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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Oct 08. 2024

속도 보다 밀도

"편지의 고민은 어떻게 나의 마음을 멋지게 전할지였고

문자의 고민은 어떻게 60자 안에 내용을 담을지였고

카톡의 고민은 가벼움과 지루함의 줄다리기였다"


편리가 늘고 비용이 줄며 말 한마디의 무게가 현저히 가벼워진 요즘 대화 속에서, 오늘도 일상을 평온하고 일관된 정성으로 채우는 나의 동료들에게.




언젠가 카카오톡 계정을 탈퇴하고 한 넉 달을 버틴 적이 있습니다. 처음 탈퇴한다고 했을 때, 가까운 지인들은 제게 '생활이 되겠냐'거나, '너만 편하지 주위는 다 불편해'라며 우려와 질책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심지어 '야, 사람들이 너 무슨 신상에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특이한 놈 이라면서 기피할 거야'라며 걱정하시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요즘엔 다소 '큰 일'인 카카오톡 탈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이유는 우선 복잡하고 무겁게 쌓인 머리가 아플 지경인 휴대폰 연락처와 카카오톡 친구 목록 정리가 첫 번째였습니다. 그런데, 카카오톡은 당시 정책 상 1주일 이내 재 가입이 안 되었습니다.


이왕 마음먹고 한 일인데, 1주일쯤 한번 없이 살아보지 하는 마음으로 과감히 톡을 탈퇴했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들어가 있던 단체 채팅방 목록을 정리하고, 친한 지인들에게는 탈퇴 사실을 알리며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면 문자 메시지나 전화를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모두 의외라는 반응이었지만 곧 돌아온다고 믿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탈퇴를 했습니다. 내친김에 휴대폰도 초기화를 했습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앱이 너무 많아진 데다 몇 년을 사용하며 초기화 한 번 하지를 않아 무거워진 메모리를 단숨에 싹 치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이후에는 전화와 문자 메시지 앱 만으로 한 나절을 보냈습니다. (사실 전화는 한두 통, 문자는 거의 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녁때까지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루, 또 이틀, 일주일이 지나며, 마치 비어있는 듯한 여유로운 시간이 많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업무 집중도도 높아져서, 할 일을 끝내고 잠시 멀뚱히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글감을 모아 편집하거나 동료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카카오톡 대화에 (쓸데없이) 쓴 시간이 생각보다 많았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적응하여 카카오톡 없는 시간을 4개월이나 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다시 카카오톡을 잘 쓰고 있고, 때때로 해외의 지인들과는 왓츠앱이나 인스타그램 메신저로 소통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 국민이 쓰고 있는 플랫폼도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도구를 대하는 우리의 바른 자세는 그저 잘 이용하면서 결코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라고 여전히 굳게 믿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겨야 서비스 플랫폼도 언제든 소비자가 떠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광고 피로도를 늘리는 것을 그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길게 카카오톡 탈퇴 에피소드를 서사한 것은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 함입니다. 제가 최근 블루투스 이어폰을 잃어버렸는데, 가장 불편했던 것은 전화통화였습니다. 평소라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전화를 받으며 손은 자유로이 다른 일을 했을 텐데, 이어폰이 없으니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귀에 대고 있어야 하므로 통화 중에 두 손은 더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필기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장점은 통화의 집중도가 올라갔다는 것이고, 단점은 오랜 통화에 손이 묶인 것이 조금 적응이 안 된다? 였습니다. 그러면서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선 전화기를 썼을 때 기억나요? 전화기 앞에 가야만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상대가 나 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으면 수화기를 두 손으로 받치고 대화를 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저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통화할 때 전화 끊으며 고개 숙여 인사까지 하셨어요"


"그때는 대학교 입시전형이나 회사 입사면접 결과도 전화로 알려줬다는데. 발표날이면 전화기 앞에서 초초한 마음으로 전화 벨소리가 언제 울리나 기다렸다고 해요"


사실 직접 경험한 적은 없는 것 같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였지만, 장면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한 번의 소통이 지금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기회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연결이 쉬울수록 소통은 더 가벼워지고, 그로부터 이어질 관계의 무게 또한 함께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카카오톡을 다시 설치했을 때, 약 넉 달의 공백 뒤에도 여전한 '환영과 반김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있는 반면 더 많은 수의 지인들은 '카카오톡을 탈퇴했었어?'라는 반응이거나, 그냥 조금 멀어진 느낌의 관계도 있었습니다. 물론, 넉 달의 시간이면 과거 유선전화를 사용하던 때 보다 체감상 더 긴 시간이었을지 모릅니다. 제게는 잠시 멈춰있던 세상에서 지인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단문, 줄임말, 이모티콘으로 의미가 축약된 대화가 오갔을까, 그 양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광속으로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왔더니 지구는 더 늙어 있었다,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장면처럼요.


카카오톡 탈퇴를 겪고 나서 저는 가족들에게 자주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묻는 대신 가끔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동료를 포함해서, 오랜 인연들과 모여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랜선 미팅도 종종 갖습니다. 속도나 빈도 보다 밀도를 높인 대화의 가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빠르게 가는 게 좋았는데, 조금 느리게도 가 보았더니 빠르게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거세게 불었을 맟바람도 빠르게 달릴 때는 거슬리는 방해에 불과했는데, 느리게 달리니 땀을 식혀주는 청량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소통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공식적인 요청에는 즉시보다는 한 템포 느린 신중한 응답을, 가볍지 않은 관계에서는 SNS 포스팅 댓글 하나에도 존중의 느낌을 담아 조금 느리게 해 보려 합니다. 너무 '진지충'같아 정 떨어지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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