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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Jul 20. 2021

XXXVIII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1.

     Y의 취업이 어머니에게 그리 기쁜 소식일 리 만무했다. 변변한 일자리도 하나 없는 채로 무턱대고 나가 사는 막내아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항상 삼겹살을 구워주시는데, 그날도 역시 삼겹살에 비빔국수를 말아주셨다. 퇴근한 어머니는 삼겹살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두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진호네, 하고 인사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녀와 인사했다. 어머니가 국수를 삶는 동안, 나는 고기를 구웠고, 작은형은 상을 차렸다. 그리고 우리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었다.

     걔 이번 주부터 교육받아. 그릇 위 돼지고기 기름이 하얗게 굳은 기름종이를 접으며, Y의 소식을 전했다. 나는 개수대로 그릇을 옮기던 어머니가 그의 소식에 찰나에 굳어진 얼굴을 얼른 돌리는 것을 발견했다.

     뭘 못 해줬냐 되묻는 아버지와 달리, 무엇도 해주지 못했다는 문장을 안고 사는 어머니에게 아들들의 학창 시절은 항상 부끄러운 기억이다. 내가 봐 온 바로는 그녀로서는 ‘처절하게’ 살았음이 명백하지만 자신의 '처절함'이 고작 이 정도 형편이었다는 게 그녀는 부끄러운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무렵, 피자가게를 할 때 아버지는 지역 환경운동에 앞장섰는데, 그로 인해 삿된 이득을 더는 취하지 못하게 되자 지역 건달은 당장 가게에 찾아와 면전(面前)에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대단히도 그런 일을 잘 견뎌냈다. 이후 피자가게를 정리하고 아버지는 한동안 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청소부며 가정부며 체면을 따지지 않고, 물류 창고나 이웃집, 건물 복도 등에서 일하며 삼 형제를 먹여 살렸다. 그건 아마 어머니로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들 입장에서 어머니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어머니 입장에서 아들을 위해서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란 말이다. 어떻게든 내가 지켜줘야 할, 내 사람이니까.

     순덕이를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자신만 생각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순덕이를 보면 진창에 굴러도 지켜야 할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직 어린 나로선 그 감정이 달갑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2.

     또 지난 연인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를 미워하지 못하고, 되레 미안한 부채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그녀는 직접 인사를 나눈 적 있다. 아주 잠깐 그녀가 우리 집 앞까지 왔을 때 나는 어머니를 보고 가라고 했다. 양쪽이 모두 불편한 장면이라 양쪽 모두 사양했지만, 인사만이라도 해두는 게 낫겠다 싶어 나는 서로에게 서로가 기다리고 있단 거짓말로 짓궂은 만남을 강행했다. 그날 여린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쥐며 어린 나이에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말해준 어머니에게 그녀는 뜻밖에도 감동했다. 어머니도 그녀가 영민하고 귀엽게 생긴 게 좋은 아이 같다고 내게 몰래 말했다.

     어쨌든, 이후 그녀가 취업에 떨어진 내게 실망스럽다며 부끄럽다고 했던 이야기를 나는 한동안 가슴 안에 품고 견디며 지냈는데, 아무래도 견딜 수 없어 어머니에게 토로했다. 그 아이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 거지…… 하고 마무리 짓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괜찮아 나는,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 아이의 입장에서도 서운했을 법도 하지……, 하고 뜻밖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위로했다.

     20년도 더 된 옛날, 아버지가 회사와 맞지 않는다며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사실 처음부터 억지로 다닌 거였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그를 바라보며, 이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의 말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지만, 말없이 큰 상처를 받았다. 그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존심이든 수고로움이든 온 힘 다해 지켜주려 할 텐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을 관두고 싶으니 이해해달라는 말에 그의 말에 그녀는 그가 자신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그러라고 했지만 말이다. 이후 셋째를 갖고, 낳고, 기를 때는 창백한 얼굴로 그의 선거운동을 열성으로 도왔지만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고백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여태껏 그의 뜻에 따라 살아온 것은 어쨌든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비단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녀와 헤어져야 결심했다.



    3.

     나의 게으르고 옹색한 처지가 어머니에게 있어서 그리 자랑할 게 못 된다는 게 아들로서 서운할 수 있으나, 나는 미안할 뿐이다. 내가 나보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해서. 어머니를 웃게 해주지 못한다는 게. 하지만 그럼 나 대로 살지 못하고 억울한 것을 어머니 탓을 할 것인가. 당신 때문에 참고 살잖아. 그것도 참 비루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하는 작업으로 내 처지가 조금 더 나아져서, 나 스스로에겐 물론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식탁을 정리하며 나 자신의 삶으로 누군가에게나 떳떳하고 책임지는 상상을 한다.

     엄마 Y 부러워? 나는 물을 틀어놓은 채 설거지하는 그녀 옆에 서서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웃었다.

     아들은 지금 엄청 웅크리고 있는 건데 왜 부러워해? 나는 팔을 번쩍 들어 올려 천장에 닿을 만큼 손을 뻗었다.

     아들은 이만큼 뛰어오를 거야. 엄마 봐봐. 이렇게나 성공한다고? 싶을 만큼 올라갈 거야. 봐봐. 나는 발꿈치를 들어 위태롭게 손을 뻗어, 결국 천장에 손을 닿는다. 어머니 눈엔 넘어질 것처럼 보였는지 그릇을 내려놓고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내 허리에 손을 댄다. 엄마 보고 싶은 방송 말해봐. 내가 거기 나와서 우리 엄마 자랑해줄게. 어머니는 결국 막내아들의 재롱에 활짝 웃었다.

     나는 손을 내리고 어머니의 지친 어깨를 쥐며 말했다.

     잘 될 거야 엄마. 기대하면서 지켜봐요. 엄청 대단해지려고 이렇게 사는 거니까, 아들이. 어머니는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는 아들의 손을 따뜻하게 쥐었다. 순덕이 보러 갈래? 하는 물음에 그녀는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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