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화의 길

<꿈을 이야기한 동료의 빈자리> #2 - 참된 리더의 상

by 케니스트리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다. 선생님이 내준 방학숙제는 미술관이든 음악회든, 예술 공연을 체험하고 소감을 적어 제출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각각 5천 원씩을 쥐여주며, 집 근처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회를 보고 오라고 하셨다. 티켓 값은 3천 원. 나머지 2천 원은 간식값이었다.


나는 네 살 터울인 동생 손을 꼭 붙잡고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열 살 남짓한 아이에게 그 건물은 거대하고 넓은 성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가 알려준 오케스트라 콘서트 티켓 부스를 찾아갔다. 줄은 꽤 길었다. 우리처럼 꼬마 둘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은 없었다. 줄은 천천히 줄어들었고, 우리도 조금씩 앞으로 이동했다. 키가 작아 사람들 사이에 가려졌을 때, 어떤 아저씨가 다가왔다.


“얘들아, 너희 내 티켓 살래? 이거 비싼 티켓인데, 아저씨가 사정이 생겨서 금방 가 봐야 하거든”


나는 동생을 한번 보고, 다시 아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는 티켓 사려고 줄 서 있는데요, 저희 만 원밖에 없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티켓 두 장을 보여주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래 알아. 근데 이 티켓 아주 비싼 거야. 여기, 3만 원이라고 쓰여 있는 거 보이지? 제일 앞자리에서 볼 수 있어. 아저씨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만 원만 주면 이거 두 장 너희에게 줄게”


의심스러운 상황이었고, 아저씨도 왠지 미심쩍었지만, 어린 마음에 ‘제일 앞자리’라는 말에 홀려 티켓을 덥석 샀다. 지금으로 치면 아마 15만 원쯤 하는 로열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자며 딸기우유를 사 먹을 돈까지 모두 들여 그 티켓을 샀다. 그리고 콘서트홀 입구로 갔다.


“얘, 너희 둘만 왔니? 부모님은?”


입구를 지키던 말끔한 차림의 누나가 물었다.


“저랑 동생만 왔어요.”


“그래? 저기 제일 앞줄로 가면 돼. 시끄럽게 떠들거나 하면 안 된다.”


누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당부하고, 무대 쪽을 가리켰다.


‘휴, 다행이다.’


덜컥 티켓을 사고 나서 혹시 가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진짜였고 자리도 앞줄이 맞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티켓은 ‘비매품 초대장’이었다.


콘서트홀은 크고 웅장했고, 연주자들은 멋진 차림으로 각자 악기를 만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뿌~’, ‘보~’, ‘팅~’ 하고 울리는 다양한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악기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나?’


오케스트라에 대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그게 음을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것도 그땐 몰랐다. 십여 분쯤 지나 조명이 꺼졌고, 곧 무대 왼편 출입문에 하이라이트 조명이 켜졌다.


문이 열리고, 제비 꼬리처럼 양 갈래로 흘러내린 검은 양복 자락을 입은 사람이 등장했다. 조명은 그의 걸음을 따라갔다가, 그가 멈춘 곳에서 함께 멈췄다. 그는 무대 맨 앞, 단 위에 올라가 얇은 지휘봉을 들고 숨을 고르듯 멈춰 섰다. 공연장은 숨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몇 초쯤 지났을까, 무대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며 지휘자의 팔이 미세하게 움직였고, 곧이어 음악이 시작됐다. 그 뒤로 두어 시간은 정신없이 연주에 빠져들었다.


바람처럼 일정한 흐름과 방향을 지닌 선율은, 형태는 자유로우면서도 의식을 이끌어 갔다. 때로는 잔잔한 호수처럼, 또 때로는 거센 폭포처럼 밀려왔다. 클래식이, 오케스트라 합주가, 지휘라는 행위가 그렇게 멋진 줄은 그날 처음 알았다. 정명훈이라는 위대한 지휘자와 서울시향의 연주를 눈앞에서 듣고 느낀 그날은, 내 인생의 커다란 사건이었다.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는 지금의 나는, 리더란 바로 그런 지휘자의 모습과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개별 연주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전체의 조화를 만들어내고, 음이 삐걱거리지 않도록 돌보는 사람. 그게 좋은 지휘자이자 좋은 리더 아닐까. 하지만 그런 리더는 많지 않았다. 현실은 멋진 콘서트홀이 아니었고, 오랜 호흡을 맞춘 오케스트라와도 달랐다.


공개 비판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럿이 있는 공간에서 자기 팀원을 깎아내리는 팀장님 태도도 그리 기본이 있어 보이진 않네요”


결국 참고 참다가 이렇게 말해버렸다. ‘이전 메일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회신은 소통 기본이 안 된 행위’라며, 여럿을 참조에 넣은 메일에서 나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팀장에게 1:1 메시지로 보낸 말이었다. 나는 평소 원만한 소통을 지향하는 편이지만, 그 팀장의 반복되는 행동에 참았던 화가 터져버렸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옆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주로 이메일, 메신저, 그리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비판을 일삼았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폭력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좋은 관계란 무엇인가’, ‘잘못된 걸 고칠 수는 있을까’ 같은 생각만 반복하던 시기였다. 그는 조직에 새로 들어온 리더였고, 본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기존 담당자를 희생양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물론 그 추측마저 불쾌했다.


