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품은 장미 #9 - 최소 침습 뇌생검
응급실은 내게 낯선 장소였다. 장 한 번 말썽이었던 적이 없었고, 그 흔한 골절도 겪지 않았다. 고생을 사서도 하고, 힘듦을 마다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다행히 살면서 크게 다친 적이 없었다. 건강에 그리 관심 갖지 않았던 것 치고는,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세상 이치가 어찌 그렇던가. 당연하게도 무난은 자만이 되어 내 세포를 위협했다. 유난했어야 했어. 그래야 했다. 암이 생긴 뒤에야, 무사가 행복임을 알았다. 암과의 전쟁은 치열했고, 전쟁터에는 안팎으로 상흔이 남았다. 문제는, 그게 머리였다는 점이다.
수년 뒤, 결국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귀를 열어 수술해야 했다. 말 수가 적은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귀에 대한 오해 때문인지 수술이 쉬울 거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귀 뒤에는 수많은 신경 다발과, 아주 예민한 뇌가 있었다. 그걸 건드리지 않고 해내는 수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수술 후 회복해 일반 병실로 내려와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8시간이 넘게 지났다고 들었다. 수술로 큰 질환은 진정됐지만, 여러 불편함이 여전히 남아있다. 감각과 통각, 모두에 대해서.
그래도 감사한 건, 내게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벼락처럼 덮치는 사건을 보자. 그건 지평선 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사고는 예고 없이 오고, 영원한 흔적이나, 영원한 이별을 남긴다. 병은, 비록 불치의 그것이라 해도 우리에게 시간을 준다. 병자는 치유되고, 혹 불가항력 이어도 대체로 결론을 맞이할 시간일 준다. 그리고 언제나, (물론 믿는 자에 한하여) 희망은 있다. 그것만은 사고와 대비되는, 상대적 자연스러움이다.
하지만 서서히 죄어오는 병의 어둠이 묵직하게 나를 짓누를 때가 있다. 그게 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의사 선생님은 로사의 머리에 두 개의 병변이 보인다고 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도와줘. 몸은 죽을힘을 다해, 음영으로 우리에게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었다. 혈액내과 선생님이 신경외과에 빠른 조직검사를 의뢰했다. 조직검사는 뇌 병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결정적인 절차였다. 병변은 MRI 상에서 2cm 이상 두 개가 확인되었고, 그중 하나는 운동 기능을 관장하는 부위에 인접해 있어 접근 자체에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검사 전날까지 그녀는 미간의 압통을 호소했다. 열과 구토가 심한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차가운 얼음을 팩에 넣어, 건넬 뿐이었다. 사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몸살기를 동반한 소화불량일 수도 있는 증상을, 나는 멋대로 병변의 위치와 관련된 간접적인 신호라 여겼다. 마음이 다급했다. 하지만 수술실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이 상황을 응급으로 인식한 건, 우리뿐이었다. 나는, 병원의 통제아래 있다고 하면서 애써 침착한 사람처럼 굴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조직검사 일정이 잡혔다. 말이 조직검사지, 머리 부위는 뇌 수술과 절차와 무게가 같다고 했다. 병변이 뇌 깊숙한 부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3차원 좌표를 계산하여 안전한 경로를 확보한다고 했다. 최소 침습 뇌생검(Stereotactic brain biopsy)이라는 시술은, 사전 영상 검사로 병변의 위치를 정밀하게 설정한 후, 두개골에 소형 구멍을 내고, 미세한 바늘을 삽입해 조직을 채취하는 수술이었다.
이 방법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했지만, 역시 위치 때문에 쉽지 않다고도 했다. 시술 후 두통, 구역감, 신경학적 이상-마비가 오거나, 감각이 무뎌지는 등-증세를 동반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대체로 일시적이지만, 영구적인 손상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가장 주의할 것은, 뇌 내 출혈로 인한 뇌압 상승이었다.
좋은 이야기가, 하나도 없네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온 로사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말했다.
혈관이 없는 팔은, 로사가 케모포트 없이 받았던 이전 항암 치료의 흔적이었다. 채혈을 하는데도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금식인 걸 잊고 사간 간식을 건네며, 그 바보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나중에 수술 마치면 먹어요' 했다. 그리고 멋쩍어 그 엄청 작은 발을 보며 웃었다.
웃어야 한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야 한다. 웃음도 전염이 되니까, 좋은 기분은 면역 세포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테니까.
그녀의 이마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네임펜으로 그려져 있었다. 뇌에 바늘을 찔러 넣어하는 검사. 침습 조직 검사는 주변 신경 때문에 조심스러운 수술이라 했다.
나 다녀와서 바보 되는 거 아냐? 나 바보 되면 어떡할 거야?
바보 되면? 이때다 싶어서 끝말잇기 해야지. 내가 계속 이길 거예요.
웃으며 말하다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머리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손으로 가만히 짚어 보고, 입술을 댔다. 그리고 등을 다독여 줬다. 그녀는 편안하다고, 따뜻하다고 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병실의 불이 꺼졌다. 우리는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말을 하지 않고, 서로 눈을 바라봤다. 그러자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일었다. 한 평 남짓한 병실에서 우리는 그렇게, 눈으로 속삭였다.
고마워요. 곁에 있어줘서, 잘 버텨줘서.
잠드는 그 찰나의 순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높이가 달라 올려다봐도, 얼굴의 반은 가려졌다. 하지만 다른 것은 보이는 듯했다. 눈동자가 마치 석양 노을이 지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뇌 조직 검사 수술날 아침을 알리는 해가 떴다.
나는 출근을 하며, 그녀의 안녕을 기도했다. 환우를 위한 치유의 기도가 뭐였더라. 그냥 주님의 기도를 욌다. 이어지는 말로, 무사히 검사를 마치고 회복할 것을, 기도했다. 그녀가 곧 편히 잠들고, 아무 일 없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다음 날까지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을까. 중환자실에 있을까. 아무 일 없겠지. 그래, 그럴 거야. 가족들 연락처도 모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기다림 말고는. 앉은 곳은 사무실인데, 수술실 앞에 온통 머문 마음, 조바심.
당신들이 틀렸어. 무소식은 결코, 희소식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