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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안녕 May 25. 2020

혼자 사는 사람이 고양이를 키워도 될까요? -②

많이 우는 고양이, 괜찮은 건가요?

본가에서 우리의 첫 고양이 치즈를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치즈는 3일 동안 식기세척기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긴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얼굴도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3일을 보냈고 3일 뒤에 나와서도 친해지기까지 몹시 조심스럽고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화장실도 가지 않고 식기세척기 뒤에서만 살던 고양이를 봤던 터라 나는 아랑이를 데려와서도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본가의 삼냥이. 치즈. 치타. 미오.

그런데 의외로 아랑이는 사람을 몹시도 좋아했고 내 옆에 있을 때만 안심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쓰다듬어주면 놀랍게도 울지 않고 고롱거리면서 좋아했다. 단지 쓰다듬는 걸 멈추고 내가 할 일을 하기 시작하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당시에 살던 집은 원룸인 데다가 방음이 하나도 되지 않는 집이었는데 새벽에 이웃들이 이 소리를 듣고 깰까 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저러다가 아랑이 목이 쉬겠다 싶어서 초반에 나는 아랑이 옆에 앉아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본가에서 고양이 세 마리, 인간 넷이 같이 살던 때 우리 가족들은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이 별로 없었다. 듣는 건 고양이 셋이서 뛰어놀다가 서로 기분이 상해서 하악질을 하는 모습 정도? 어쩌다 한 번씩 가뭄에 콩 나듯 치즈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냐-" 하고 짧게 말하곤 했는데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더 들으려고 간식을 앞에 두고 목소리를 들려달라며 치즈에게 사정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는 조용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치즈와 반대로 아랑이는 엄청난 수다쟁이에 말이 많고 의사표현이 분명한 아이다.

"아랑아." 하고 부르면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꼭 대답을 해준다.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아서 행복하기도 하고 아링이가 표현을 많이 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초반에 나를 힘들게 했던 점이 아랑이의 수다스러움이었다. 

대답하는 아랑이 1
대답하는 아랑이 2

아직 서로 생활패턴이 맞춰지지 않은 우리는 낮밤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밤에 잠을 자고자 했고 아랑이는 밤에 뛰어놀고자 했는데 원룸에 불과한 집이니 아랑이가 신나서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다니는 놀이터가 내가 누워서 자는 침실인 거다. 같이 놀자고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이리 와서 이것 좀 보라며 멀리서부터 외치는 날카로운 음성도 있었고 뭘 발견한 것인지 급 조용해져서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나면 소리에 내 모든 신경을 집중해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상상하느라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잠을 계속 제대로 못 자다 보니 회사에 가서는 피곤해서 점심시간마다 낮잠을 자러 수면실에 가곤 했는데 한 번 깨져버린 신체리듬이 돌아오기까지 꽤 오래 고생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퇴근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청소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와야 하고. 집안일은 쌓여있는데 아랑이는 내가 퇴근하고 오면 극도로 흥분해서 아랑이를 충분히(최소 1시간 반) 쓰다듬을 때까지 진정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특히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 그 상황이 가장 심각했는데 내 생각엔 아랑이가 내가 눈에 보이진 않는데 물소리는 들리니 더 불안했던 것 같다. 나중엔 화장실 문을 열고 샤워를 했는데, 차라리 방에 튄 물을 닦아내는 편이 아랑이의 불안한 샤우팅을 듣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 내렸기 때문이다.


고민스럽고 힘들었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삶이 아랑이를 데려오고 나서 전부 깨졌다. 

생각해보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본가에서는 세 마리가 항상 함께 놀았고 함께 있었다. 고양이끼리는 서로 소리를 낼 필요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던데 그래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랑이한테는 내가 전부다. 내가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고 내가 보호자고 내가 유일한 가족이다. 

그렇다고 내 삶을 전부 아랑이한테만 쏟아붓기에는 돈을 벌어야 하고 내 가치에 대해서도 깊게 준비를 해야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아랑이와 내가 함께 살아나갈 평생의 동반자, 동반묘라면 우리는 맞춰야 한다. 서로가 이해를 해줘야 했다. 


첫 번째로 정한 우리의 룰은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아랑이에게 최소 30분 동안 같이 뛰고 낚싯대를 흔들면서 아랑이가 숨이 가빠질 때까지 노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깨끗하고 찬 물을 새로 주고 아랑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서 차려줬다. 효과는 상당히 좋았다. 사냥을 끝내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패턴이 점점 익숙해지니 밤에 놀자고 보채던 아랑이도 점점 비슷하게 잠을 자며 맞춰져 나갔다.

사냥을 하는 육식동물들의 패턴이라고 하는데 사냥을 끝내고 식사를 하면 포만감과 만족감 속에 잠을 잔다고 한다. 놀이시간과 식사가 함께 세트로 묶였을 때 시너지가 좋았다. 

재밌는 건 지금은 아침 일찍 아랑이가 깨도 나를 깨우지 않고 혼자 조용히 창밖을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노는게 제일 좋아


두 번째로 정한 우리의 룰은 이른 아침, 퇴근하고 난 직후에 가지는 깊은 시간이다. 원래 나의 아침은 최대한의 잠을 자고 일어나 허겁지겁 준비하고 뛰쳐나간다. 기상시간을 바꿨다. 평소 기상시간보다 30분 이르게. 아무리 더 잔다고 해도 평소보다 최소 15분은 이르게 일어나게끔. 아침에 아랑이와 사냥놀이를 하기도 하고 쓰다듬어주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같이 창 밖을 바라보면서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출근하기 직전에는 아랑이가 좋아하는 트릿이나 템테이션을 곳곳에 숨겨놓고 나간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손만 씻고 아랑이랑 놀아주는 시간을 짧게 10분 정도 가졌다. 그다음엔 씻고 나도 내가 할 일을 하면서 아랑이를 살폈는데 대신에 창문을 열어서 아랑이가 창밖에 들리는 소리를 더 잘 듣고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게 해 줬다. 

여전히 아랑이는 내가 샤워하러 들어가면 보채긴 하지만 가끔 창 밖에 흥미로운 걸 발견하면 우는 걸 멈추고 집중해서 구경한다. 


아직도 아랑이와 맞춰가는 중이다.

요즘 맞춰가는 과정은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지 세 달이 넘어가면서 집에서 일을 할 때 노트북에서 식빵 굽기를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던가 무릎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애로 인해서 업무를 오히려 과도하게 하는 부분을 맞춰본다거나 하고 있다.


나에게는 회사에서 만나는 직장동료가 있고 메신저로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고 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만나러 달려와주는 근사한 남자 친구가 있다. 하지만 아랑이의 세상에는 내가 전부다. 그 짧은 시간들, 겨우 15분 30분 정도의 자투리 시간을 아랑이에게 쏟았을 뿐인데 아랑이는 행복해한다.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아이에게 이 정도의 시간을 쏟는 건 당연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라고 본다.

물론 아랑이는 여전히 내가 씻으러 들어가면 불안해하고 가끔은 컴컴한 밤중에 뛰어다니면서 놀기는 하지만 처음 데려왔을 때 내가 잘못 데려온 건 아닐까 아이를 불행하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잘 자요 나의 고양이 나의 아랑이

다음 글에는 아랑이와 소변 실수에 대해 다뤄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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