합 전, 자신의 집 뒷산 절을 찾아가 기도하며 ‘이제 제가 더는 국내에서 증명할 것이 없으니 필요한 경험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결말의 복선이기도 했던 이 장면은 사실, 하는 모든 경험이 언젠가 리더가 될 직장인들의 공든 탑이거나 시들 싹수일 미래 암시와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이 경험이자 배움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후배들에게 차마 겪어 보라고는 하기 힘든 악몽 같은 경험도, 아직 참된 리더는 많다는 희망도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 Unsplash의Rob Si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