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민 Jul 03. 2023

아, 얼마나 겪어야 할 것이 많은 게 인생인가

아이는 심한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다. 그 정도가 꽤 심각해서 신생아 시절 이후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아기피부를 잃었다. 거의 항상 빨갛고 거칠거칠한 피부인 상태다. 이건 꽤 괴로운 일이다. 심한 가려움 때문에 아이는 깊게 잠들지 못한다. 계란을 먹지 못한다. 얼굴에 손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아이를 울리며 나는 자주 보습제를 발라줘야 한다. 지나가는 어른이고 아이고 얼굴이 왜 저렇냐는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웃으며 아토피라고 대답하던 약간의 과거를 지나 무표정으로 아무 대답 없이 지나쳐야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의학 기술의 발전 덕분에 아이가 태어나기 얼마 전 개발된 아토피 신약의 도움을 받고 있다. 스테로이드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 유일한 단점이라고는 가격이라는 주사제 듀피젠트. 아이는 한 달에 한 번 이 주사를 맞기 위해 반나절 입원한다. 벌써 네 번째 입원이었다, 어제는. 처음 주사를 맞던 삼월, 내가 하루 반나절 함께 있었는데 둘째를 임신하면서 아빠가 입원 일정을 전담하고 있다. 입원하는 날이 되면 우리 세 가족은 간식과 장난감이 가득 든 짐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나선다. 그리 멀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대학 병원에 도착해서 같이 입원수속을 밟고 나는 아이와 남편을 배웅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볼일을 보며 여섯 시간 정도를 보낸 뒤 퇴원하는 아이와 남편을 기다린다. 그날은 모두가 고생을 했으니까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는다. 그렇게 짧게 병원 생활을 하루하고 나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피부 질환이라고는 전혀 없던 내 인생에 아토피가 큰 이슈가 되면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한 친구를 자주 떠올린다. 고3,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 같은 반 친구였던 지향이는 혼자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단체 급식을 먹지 않았다. 늘 딱 봐도 간이 없는 슴슴한 나물반찬에 잡곡밥을 먹으며 어떤 씨앗으로 짠 기름을 약통에 넣고 다니며 자주 바르던 지향이. 살면서 아토피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던 나는 이런저런 궁금증을 가졌던 것 같다.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너는 왜 급식을 먹지 않는지 계란과 밀가루는 (내 기준) 절대 위험한 것이 아닌데,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왜 넌 그 흔한 걸 먹지 못하는지,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지만 몇몇 궁금증은 지향이에게 직접 물어봤던 것도 같다. 너무 오래되어서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가 그 아이의 아토피 증상을 두고 당사자의 마음을 먼저 헤아릴 만큼 성숙한 고3이 아니었다는 건 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지향이는 정말 착한 아이였다. 모두에게 친절했고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다녔다. 아마 내 무례한 질문에도 웃으며 친절하게 답해줬겠지. 


한동안 나는 지향이를 잊고 살았다. 우리는 단짝도 아니었고 지향이가 엄청 외향적이거나 기억에 남을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그 아이를 떠올리고 혹시 내가 했을지 모를 무례함을 반성하고 있다. 내가 악의 없는 가벼운 무례함에 자주 상처를 받기 때문이겠지. 아토피 증상으로 힘든 아이를 보며 마음만큼은 아이 못지않게 아픈 나를 가엽게 여기기 때문이겠지. 엄마가 된 내게 큰 짐이 되어버린 아이의 아토피 피부염은 그래서 가끔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아주 가끔, 생각이 너무 많아서 돌아버리기 직전까지 갔을 때 맨 마지막에 드는 생각.) 더 다양한 사람들의 간접적인 마음이 되어보기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뻗어있을지 모를 나의 무례함을 점검해보기도 하니까. 


오늘도 돌기 직전까지 생각이 많아졌나 보다. 다 됐고, 아토피 꺼져라.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시간은 약간 단편소설 같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