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도 리터치가 필요하다.
짹짹,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무리를 지어 연달아 울려 퍼진다. 가냘픈 몸뚱이에서 어찌 저리 날카롭고 커다란 소리를 내는지, 바로 귓전에서 울리던 알람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정신을 깨울 정도였다. 시야를 가린 눈꺼풀에 힘을 주어 일으키니 정면에 반투명한 유리안에 바깥 풍경을 흐릿하게 담은 창문이 보였고, 햇빛이 사각에 모양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도 보였다. 힘겹게 올린 눈꺼풀 사이로도 빛은 배려도 없이 가득히 들어왔다. 얼른 눈을 뜨고 일어나라는 잔소리가 소리 없이 귓등을 때리는 듯했다.
나는 이내 눈꺼풀을 모두 올리고, 오른쪽 눈을 손으로 비비며 주변을 완벽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어느 고지대에 위치한 오래된 집, 그 안에 있는 3개의 방 중 제일 작은 방이었다. 지금 막 아침을 여는 빛에는 아직 새벽녘의 색이 남아있었다. 이른 시간임이 분명했지만, 깨운 새들이나 아침 빛에 얄궂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른 이 시간에 깬 정신이 생각보다 맑게 눈을 뜨고 있었으니까.
벽면에 걸어둔 두툼한 외투를 걸쳤다. 전 날밤에는 옷도 갈아 입지 않은 채 잠들어 외출복 차림 그대로였으니, 외투 하나 만으로 나갈 준비는 끝났다. 방문을 열고 나서니 자그마한 거실에 먼저 닿았고, 바로 왼편에 한쪽 벽이 모두 문으로 되어있는 현관문이 보였다. 문은 나무가 골격이 되고 유리창이 살점이 되어 있는 미닫이 형태의 문이었다. 도심에서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방범에 매우 취약한 형태였지만, 이곳에서는 당연한 형태인 듯했다. 산세에 감싸여 자리를 잡은 몇 개의 가구들과 뚜렷한 믿음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그 저 이 자연과 가장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적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더 깊이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곧장 문 앞으로 다가가 오른쪽 문을 열었다. 순간, 찬바람이 몸을 치며 거실로 파고들었다. 나는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풀어놓았던 옷 깃을 교차하며 몸을 감싼 다음 흰색의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을 닫고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집터를 나섰다. 새소리는 나를 깨우던 직후와 별반 차이 없이 계속해서 울렸다. 사방에는 이른 겨울의 아침 공기 안개처럼 자욱했고, 작은 코를 통해 나에게 들어와 가슴팍의 공터를 한순간에 메웠다. 그 어떤 시원한 한잔의 물 보다도 청량했다.
가끔, 애처로울 만큼 그리운 장소를 떠올린다. 당장이라도 그곳을 찾아가 모든 그리움을 몸으로 받아내고 싶을 때가 있다. 현 위치에 서있는 나날이 버거울수록 그 생각은 더욱 간절해진다. 하지만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수는 없기에, 그렇기에는 겁도 불안도 많기에 그저 잠시 이 자리에 모든 걸 그대로 내려두고, 그리운 곳으로 몸뚱이만을 대동해 찾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의 기분, 감촉, 누군가와의 걸음, 이야기들을 새롭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되새기기 위해.
때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갈망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좋았던 기억은 새롭게 좋은 기억들을 채워도 기존 것의 위가 아니라 옆을 채우는 것이기에 무색해지지 않지만, 하루가 버겁기만 한 나날이 지속되면, 그 고단함은 좋았던 기억의 위를 숨 막히게 뒤덮으며 쌓인다.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때의 감촉과 기억을 모두.
매일이 힘든 사람에게도 좋은 기억은 있으나, 추억하지 못하는 연유가 이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좋은 기억에는 리터치가 필요하다. 치열함과 시련 속에 흐힛해져가는 것에 다시 색과 향과 모양을 입혀야 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부터 가능할 테니. 새로운 곳은 천천히 가도 괜찮다. 그리운 곳을 잊지 않도록 나는, 하루빨리 그곳에 가야겠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INSTAGRAM / PAGE / FACE BOOK / NAVER POST (링크有)
※ 詩와 사진 그리고 일상은 인스타와 페이스북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