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품은 장미 #10 - 뇌생검 후
그리움은,
사랑이란 나무에 꼭 필요한 양분 같아.
‘그 몇 시간도 참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하루 종일 붙어있을 계획을 세우던 우리는, 결국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떨어져 있는 게 삶이고, 재회가 감격일 테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상상이 한낱 소꿉장난처럼 느껴집니다. 살지 못하면, 모든 게 헛꿈일 테니.’
아직 안 깨어났나요?
하루 종일을 연락을 기다리고, 밤을 거의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 일찍이 되어서야 병원 중환자실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조직검사 입원할 때 동행하며, 중환자실 직통 번호가 적힌 '수술 환자 보호자를 위한 안내문'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둔 것이 유용했다.
간호사는 친절히 알려 주었다. 잘 깨어났고, 수치가 안정적이라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곧 일반 병실로 내려갈 거라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무소식의 보상은, 다행히 희소식이었다.
수술은 서너 시간쯤 걸린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었다. 최소 침습 뇌생검이라고 해도, 뇌 부위라서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수술 중 아주 작은 손의 떨림도 신경을 건드려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줄 수 있기에, 매우 까다로운 수술이라고 했다. 이번에 재발한 암은, 자꾸만 자기를 몰아내려는 세력에 반발해 너무 깊숙이 숨어 버려 그 정체를 알아내는 일 마저도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악질 테러집단 같았다. 고약하고 몹쓸 녀석 같으니.
중환자실에 전화를 한 것은 꽤 잘한 일이었다. 사무실에 있었지만 일이 잡히지 않던 전날 오후에 비하면, 그래도 큰 고비 하나 넘겼다는 걸 안 아침에는 마음을 조금 편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반차를 신청했다. 분명 오후에 그녀가 일반 병실로 갈 것이란 판단에서다. 모든 감각이 정상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전에, 전화가 왔다.
미카엘, 잘 마치고 왔어요.
반가운 목소리. 기분이 어떻냐는 말에 로사는, 아직은 좀 멍하다고 했다.
나 한쪽 손이 잘 안 움직여요.
오후에 병실에서 마주한 그녀의 얼굴은 조금 부어 있었고, 웃는 표정도 한쪽은 좀 어색했다. 눈은 잘 깜빡이는데, 아무래도 얼굴 한쪽 감각에 약간의 장애가 생긴 것 같았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잘했다고, 어디 불편한 곳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왼손이 조금 불편하다고 했다. 아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의도대로 손을 조금 움직일 수는 있어도, 당기거나 누르는 힘을 잘 못 쓰니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우리 예상했던 일이에요. 선생님도 일시적인 마비가 있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너무 겁먹지 마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
항암 후에 잠시 미각을 잃었다가 다시 돌아온 경험을 이야기하며, 잠시의 문제일 거라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손을 주물러주고,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해 그녀의 손가락을 걸고 힘을 주어 보라고 하며 수시로 확인을 했다. 다행히 얼굴 부기와 감각은 빠르게 돌아왔다. 그런데 손 감각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 좀 봐줘요. 어때요?
하루 뒤 토요일 낮에 병원을 찾았더니, 그녀는 머리의 거즈를 살짝 올리고 상처 부위를 봐달라고 했다. 머리의 붕대는 풀고, 거즈를 보호하는 그물망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상태였다. 거즈를 들어 올리자, 수술자국이 보였다. 길게 반 뼘 정도. 생각보다 컸다.
생각보다 크네요. 간지럽지는 않아요?
금속 핀으로 살을 오므린 수술자국 주위로 머리카락이 들러붙어 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상처 부위를 소독하러 병상에 방문했다. 간호사에게, 환자가 가려워하는데 수술부위 주변의 머리를 모두 깎는 게 어떻냐고 물어봤다. 간호사는 월요일에 선생님께 여쭤보고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씻는것도 안된다고 했다. 가렵고 냄새나는데 씻지도 못하게 한다며 로사는 시무룩 해졌다.
항암을 하며 결국에는 빠질 머리카락이니, 앞으로의 치료도 수월하려면 빡빡 깎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당장의 허기짐, 당장의 가려움이 원래 보이지 않는 위험보다 더 괴로운 법이니. 로사는 주저했다. 선생님 허락도 없이 깍는건 좀 위험하지 않겠냐고. 아니, 그보다 그동안 어렵게 다시 기른 머리를 다시 싹둑 잘라버리는 걸, 무척 아까워한 것 같기도.
나는 의사 선생님을 믿는다. 병원의 시스템을 믿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믿는다. 그리고, 병원에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수술 환자들의 머리를 밀어온, 이발사 아저씨를 깊이 신뢰한다.
그래서일까. 늘 전문가의 말과 집단의 시스템을 지나치리만치 믿어온 이 답지 않게, 그녀의 머리를 꼭 싹싹 밀어주고 싶었다. 당장 수술 자국 주위에 엉킨 머리카락은 별로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앞으로 며칠은 더 머리를 감지 못하는 그녀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소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산책 겸, 잠시 걷고 올래요? 내가 예전에 말했던 이발소도 한번 가 보고요.
나는 이미 몇 해 전 귀 수술을 할 때, 이발사 아저씨를 만나 머리 일부를 밀었었다.
걱정 마요. 이렇게 가리니까 티도 안 나네.
이발사 아저씨는 수술 부위를 묻더니, 바로 필요한 만큼만 머리카락을 지웠다. 수술실의 선생님과 이발사 아저씨는, 깊은 공조 관계임이 분명하다. 환자의 머리카락과 마음은 이발사 아저씨가, 환자의 건강은 의사 선생님이 돌보기로 한, 그런 이상적인 협업 관계.
얼마나 많은 환자들의 머리를 밀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의 어두운 얼굴을 봤을까. 나는 그를 신뢰한다. 그 일은 대충 할 수 없다. 병원에서, 이발기로 환자의 머리를 부분, 혹은 전부 민다는 것은, 그 일을 해야 하는 이들과 그들 동행의 슬픔을 거울을 통해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발소에 갔다. 아저씨는 반가이 인사를 받고, 눈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우리는 앉아서, 또 다른 여자 환우의 머리를 싹싹 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