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품은 장미 #13 - 마음의 병
할아버지를 잃고, 나는 형언하기 힘든 상실을 앓았다. 소중한 이를, 너무 사랑하는 가족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었다. 무엇보다 후회가 가장 힘들었다. 잃어버린 더 많은 만남의 기회와, 할아버지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하지 못한 나의 미숙하고 어설펐던 마음은 두고두고 아프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바쁜 나를 기다리다 잠드셨고, 다시 먼 길을 떠나 한동안 볼 수 없을 손주의 뒷보습을 바라보아야 했다.
젊어서 운동을 많이 하신 할아버지는 연세가 지긋하신 때에도, 병이 든 직전까지도 산에 다니며 건강을 챙기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암세포의 잠식에 힘을 잃어가는 모습, 그 고통의 시간을 사실 나는 주변시로 다 보고 있으면서도, 별일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늦게 귀가한 손주 얼굴 한 번 보려고 방 문을 열며 슬쩍 미소 짓던 할아버지의 온화한 얼굴 이면에, 쉬는 숨마다 내뱉던 고통의 탄식이 있었음을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아팠던 과거와 로사의 지금을 겪으며, 다시금 미숙했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던 병든이의 아픔을 되새기게 된다.
로사와 나는 성당 봉사단체에 속해 있다. 봉사단체 분들은 모두가 유쾌하고, 참 선한 느낌이다. 그들은 서로의 좋은 일에 마음으로 축하하고, 나쁜 일에는 진심의 위로를 건넨다. 누군가를 공감하는 힘, 그게 참 진하게 느껴지는 좋은 모임이 틀림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로사의 병이 깊어지고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들 사이의 대화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고해라도 해야 하나.'
사람들은 그저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인데, 평화로운 세상, 아픈 이가 나아 돌아올 따뜻한 공간을 잘 보전하려 애쓸 뿐인데, 나는 왜 진심으로 공감하고 축하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 또한 그녀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공황장애. 치료의 끝에, 암세포와 함께 파괴된 인내심의 그릇, 그 한계를 넘어 마주한 검은 공포의 끝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싸우고 있는 나의 로사. 13일째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젯밤 푹 잘 잔 사실이 괜히 미안해진다.
이건 천체물리학의 세계라기보다는, 그냥 감성의 차원이다. 아픈 이는 아픈 세상에 산다. 온통 까맣고, 쓰라리고, 불쾌한 세상. 우리가 지하철 역사에서 참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이라며 비관의 탄식을 내뱉을 때, 그들은 당장 찢어질 것 같은 하복부의 고통과,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는 무기력함과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 세계가 더 괴로운 것은, 이 고통이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막막함이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세상은 나를 잊은 것처럼 느껴진다.
병이 둘러싼 공간, 그걸 헤쳐나가는 게 오로지 병자 스스로의 몫인 것만 같다. 누군가의 관심이 너무 과도하다고 느끼고, 더러는 나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낀다. 나는 몸만 격리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외로움에 시달린다. 너무도 버거운 짐. 그걸 받치고 길을 밝히는 일을 하는 많은 이들의 관심, 혹은 수고로움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병든 세포의 악한 기운은 뉴런(Neuron)에까지 스며든다.
밖에 있는 이들은 가늠하기 힘들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직시하고 마주하기가 두렵다. 아픈 이의 세계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어 주저하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아주 당연하다. 사실 바깥 세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저 한 두 번의 위로와, 진심 어린 기도뿐.
아픈 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로사는 항암을 하지 않는 회복기에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집 앞 호수공원을 걸었다. 머리에는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도 하고 물 한 병을 챙겨 집을 나섰다. 올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해도 가릴 겸, 민머리를 의식해 챙이 넓은 모자를 써도 로사는 왠지 밖에 나가면 건강하게 다니는 사람들의 세상에 스스로가 무척 이질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어쩜 다들 이리 건강할까. 나만 아픈 사람 같아요.
아니에요. 로사도 다르지 않아. 로사에게는 아픈 걸 치유하는 시간이고, 그건 누구에게나 이르든 늦든 겪을 수 있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에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많은 이들의 화려하고 행복한 삶의 소식 속에서 나만 초라한 외톨이가 된 것만 같은 상대적 박탈감, 또는 자존감의 상실.
흔히 겪는 일이라고 하지만, 낯설게, 바라보고 돌보아야 할 심리적 증상이다. 치료를 더는 이어가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는, 어쩌면 그 어떤 부작용보다도 무서운 마음의 병.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우리는 알죠. 그저 관망하는 입장에서는 깊이 공감하듯 보여도,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어요. 지금 멈춰 있는 시간의 무게와 고통,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길에 주위를 둘러봐도 동행이 보이지 않거든요. 견디기 힘들 거예요. 그게 환각이고 착각이라는 걸, 그 속에 있는 이는 알 수가 없거든요.
'공황장애라는 걸 인지하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정신상태면, 이미 그건 공황장애가 아닐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