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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씨씨 Nov 17. 2019

그냥 웃는 사람

“왜 웃어?”     


누군가 물었을 때 잘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기뻐서 웃는 것은 아니었다. 난처한 상황, 기분 나쁜 상황, 할 말이 없는 상황에 모두 웃었다. 거의 모든 상황에 웃음으로 대처했다. 그러면 대충 상황이 무마되거나 넘어가는 것 같았다.      


정말 왜 웃고 있는 걸까. 왜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냥 웃는 건 내 감정을 숨기는 무기였다. 그런데 왜 감정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무도 그러라고 시키지 않았는데.      


“난 좀 싸우고 싶어. 어떻게 싸우고 화해해? 자 지금부터 싸우자! 하는 거야?”     


몇 안 되는 친구들과도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흔한 말다툼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기분이 상하는 상황에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내가 화를 내는 방법은 침묵이었다. 그냥 웃으며 상황을 넘겼다. 내가 지긋지긋하게 훈련하고 터득해온 건 감정을 누르고, 숨기고 괜찮은 척하는 거였다. 그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어서 집 밖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대체로 그랬다.     


“난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넌 어떻게 연락 한 번 안 할 수 있어?”     


아무도 내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관계에 적극적이지 않은 내게 직구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내 대처는 회피였다. 관계를 끊는 것. 그건 가장 쉽고 확실하게 갈등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나 원래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이 아니야.”     


‘원래 그런 스타일‘이란 말은 웃겼다. 나 이런 사람이니 그냥 너는 나가떨어지란 말이었다. 결국 내 옆에 남아있는 건 엉망진창인 나를 오래 보고 계속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었다.      


늘 더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넓지도 않은 내 관계망 안에 있는 사람들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맺고 싶었다. 건강한 관계 중 하나는 싸울 땐 싸우고 풀 때는 푸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 상황이 무서웠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불만이 생기면 말하고 풀어야 했는데, 그게 가장 어려웠다. 우리 지금 좀 싸워, 하고 싸워야 하는 건지. 그다음은 어떡해야 하는지. 그래서 불만을 삼키고 삼키다가 결국은 관계가 끝났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 불만뿐만 아니라 좋은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어려웠다. 낯 간지럽다며 얼버무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또 나는 웃었다. 웃으며 “말 안 해도 알아야지!”라고 진심도 아닌 시답잖은 말이나 내뱉는다.      


가벼운 관계와 가벼운 대화. 진심을 꺼내야 하는 진중한 대화가 이어지면 듣는 역할만 자처했다. 내 마음을 나도 알 수가 없는데 말로 꺼내는 것은 더 어려웠다. 늘 유쾌했으면 싶은 대화가 깊어질 때 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상황이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얼버무리고 나면 그 상황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대체 내가 무슨 마음으로 어떤 말을 했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오래 본 친구들은 내게 사회용 인격 모드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사회 안에서 쓰는 가면은 있겠지만 내가 웃는 얼굴, 가벼운 농담, 밝은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는 게 친구들에게 신기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런 것에 미숙한 나를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면이 내게 착 붙으면 붙을수록 진심을 다하는 관계는 없어졌다.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에게 진심을 다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누구 하고나 적당한 관계에서 그치는 게 편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외로운 느낌도 들었다. 참 이상한 마음이었다.     


하자 있는 사람.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난 정말 하자가 있었다. 아빠와의 미해결 된 문제는 아빠와 떨어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덮어둔다고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지긋지긋하게 따라와서 어떤 다른 형태로 나를 잠식하고 문제를 일으켰다.      


어떤 관계가 꼬이고 어려울 때마다 생각했다. 더 건강해지고 싶다고. 내가 건강해져야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아마도, 정말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빠와의 숙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좀 웃어주라. 엄마 볼 땐 그렇게 잘 웃으면서.”     


밖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웃는 나는 아빠만 보면 표정이 굳는다. 아빠만 보면 기분이 나쁘지 뭐야. 장난 속에 가시 돋은 말을 한다. 아직 우리한테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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