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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의 시간

가시를 품은 장미 #8 - 뇌 병변 조직 검사 계획

by 케니스트리

항암 환자를 위한 기도


치유자이신 주님

오늘 항암치료를 앞두고 계신 이 환우의

두려움과 불안을 헤아려 주시고

항암치료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시며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서울 성모병원 기도문 중




회사 건물 정기 주차권을 취소했었다. 차로 하는 출근 대신, 자전거나 대중교통처럼 조금 더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출퇴근해 보자는 결심 때문이었다. 나는 본래 편한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습성이 있다. 그런 약간의 불편함이 때로는 '열심히 살아간다'는 삶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도, 한번 해보자며 주차를 뺐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의 PET-CT 결과 뇌에서 의심스러운 음영이 보였다는 말을 들었다. 아직 확진은 아니었고, 의사도 단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그 너머로 가 있었다. 혹시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연달아 휘몰아쳤고, 당황한 마음속에서 본능처럼 현실적인 준비부터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주차를 신청했다.


돌아보면, 내 성향이 그렇다. 상상력이 과도하게 앞서고, 감정은 종종 과잉된다. 머릿속 시나리오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까지 흘러간다. 그러고 나면, 그 안에서 실질적인 행동들을 정리해두곤 한다. 간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주차를 다시 신청하고, 동행 계획을 짜고, 회사에 휴가 가능 여부를 묻고 있는 내 모습은, 간구하면서도 그걸 외면할 신에 대비하는 나약하고 못난 인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 돌이켜보면 그건 과도한 상상력이 아니었다. 곧 닥칠 현실임이, 지금 꽃잎을 떨구는 바람처럼 확실한 수순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당장 있을 큰 검사에 동행하기로 했다. 그녀는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검사실에서 나오는 길에 흔히 있는 현기증이나 탈진, 그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되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왠지, 더 오랜 시간 곁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았다.


회사에 물었다.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라 휴가를 자주 쓰게 될 것 같다고. 휴가 일수가 넉넉지 않아 무급 병가가 가능한지 물었지만, 돌아온 건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직계 가족이 아니면 간병을 위한 병가가 불가능해요. 휴직 말고는 방법이 없네요'


관계적 무력감이 밀려왔다. 나는 법적으로 타인이었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는 그녀를 위해 쓸 힘도, 동원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다. 불가의 벽이 단답의 형태로 명확히 세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병원이 경부고속도로 근처라 밤 사이 간병과 출근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점, 그리고 조금 일찍 출근하면 저녁 다섯 시에 퇴근할 수 있다는 점 등이었다. 낮에는 자주 가지 못하더라도, 간병이 더 절실한 밤에는 곁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추가 검사 결과는 ‘CNS 전이가 거의 확실시되는 림프종 재발’이었다. 병변은 두 개, 뇌 깊숙한 곳에 있었고, 그중 하나는 주요 신경과 가까운 위치였다. 의사는 ‘좋지 않은 자리’라고 표현했다.


조직검사를 위해 뇌신경과 수술이 정해졌다.


"머리에 구멍을 뚫고 바늘을 찔러 넣는 방식인데, 위치가 좋지 않아 조심스럽대요"


병원에 다녀온 로사는 울지 않았다. 다만 눈물이 묻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예정된 머릿속 조직검사는, 자칫하면 중요한 신경을 건드려 몸의 일부가 마비될 수도 있고, 시력이나 감각에 손상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가리고 거를 권한이 우리에겐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암 앞에서는.



수술실의
시간


물로 씻는 예식. 세례는 천주교 신자로서 믿음과 사랑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 이전의 나를 씻어내는 과정이다. 누군가의 과거를 정결하게 하는 이 물의 예식은, 사제가 성수를 이마에 붓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세례를 받는 이는 대자녀, 그 믿음을 정신적으로 지지하고 이끌어주는 이는 대부모라 부른다. 로사는 최근 한 사람의 대모가 되었다. 그 역할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감사히 받아들였고, 대녀의 이마 위로 성수가 흐르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봤다.


"저는 어릴 때 유아세례를 받아서 그 기억이 없어요. 이마에 성수가 흐르는 느낌은 어떤 거예요? 궁금한데, 더는 기회가 없네요."


그녀에게 더는 이마를 씻는 예식의 기회가 없다. 신은 야속하게도, 수술실에서 다른 목적으로, 다른 물질로 머리를 씻는 시간만을 허락하셨다.


사제가 붓는 성수에는 실수가 없다. 그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절차이며, 돌아가거나 고칠 여지가 없는 은총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대모로서 정성껏 그 과정을 지지하고 도왔던 그녀가, 이번에는 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까.


마땅하고 당연하며, 돌이킬 수 없는 수술실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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