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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보다 밀도

<꿈을 이야기한 동료의 빈자리> #3

by 케니스트리

"편지의 고민은 어떻게 나의 마음을 멋지게 전할지였고

문자의 고민은 어떻게 60자 안에 내용을 담을지였고

카톡의 고민은 가벼움과 지루함의 줄다리기였다"


편리가 늘고 비용이 줄며 말 한마디의 무게가 현저히 가벼워진 요즘 대화 속에서, 오늘도 일상을 평온하고 일관된 정성으로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언젠가 카카오톡 계정을 탈퇴하고 넉 달 정도를 버틴 적이 있었다. 처음 탈퇴한다고 했을 때, 가까운 지인들은 ‘생활이 되겠냐’거나, ‘너만 편하지 주위는 다 불편해’라며 우려와 질책을 건넸다. 아버지는 심지어 “야, 사람들이 너 무슨 신상에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특이한 놈이라면서 기피할 거야”라며 걱정하시기도 했다. 요즘엔 다소 ‘큰 일’처럼 여겨지는 카카오톡 탈퇴를 결심한 건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복잡하고 무겁게 쌓인 휴대폰 연락처와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당시 카카오톡은 1주일 이내엔 재가입이 불가능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왕 마음먹은 김에, 1주일 정도 한 번 없이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과감히 탈퇴했다. 아직도 그날이 기억난다. 들어가 있던 단체 채팅방 목록을 정리하고, 친한 지인들에게는 탈퇴 사실을 알리며 중요한 이야기는 문자나 전화로 부탁한다고 전했다. 모두 의외라는 반응이었지만, 곧 돌아올 거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탈퇴를 했다. 내친김에 휴대폰도 초기화했다. 쓰지 않는 앱들이 너무 많았고, 몇 년간 초기화 없이 사용해온 탓에 메모리도 무거워져 있던 터라 단숨에 다 털어버리고 싶었다. 이후에는 전화와 문자 앱만으로 하루를 보냈다. (사실 전화는 한두 통, 문자는 거의 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저녁때까지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 또 하루가 지나 일주일이 되는 동안, 점점 비어 있는 시간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됐다. 업무 집중도도 올라가서, 할 일을 끝낸 뒤 잠시 멀뚱히 앉아 있게 되는 시간도 생겼다. 그 여유 속에서 글감을 정리하고, 동료들과 이야기도 더 자주 나눴다. 돌이켜보니 카카오톡 대화에 (쓸데없이) 쓰던 시간이 꽤 많았구나 싶었다. 그렇게 카카오톡 없이 보낸 시간이 4개월이나 됐다.


지금은 다시 카카오톡을 잘 쓰고 있고, 때때로 해외 지인들과는 왓츠앱이나 인스타그램 메신저로 소통한다. 그래도 여전히 ‘전 국민이 쓰는 플랫폼도 결국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도구를 대하는 바른 태도란 그저 잘 이용하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서비스 제공자들도 소비자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되고, 독점적 권력 보다는 서비스 품질에 더 신경 쓰지 않을까?




최근 블루투스 이어폰을 잃어버렸는데, 가장 불편했던 건 전화 통화였다. 평소처럼 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하면 손이 자유롭지만, 이어폰이 없으니 전화기를 귀에 직접 대야 해서 두 손이 묶였다. 필기를 해야 할 때는 더 불편했다. 그래도 좋았던 점은 통화에 집중이 잘된다는 거였고, 아쉬운 점은 오랜 통화가 손을 묶어버린다는 게 좀 적응이 안 됐다는 거였다. 그러던 중 동료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유선 전화기를 썼을 때 기억나요? 전화기 앞에 가야만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하면 수화기를 두 손으로 들고 받았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저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통화할 때 전화 끊으며 고개 숙여 인사까지 하셨어요.”


“그때는 대학교 입시전형이나 회사 입사면접 결과도 전화로 알려줬다는데. 발표날이면 전화기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벨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고 해요.”


그 시절을 직접 겪은 건 아니지만, 장면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한 번의 소통이 지금보다 훨씬 더 귀하고 소중했던 기회였던 것 같다. 요즘에는 연결이 쉬울수록 소통은 더 가벼워지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관계의 무게도 함께 가벼워지는 듯 하다.


카카오톡을 다시 설치했을 때, 넉 달의 공백 뒤에도 여전히 반가움으로 이어지는 관계들이 있는 반면, 더 많은 사람들은 “카카오톡을 탈퇴했었어?”라는 반응이거나, 그냥 조금 멀어진 느낌의 관계가 됐다. 물론 넉 달이란 시간은 과거 유선전화를 주로 사용하던 시절에 비해 훨씬 더 긴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동안 연락처 안 지인들 사이엔 얼마나 많은 단문, 줄임말, 이모티콘으로 교감과 대화가 오갔을까. 그 양이 상상도 되지 않았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광속으로 우주여행을 다녀왔더니 지구의 시간이 무한히 지나있었던 것 처럼.


벌써 한 해도 더 된 일이지만, 이후로 생긴 버릇으로 나는 가족들과 톡 보다는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해외에 있는 동료를 포함해 오랜 인연들과는 온라인 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속도나 빈도보다, 대화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을 선호하게 됐다.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예전엔 빠르게 달리는 게 좋았는데, 조금 느리게 달려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세게 불던 맞바람도 빠르게 달릴 때는 그냥 방해물처럼 느껴졌지만, 느리게 달릴 땐 땀을 식혀주는 청량한 동반자가 됐다. 소통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공식적인 요청엔 즉답보다는 한 템포 느린 신중한 응답을, 가볍지 않은 관계에는 SNS 댓글 하나에도 존중의 마음을 담아 조금 느리게 표현해보려고 한다. 너무 ‘진지충’ 같아 정 떨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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