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품은 장미 #7 - 세 번째 편지
중간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그대에게.
처음,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의사에게서 들었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그리고 조직검사 결과를 받은 뒤, 이제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한다며 결국 그것이 ‘암’이라는 확정적 선언으로 다가왔을 때, 부모님은 도대체 어떤 심정이셨을까요.
정작 나는 담담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곁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아끼는 마음의 크기만큼, 사랑의 깊이만큼 그들은 상실감이 컸을 거라고, 지금은 짐작할 수 있어요.
저는 과거 암을 앓았고, 다행히 치유의 시간을 잘 견뎠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당신이 최근까지 림프종을 앓았지만 치료 효과가 좋아 이제는 일상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이끌림이 있었어요.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어요. 젊은 나이에 암을 겪었다는 공통의 경험, 그리고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인연.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조금 더 빨리, 더 깊이 가까워지게 만든 것 같아요.
서로 스쳐 지나가지 말라고, 서로를 꼭 알아보라고, 신이 우리 둘에게 같은 시련을 주신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한 적이 있어요. 정말 철없는 생각이지요?
암이라는 검사 결과지 앞에서 나는 괜찮은 척, 무던한 척, 강한 척하며 오히려 흐느끼는 엄마를 다독이고,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속은 무너지고 있는 게 너무도 보였던 아빠 앞에서 나 역시 무너질 수는 없었어요.
고백 하나 하자면, 사실은 무서웠고, 황망했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어요. 그런데 담담한 척이라도 해야 했어요. 그냥 그 슬픔 속으로 들어가, 따스한 품에 안기지 못했어요.
그리고 지금, 당신이 내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있어요. 오랜만에 만난, 너무도 소중한 인연의 아픔에서, 그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불안함이 이런 거였구나— 이제야 깨달아요. 뇌로 침범했을 가능성이 있는, 예후가 좋지 않다는 림프종의 검사 결과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어요.
처음엔 한숨만 나왔고, 그다음엔… 눈물이 계속 났어요. 사무실이라는 공간이라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어 눈꺼풀 아래 머금었다가 조용히 닦아내는 눈물이 자리 옆 휴지통을 가득 채웠어요. 며칠을, 시도 때도 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훌쩍였어요. 하지만 계속 그렇게 지낼 수만은 없었지요.
“길은 하나야. 그 길을 잘 아는 의사 선생님 따라서, 시간과 정성 조금만 들여서 걷기만 하면 돼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무너지는 감정을 억지로 주워 담으며 버티는 사람이, 괜찮은 척하며 하는 이런 뻔한 위로조차 '너무 큰 도움이 된다'며 손을 잡아준 그대. 고마워요.
잊을 수 없는 날이 있어요. 성당 카페에서 그대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날이었어요.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낮지만 또렷한 어조로 말씀하셨어요.
“우리 아이, 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깊이 허리 숙여 인사드렸고,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짧은 단어였지만, 그 안엔 말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어요.
슬픔, 아픔, 따스함, 고마움,... 그리고 사랑.
의사 선생님이 안내할 길을 잘 걸으며, 동행이 지치지 않도록 나눌 이야기에 그런 마음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픈 이는 그대인데, 곁에 있는 나도 그대로부터,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소중한 우리 인연들로부터 치유를 받아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