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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든 바람

가시를 품은 장미 #11 - 뇌생검 후 (2)

by 케니스트리

생각보다 큰 상처


상처 주위에 물이 닿으면 안 되는데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예요. 아저씨 워낙 잘하시니까 믿어 봐요.


결국 머리를 밀기로 결정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언제나와 같이 간단한 설명에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위잉 위잉 이발기를 켰다. 지지직. 드륵. 샤사삭. 쓱쓱. 기분 좋은 머리 깎여 나가는 소리.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소음일 텐데, 난 이 소리가 참 좋다.


다 됐습니다.


로사의 머리에 난 수술 자국은 더는 숨지 못했다. 반 뼘 정도. 생각보다 컸다. 그 속에 있는 녀석도 정체를 드러내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건 조금 후로 미뤄야 했다.


손가락 반마디 정도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크죠?


로사의 부은 볼이 불만을 가득 머금어 더 퉁퉁 부어 보였다.


그러게요. 아마 사정이 있겠죠. 쉽지 않은 검사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주변에 머리가 자라면 잘 안 보일 위치니까, 무사히 회복 중인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봐요, 우리.


문득 나의 귀 뒤쪽에 남은 상처와 거의 잃어간 청력이 떠올랐다. 기관지도 열고 닫는 게 아직도 부자연스러워 물을 빨리 들이켜지 못하고, 치과 치료를 받을 때 목을 닫지 못해 어려움이 크다. 모두 가까운 부위에 가한 방사선과 항암 치료의 상흔이다. 당시 방사선과 선생님은 복잡하고 조밀한 설계도를 보여주며, 최선의 치료를 위한 선량과 조사 루트를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청신경을 완전히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고 미안해했다.


침샘을 손상시키는 것보다 이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나는 의료진의 판단을 존중했고, 괜찮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늦지 않게 발견해서, 그렇게 나아서, 살아서 감사하다고, 마음을 끄덕임으로 전했다.


로사는 머리를 밀자 한결 시원하다고 했다. 머리를 깎는 것, 고등학교 때 했던 반항의 목적이 아닌 성인이 되고 나서의 삭발에는 늘 눈물이 있었다.


군 입대 전, 그리고 항암 중. 그중 이번 눈물은 마치 내성발톱처럼 안으로 흐르고 고인 기분이었다. 자, 이제 됐어요. 두피에는 크고 작은 절개 흔적이 두세 곳 더 있었다. 철심으로 오므린 상처가 있어서 조심해야 했고, 아저씨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상처 주위를 잘 피해서 머리를 짧게 깎아 준 아저씨. 고맙습니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기분은 좀 어떠세요?


묻는 선생님은 오후에 병실에 들른 다른 환자분의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수술 후에 회복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선생님. 깨어나 일반 병실로 옮긴 지 사흘째, 불안함도 궁금한 것도 많던 때였다.


선생님, 상처가 너무 커요. 아주 작은 상처 하나만 남을 거라고 했는데 왜 그런 거예요?


궁금한 것 중 하나를 물었다. 봉합 흔적이 여럿 보이고 길게 난 절개 흔적이 신경이 쓰였다. 손 마비 증상은... 언제쯤 괜찮아질지. 아니면 영원할 가능성도 있는지. 어차피 수술을 직접 하지 않은 선생님은 할 수 있는 대답이 뻔할 것이겠지만, 마치 지나는 객 소매 붙잡듯 로사는 선생님께 궁금한 걸 물었다.


미안합니다, 환자분.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내는 선생님. 저희가 수술 전에 많은 검사를 해도, 수술실에서도 계속 영상 검사를 보면서 상황에 따라 치료 계획이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더 작게 잘해 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실망스러우시죠?


때로 소프트함이 단단함을 이긴다. 이런 뻔한 말에 더는 마음이 살랑이지 않는, 중년이 청년보다 더 가까운 어른이지만 어느 오후 병실에 든 훈훈한 바람은 의구심의 옷을 벗기기에 충분한 따스함이었다.


하나의 길


다시 항암을 해야 한대요. 조직검사 결과로 림프종 뇌 재발이 맞다고 해요. 조직검사 후 외래에서 만난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표준 치료 계획에 유턴이나 갈림길은 없다고 했다.


총 네 차례의 고용량 항암과 조혈모세포 이식. 갈 수밖에 없는 길. 오직 하나의 길. 이 길이 끊기면 어쩌지?


선생님, 치료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나요?


... 그러면 곤란하죠.


선생님은 만약이라는 말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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