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I have to와 I get to사이에서.
몸이 나른하다. 수면시간은 충분한데 왜 이렇게 몸이 나른하지? 이유를 모르겠다. 전날 과식했나? 체크해 보니까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지도 않다. 어제 잠들기 전에 걱정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살짝 늦게 마신 커피 때문인가. 그러기에 저녁에 먹지 말자고 하면서도 계속 찾아 마시게 되는 카페인. 혀를 내두른다. 자면서 꿈을 많이 꿨다. 꿈을 꾼다는 건 숙면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거다. 나는 수면 시간만 채운 거지. 잠에 들었다고 할 수 없었다. 또 전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마음도 전날과 같지 않게 무겁다. 무슨 일일까. 무슨 감정인 걸까. 서둘러 나의 온 생각들을 모닝페이지 노트에 적는다. 아직 무기력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징조만 느껴도 불안해서 해소할 거리를 찾아야 했다. 결국 전날 적어둔 To do list를 체크하고 아침에 모두 해내고 나서야 불안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이내 또 뭘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오후 늦게 커피를 주문했다. 바깥에 나가지 못할 것만 같은 컨디션이었다. 집 앞에 바로 카페가 있지만 작업물을 들고 걸어서 갈 만큼 에너지가 넘치지 않는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이 무기력을 이기고자 무작정 사이렌 오더를 갈기고(?) 꾸역꾸역 (15분 안에 가야 한다!) 옷을 갈아입고 참새 세수만 하고 나갔다 왔더랬다. 그러고 나서 곧 강력한 현타에 빠졌었지. 텀블러도 없다. 손에다 받아올 수도 없고, 머그컵도 좀 그렇고. 공연히 오늘도 굳이 그런 짓을 해야 할까 생각한다.
이럴 땐 오히려 나가서 걸어야 하는데, 자꾸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집에서 쉬기만 하면 죄책감에 휩싸이니까 항상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카페에서도 영어 단어 몇 개라도 외워야 맘이 편하다. 어느새 생산적인 나에 또 중독되어 버린 기분. 그냥 쉰 적이 없다. 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 영어 스피킹 앱을 켜고 엑설런트가 뜨는 것을 보면서 앱을 끈다. 고대하던 해외 간호사 시험 자격증 강의를 결제했다. 책을 보며 어느 정도 따라가려고 하는데, 계속 필요한 것들만 보인다. 언뜻 다이어리 꾸미는 유튜브 채널을 봐버렸다. 예쁘고 자극적이고 사고 싶게 콘텐츠를 꾸몄다. 꼭 그 노트와 볼펜이 있어야 공부가 잘 되는 것이 아니잖아? 쥐고 있던 동아 볼펜을 다시 쥐어가며 강의 내용을 듣는다. 노트에 글씨를 적어가며 되뇐다. 세상에는 자극이 너무 많다. 겨우 참았다. 사실 이 볼펜이나 저 볼펜이나, 쓰이는 건 똑같다.
며칠 전 보낸 알라딘 중고도서 판매금이 계좌로 들어왔다. 오늘의 첫 수익이다. 기분 좋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생각하면서 또 채우고 있지.
어느 의사가 쓴 책에서 우울증이랑 콘서타약만 먹지 말고 밀가루 끊고 나가서 걸으라고 했는데 자취생에게 밀가루나 간단한 가공식품 말고는 간단하게 해결할 음식이 별로 없다. 자취생에게는 부담스러운 부피를 자랑하는 음식뿐이다. 그렇다고 대형 냉장고나 공용 냉장고도 없다. 이 의사가 고시원 생활을 해봤을까? 알 수 없지만 괜히 삐딱해지기도 한다.
나가는 일조차 일로 인식하면 버거워진다. 갑자기 내 주위를 둘러싼 책들이 거대한 돌덩이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주변이 녹기 시작한다. 쌓여 있는 리뷰용 도서들, 배우고 배워야 할 브랜딩 도서들 틈바구니와 끝없이 일어나라 도전하라 뛰어들라 미쳐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은 자기 계발서에서 허우적거린다. 조금 있다가는 도착 예정인 물건들이 쌓이겠지. 곧 있으면 생일이라 이곳저곳에서 보내준 생일 선물들이 문자 알림으로 울리고 있다. 쓸데없는 스팸메시지도 시끄러워서 비행기 모드로 바꾸었다.
오후까지 시간을 느리게 보내다가 결국 바깥으로 나왔다. 집이 주는 무기력함이 싫다. 사실 우리 집보다는 훨씬 더 깔끔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 읽고 공부하고 싶다. 나가서 할 것들을 골라내는 일도 전쟁 같은 일이다. 일단 어찌어찌 정해서 나온다. 오늘 읽을 책은. 지나영 박사가 쓴 Core mind였다. 밤에 잠들기 직전 한 챕터씩 읽다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책을 덮어버린(?) 책이었다. 나는 중간에 마음에 들거나 좋은 표현이 나오는 책은 느리게 읽는 편이다. 끝까지 소화시켜야 직성이 풀려서이다. 오롯이 내 문장으로 만들어야 그 다음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또 잊어버릴까 봐 다시 앞으로 가서 또 읽는다. 코어 마인드라는 책이 그랬다.
Finally, i get to go to work!
드디어, 나 일할 수 있게 됐어!
지나영 박사는 정신과 임상교수로 일했다. 그러던 중 난치병을 진단받고 일을 잠시 쉬게 된다. 회복하면서도 미국에 있는 환자들을 생각했다. 복귀하던 날, 그녀는 항상 마주하던 풍경을 바라보며 기쁜 마음에 눈물을 흘린다. 위 문장이, 그녀가 업무에 복귀하던 날 출근길 풍경을 보며 울면서 한 말이다. 그녀의 심경이 느껴져 문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무엇인가 하기 위해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는데, 벽에 가로막히고 더 이상 갈 길이 없다고 믿고 걷기를 멈췄다면, 그녀는 아마 이 책을 쓰지 못했겠지? 병실에 누워서도 좌절만 하지 않고, 이. get to를 실천하며 틈틈이 초고를 쓰지 않았다면 첫 작품도 , 이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글을 보고 깨달았다. 나는 모든 일을. get to 하기보다 have to 하는 자세로 살았다는 것을.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억지 주문을 걸었기 때문에, 성취는커녕, 잃기만 했던 것 아닐까? 건강도 말이다. 벌써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 것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동안 나도 저 말을 되뇌며 get to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오늘은 바깥에 나올 수 있는 내 건강한 다리에 감사하면서. get to 하는 삶에 복귀해 본다. 하지 못한 일들은, 천천히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직 하루는 충분히 남았고 한번 더 시작할 수 있으니까. I get to do one more time! 한번 더 하게 된 게 어디야!.
영어표현 ‘get to’에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는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신나서 하는 표현이 바로 ’I get to~’입니다. 운 좋게 그 일을 할 기회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코어마인드 by지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