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제주, 그것도 시골이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배달되는 음식점이 동네 치킨집 딱 한 군데뿐이니 의심할 것 없이 시골이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도 분교는 아니지만 한 학년에 반은 두 개, 전교생은 300명이 넘지 않으니 이 역시 시골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시골이라고 해서 밭과 밭 사이 드문드문 집이 있지는 않다. 나는 178세대로 구성된 나름 대단지 빌라에 살고 있다.
눈이 잔뜩 내린 다음 날, 차에 쌓인 눈을 쓰레받기로 걷어내고 있었다. 내 차 옆으로 4층 아저씨의 트럭이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고, 늘 그렇듯 가볍게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아저씨께서 귤을 내미셨다. 꼭지가 떨어졌지만 맛은 있으니 먹어보라고 하시며. 귤 농장을 하시는 아저씨이기에 사양하기보다는 기쁘게 받았다.
“혹시 음악 하세요?”
귤에 이어 말도 넘어왔다. 눈도 일자, 입도 일자. 감정을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라 덜컥 겁이 났다. 딸이 바이올린을 해서 시끄럽다는 항의일까 봐 제 발이 저렸다. 하루에 적게는 두 시간 많으면 네 시간을 연습하고, 시험을 앞두고는 예닐곱 시간을 연습하기도 했으니 항의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혹시 많이 시끄러우실까요?”
우리 집은 1층이고, 2층은 별장용 집이라 사람이 거의 없고, 3층에 사는 부부께서는 악기 소리가 거의 안 들린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4층 아저씨는 귀가 예민하신 걸까. 귤 봉지를 받아 든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입도 바짝 말랐다. 이 귤 안 주셔도 되니 민원만 아니기를 빌었다.
“아니오. 제가 일하고 돌아와서 차에서 내리면 음악이 저를 위로해 주더라고요. 1층 테라스 지날 때마다 소리가 들려서 한 번은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음악 하는 아이가 있는 집에 방음 부스는 필수라고 했다. 특히 바이올린 소리는 위로 올라가니 윗집에서 항의가 많다고도 했다. 다 알면서도 윗집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뻔뻔하게 방음 부스 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딸의 연주이지만 틀린 부분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연주를 들을 때면 나도 자주 짜증이 나는데 이웃들은 어떨까. 옆집도 3층도 괜찮다고 하니 괜찮다고 믿었다.그랬으면서도 4층 아저씨의 말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평소에도 무표정인 아저씨가 여전히 무표정으로 건네는 말에서 항의가 아닌 다른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아저씨가 ‘감사 인사’라고 하시며 보일 듯 말 듯 살짝 입꼬리까지 올리셨다.
“어머, 위로라고 해주시니 제가 더 감사해요. 음악은 제가 아니고 아이가 연주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해주신 이야기 꼭 전할게요.”
아저씨가 미처 다 올리지 못한 높이까지 보태 올릴 수 있을 만큼 최대한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꼬리만이 아닌 마음도 떠올라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항의가 아닌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아이의 음악에 위로를 얻었다니 이보다 더 큰 응원이 어디 있을까.
벅찬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주 가는 온라인 카페에 이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음악 하는 아이를 둔 부모가 회원인 곳이다. 이제까지 내가 쓴 글 중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다. 다들 항의일까 조마조마했다며 좋은 이웃, 따뜻한 이웃을 두어 부럽다는 댓글이 많았다. 그중 내 고개를 가장 많이 끄덕이게 했던 댓글은 ‘여유 있게 생활하시는 제주분들이 정도 많고 배려심도 많으시더라고요.’였다.
나부터 여유롭게 살고 싶어 제주, 그것도 시골로 이사를 왔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동네에서 만나는 이웃분들은 대부분 여유롭다.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나누는 건 흔한 일이고 맛있는 음식도 기꺼이 나눈다. 아이에게도 이름을 물어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를 하고, 새로 생긴 맛집이나 생필품 싸게 파는 곳, 산책하기 좋은 곳 등 정보도 스스럼없이 나눈다. 클랙슨 소리를 들을 일도 거의 없다. 조급함보다 기다리는 것이 우선되기에. 나만 여유로운 것이 아닌 이웃들도 함께 여유로우니 여유가 쉽게 일상에 스몄다.
여유롭게 살고 싶던 사람이 여유로워지는데 사는 곳은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까? 나는 이제 한 달 뒤면 서울로 돌아간다. 여유 없는 분주한 사람들 속에 섞이면 내게 여유는 옅어지게 될까, 아니면 이미 체득한 여유를 꾸준히 지켜갈 수 있을까. 시험대에 오르지만 자신 있다. 여유는 제주 시골에 산다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제주 시골에 살며 기다리려 애쓰고, 나누려고 애쓰고, 느려지려고 애쓰며 얻은 것이니 서울에서도 애쓰고 애써서 여유를 누리고 말 테다. 애씀의 정도가 깊어져야 할지는 모르지만.
이미 여유가 너무 좋음을 알아버렸는데, 이 좋음을 놓쳐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어쩌면 4층 아저씨가 내게 보여준 여유처럼 이제는 내가 서울 이웃들에게 여유를 보여줘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