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야기한 동료의 빈자리> #1 - 시작하는 글
설레는 만남 뒤에는 늘 아쉬운 헤어짐이 따른다. 회사라는 공간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같은 목표를 향해 머물던 사람들은 반드시 떠나고, 다른 이들이 그 빈 자리를 채운다. 떠난 이들에게 어떤 공간은 추억으로 남고, 어떤 공간은 쉽게 잊혀지며, 어떤 공간은 떠올리는 것조차 불편하다. 그리고 마음에 오래 남는 공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문화가 있다.
오랜 시간 문화를 고민했어도 그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도대체 왜 문화까지 신경 써야 하냐고 물어도, 딱히 논리 정연한 답을 내놓기 어렵다. 다만, 나와 내 주위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이 구성원의 행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다.
글을 짓고 미소를 쓴다
문장이 뭔가 어색하다. 동사 전후의 위치를 바꾸니,
글을 쓰고 미소를 짓는다.
이제 자연스럽게 읽힌다. 미소에는 쓴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글에는 쓰다와 짓다 모든 표현이 가능하다. 의미가 통한다고 해도 글을 쓰는 것과 짓는 것에는 미묘한 의미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쓰는 것은 사각사각 연필로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이고, 짓는 것은 글 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느낌이다. 마치 바닥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 집을 완성하듯, 글의 소재를 찾고, 주제를 다지고, 단어와 문장을 연결해 여러 번 고쳐 써 완성하는 모든 과정이 곧 짓는 것이 아닐까.
문화도 글과 비슷하다. 애초에 문화라는 단어엔 글(文)이 들어가 있다. 마치 글처럼, 문화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좋은 글이, 편한 미소가 그렇듯, 좋은 문화는 짓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냥 말고, 정성껏.
세상은 너무 넓고 상황도 다양하니까, 이야기의 시선을 잠시 옮겨서 우리가 일하는 ‘회사’로 향해보자. 회사에 생겨나고, 또 누군가 돌보며 가꾸는 문화를 우리는 ‘조직문화’라고 부른다.
어느 회사든 문화는 있다. 조직문화 팀이 뭘 하지 않아도, 문화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굳이 규정으로 정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반복해서 겪고 행동하는 것들은 곧 의식처럼 여겨지고, 그렇게 문화가 된다.
이건 사업이 잘 되든 안 되든, 리더가 바뀌든 말든 상관없이, 같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기만 해도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금의 참신함과 정성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문화도 있다. 팀에서 생일을 챙겨주는 문화, 부서에서 자율적으로 여는 월별 이벤트, 피플팀이 주도하는 패밀리데이(매달 셋째 주 금요일 반차),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갖는 티타임, 책을 돌려 읽고 후기를 나누는 북 토크, 함께 즐거운 일을 만들어가는 동호회, 대표이사의 손편지와 웰컴 키트로 새로운 식구를 환영하는 문화, 그리고 퇴사자를 위한 롤링페이퍼 문화 같은 것들.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구전(口傳)’이라고 한다. 구전되는 이야기는 흥미롭거나 놀랍거나, 좋든 나쁘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보람을 느낀다. 청자의 공감에 이끌린 이야기꾼은, 원래의 사실에 살을 붙여 풍선처럼 이야기를 부풀리기도 한다. 과장이 지나치면 거짓이 되지만, 적당하면 그게 곧 스토리다.
그런 이야기들 중엔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도 있다. 좋은 문장으로 써 내려간 흥미로운 글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회자된다. 그게 사실이었는지 아닌지는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된다.
좋은 글은 말보다 더 깊이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 잡는다. 더 멀리, 더 오래 퍼지고 이어지며 발전한다. 그렇게, 별 거 아니었던 이야기들이 결국 신화, 즉 문화의 일부가 되는 거다.
회사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면, 조직문화는 결국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 속에서 미화되거나 왜곡된다.
겉보기엔 가벼운 대화처럼 들리지만, 내용은 의외로 진지하거나 무거운 경우도 많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험담이나 가십은 빠르게 퍼지고, 또 빠르게 사라진다. 미담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널리 알려지고 공감을 얻는 미담은 남겨둘 가치가 있다. 그런 이야기들은 영감이 되고, 구성원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에 주목한다. 스토리텔링은 어렵지 않다.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도, 뜻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다.
우선, 너와 나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간단하게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된다. 그 기록에 의미를 더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보는 거다.
글을 지었다면, 이제 생명을 불어넣을 차례다. 그 시작은 ‘확산’이다. 작가 컴퓨터에만 저장된 글은 그냥 일기일 뿐이다. 일기가 되지 않으려면, 글은 흘러야 한다. 뉴스레터나 사내 블로그 같은 채널은 좋은 통로가 된다. 예전에는 '사보'나 '브랜드북'형태로 회사 로비에 비치되곤 한 문화를 소재로 한 글들이 있었다. 모두 독자를 만나며 생명을 얻게 된 글이요, 문화다.
생명 이전에 흥미로운 주제 선정이 있다. 무엇이 좋은 문화 이야기의 주제가 될까? 옆자리 김동료의 일과 삶, 뒷자리 최동료의 남 모르는 선행과 같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은 주제가 된다. 회사의 문화 개선의 노력이나,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도 훌륭한 소재다. 그렇게 만들어진 너와 나의 이야기는, 우선 연관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리고 브랜드가 조금 더 알려지면, 문화는 브랜드를 지지하는 하나의 축이 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가 생긴다면, 그건 곧 내부 소통을 통해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발전한다. 문화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가 곧 문화가 되기도 한다. 글이 일방적이지 않고, 양방향 소통의 징검다리가 된다.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면서 ‘글’을 첫 주제로 꺼낸 건, 글도 문화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을 쓰면 쓸수록,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면 할수록 이 둘을 별개의 존재로 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내 매거진 작가로서, 또 조직문화 담당으로써 회사를 이루는 ‘사람’과 그들이 일하는 ‘공간’에서 생겨나는 문화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글은 문화를 드러내기도 하고,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문화를 홍보하는 글을 쓰거나, 글로 문화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는, 가치 균형의 추가 '시기'나 '효율'에 기울어진 (나의 본업) 마케팅과는 조금 다른, 어쩌면 더 깊어야 할 감성, 또는 정성이 필요했다.
문화에 관한 글은 소재부터 분위기, 형식, 전달 방식까지 구성원의 공감을 늘 고민해야 했다. 동료를 칭찬하는 글이 누군가에겐 상대적인 박탈감을 키울 수도 있고, 회사를 칭찬하는 글이 마치 겉도는 찬양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디에든 있을 수 있는 예민하고 비판적인 시선은, 무시하고 지나가기엔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고, 더 세심하게 썼다.
글로 알리고, 참여를 이끌고, 다시 그 참여로부터 또 다른 글이 태어나 구성원들의 마음에 좋은 울림으로 퍼지길 바라며 글을 썼다. 가수 신용재는 <가수가 된 이유>라는 곡에서, 본인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그리운 옛사람이 자신을 알아봐 줬으면 해서’라고 했다. 그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다가 문득, ‘나는 왜 글을 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화의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글을 소재로 문화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