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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Nov 08. 2019

도쿄의 목욕 시간

하루 중 가장 신성한 시간

우리는 아주 전형적인 도쿄의 맨션에 산다. 보통의 맨션들은 변기와 목욕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데, 우리 집도 마찬가지이다. 화장실 안에는 목욕실, 세면기, 세탁기가 있다. 목욕실로 들어가는 문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으며, 아무리 세게 물이 튀겨도 밖으로 물이 세어나가지 않게끔 실리콘 패킹이 되어있어 완벽 밀폐가 된다.


그런 우리 집 화장실은 다음과 같이 생겼다:

"토이레"(변기실)와 세면실은 심지어 타일이 아니라 원목 마루 바닥이다.



일본의 문화 중 나에게 아직도 가장 특이하고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 중 하나는 오후로(お風呂: 목욕) 문화이다. 다른 문화의 목욕과 다른 점은, 일본인에게 목욕이란 씻는 행위보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에 더 가깝다. 마치 기독교인이 식사하기 전이나 잠들기 전에 기도하는 것처럼, 모든 일본인은 매일같이 관습적으로 목욕을 한다. 다른 나라의 현대인에게 목욕은 몸을 씻는 매우 프라이빗한 시간이지만, 일본인에게 목욕시간은 가족과 함께하는 정신적인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모로 목욕을 즐겼던 고대 로마인들과도 닮아있다.


이들의 유별난 목욕 사랑은 근대사회로 들어서면서 나름대로 모던한 형태로 발달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맨션의 오후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도쿄 맨션 생활을 하면서 일본인의 근검절약 정신을 몸소 배우고 있다. 거의 모든 현대식 오후로는 물을 다시 데우는 기능이 있으며, 심지어 세탁기에 호스로 연결하여 그 물을 재활용하여 세탁용 물로 쓸 수가 있다. 나는 어리석게도 매우 오랫동안 ‘세탁기에 웬 호스가 딸려왔나’, 설치기사가 수도에 연결하다 부품이 남은 줄로만 알았었다.




일본은 내가 살아 본 4번째 나라이지만, 이들의 목욕 문화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굉장히 낯선 문화다. 도쿄의 모든 일본인 부모는 (보통은 주양육자인 엄마가) 아이와 함께 매일같이 목욕을 한다. 몇 살까지 함께 목욕을 하냐는 집집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같이 한다고 한다. 우리에겐 입 밖으로 얘기하기도 남사스럽지만, 심지어 부부가 같이 목욕을 하는 집도 있단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 흔한 일은 아닐지언정, 일본인에게는 이상할 것도 없다고 한다.


일본인에게 목욕이라는 의식의 절차는, 먼저 목욕실 안의 탕 바깥쪽, 즉, 샤워기가 있는 공간에서 몸을 씻은 후 욕조 안으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물을 가득 받아놓은 욕조에 남자 연장자부터 차례로 목욕을 즐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도쿄에서 어린아이가 있는 핵가족은 늦은 오후나 초저녁에 엄마가 아이들과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 아빠가 퇴근하면 그 물을 데워서 사용한다고 한다.


유독 이 나라에서 목욕이 발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습하고 더워서, 온천이 많아서, 물이 귀해서, 난방시설이 취약해서, 등등. 하지만 이 모든 지리적, 기후적 원인들은 현대의 기술로 많이 극복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목욕 문화를 포기하지 않고 현대 건축물에 끼워 넣으면서까지 유지해나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너무 특이해서 생각을 해봤다. 내가 오후로에 대해 물어본 모든 일본인은 목욕 시간이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시간 중 하나라고 하였다. 이들에게 목욕이란, 가족의 본딩(bonding) 시간이자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신성한 시간인 것이다. 우리가 식사를 거르지 않듯이 일본인은 매일 목욕을 거르지 않는다.


일본은 원래부터가 엄청 개인주의적이고 나와 남 사이의 선이 굉장히 분명한 사회이다. 하지만 오후로가 상징하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단독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족 사이만큼은 끈끈하게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 일지도 모른다. 일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가족 내에서 조차도 점점 더 개인화가 되어가는데, 이런 목욕 문화는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과 부모에게 확실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특이하긴 하지만, 이 공통된 의식을 각 가정에서 행하면서 집안에서 만큼은 "우리는 가족" 내지는 "우리는 일본인"이라는 연결고리를 놓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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