현 조직원을 부정


이직한 회사에서 나는 리더 역할을 맡았다. 직급은 부팀장이었지만, 사실상 파트장 역할을 했다. 중간관리자다 보니 임원과 같은 의사결정자들과 자주 소통하게 됐다.


임원과 부장은 같은 회사 출신이었고, 자주 과거 대기업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들은 아랫직급자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했다. 특히 부장은 “큰 조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현 조직원을 깎아내기 일쑤였다. 마치 “누구네 아들은 말이야” 하며 비교하듯 말하는 엄마처럼.


그런 말들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직원들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입만 열면 ‘퇴사’ 얘기가 나왔다.


‘적당히 하시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손님이 방문한 회의 중이어서 끝내 삼켰다. 그 부장은 외부 손님 앞에서도 “얘가 아직 어려서”, “너 또 까먹었지?” 같은 말로 직원의 실수를 조롱하듯 질책했다. 얼굴이 빨개진 건 직원이었지만, 민망함은 회의실 안 모두의 몫이었다. 리더의 말 한마디가, 구성원을 깎아내릴 뿐 아니라 자신의 민낯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는 몰랐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는 인류 진화를 다룬다. 유인원 중 유일하게 ‘다정한 DNA’를 선택한 종이 인간이고, 생존의 핵심은 인정(recognition)과 존중(respect)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들이 퇴화의 길을 걷겠다면, 나는 기꺼이 반대 방향으로 진화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자문이 된 질문


한 리더가 회식 자리에서 술이 거나해지자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 괜찮은 매니저예요?”


나는 자연스럽게 “매우 괜찮은 분”이라고 답했다. 그가 그 질문을 할 때만큼은, 꽤 멋져 보였다. “괜찮은 매니저가 될게요”라는 다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짐을 한다고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때 그 리더가 했던 질문은, 이제 내게 스스로 하는 질문이 되었다.


‘나는 괜찮은 리더인가, 나는 괜찮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밥 잘 사주는 리더


2~3년 차쯤이었을 때다. 당시 팀장님은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었고, 나는 자주 실수를 했다. 그래서 항상 그 앞에만 서면 괜히 위축되고, 말도 더듬고, 식은땀이 났다. 보고서를 출력해 가져가면, 한숨을 쉬며 빨간펜을 들곤 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의 전형이었다.


팀장님은 보고할 때마다 연이어 질문을 던졌고, 조금이라도 준비가 덜 되면 바로 화를 냈다. 매번 보고는 시험 같았고, 시험을 통과하려면 정말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그 시기, 배움이 컸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의 방식은 내 스타일과 다르지만, 여전히 그때 배운 몇몇 스킬은 지금도 내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


어느 날, 같은 회사 동료였던 친구가 물었다.


“그렇게 시달리고도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이유가 뭐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밥은 잘 사주잖아”


고작 밥을 자주 사준 게 그렇게 고마웠을까 싶지만, 호칭을 통일한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내세우면서도 막상 책임질 때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스타트업의 리더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지지고 볶고 욕도 했지만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잔하며 함께 스트레스를 풀던 그 시절, 그 팀장님이 가끔 그리워지곤 한다.


참된 리더의 상(像)


배려, 존중, 겸손과 같은 기본, 책임, 결단, 회고와 같은 노력, 인정, 칭찬, 사과와 같은 자세, 그리고 열정, 냉정, 온정과 같은 온도 등 참 리더의 여러 자질을 모두 갖추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사실 리더도 사람이니까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다. 그럼에도 ‘좋은 리더’라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그건 결국 좋은 동료의 기준과 다르지 않다는 걸 자주 느낀다.


앞선 여러 사례처럼, 조율이나 화합은 고사하고 구성원에게 경쟁의식을 갖거나 의지를 꺾는 행위만 하지 않아도, 멋진 리더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리더는 자신의 팀원이 새로 출근하는 회사로 꽃바구니를 보낸다고 했다. 팀을 떠난 게 괘씸할 수도 있을 텐데, 꽃바구니라니. 그 리더는 말했다. 작별은 회사와의 작별이지, 자기 자신과의 작별은 아니라고.


그 리더는 말했다.

자신의 팀원이 새로운 공간에서 기죽지 말라고,

“이 사람은 내가 아끼던 소중한 인재입니다. 존중과 배려 부탁드립니다.”

그 메시지를 담아 보낸 거라고.


바구니에 담긴 건 꽃의 모습을 한, 리더의 따뜻하고 현명한 배려였다.


그런 리더를, 대면과 내면으로 직접 마주할 수 있길 오늘도 바라본다.


‘제게 필요한 경험을 주십시오’


농구를 모르는 이들조차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대흥행 극장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속 한 장면이다. 한 농구팀 에이스 선수는 가장 중요한 시합 전, 자신의 집 뒷산 절을 찾아가 기도하며 말한다.


“이제 제가 더는 국내에서 증명할 것이 없으니, 제게 필요한 경험을 주십시오”


영화 결말의 복선이기도 했던 이 장면은, 사실은 지금 이 시기를 살아가는 리더가 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하는 모든 경험이 언젠가 공든 탑이 될 수도, 시든 싹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 이 모든 과정이 배움임을 깨닫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 배움 속엔 후배들에게 차마 겪어 보라고는 하기 힘든 악몽 같은 일도 있었고, 아직 참된 리더가 더 많다는 희망도 있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1화내가 글을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