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ennjoy May 02. 2023

화병

Thanks for Things(땡포띵) - 네 번째 물건


문득 산다는 게 지겨워졌을 때


나는 화병을 샀다. 예쁜 꽃을 사서 꽂고 물을 줬다. 예쁜 꽃은 키우기 힘들었다. 한때 보기만 해도 예쁘던 꽃잎과 줄기는 며칠 지나니 수분을 잔뜩 머금어 촉촉해지다 못해 문드러져버렸다.


키우기 힘든 마음이 있다. 예쁜 마음을 담아두고 물을 줬다. 한때 가진 것만으로 예쁘던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안해지다 못해 문드러져 버렸다.


텅 빈 화병이 있다. 꽃에서 새어나온 진물이 표면에 덕지덕지 눌러붙어 더이상 아름답지 않은. 태가 남은 화병도, 그 안에 담긴 물과 꽃도,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


문득 산다는 게 지겨워졌을 때


나는 화병과 꽃과 물, 꽃의 진물과 그에 담긴 꽃의 기억을 쳐다도 보지 않기로 했다. 생각도 않기로 했다. 그렇게 텅 빈 화병이 되기로 했다.


이전 05화 책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