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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nnjoy Aug 06. 2023

칫솔

Thanks for Things(땡포띵) - 다섯 번째 물건

06:00 알람을 듣는다, 눈을 떴다 다시 감는다

07:00 알람을 한번 더 듣는다, 다시 눈을 감는다

07:30 눈을 뜨고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화장실에 들어가 씻을 준비를 한다.

칫솔을 꺼낸다.

남색과 회색 중 어느 게 내 것이었더라,

잠시 헷갈리다가 회색을 꺼내 치약을 짠다.


양치를 한다.

양치를 하는 동안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 집엔 내 것이 아닌 게 너무 많다.


한 동안은,

각자의 칫솔을 꺼내 함께

거울을 마주보며 양치를 하기도 했었고


한 동안은,

손에 샴푸를 덜고 약간의 물을 적셔

거품을 낸 뒤 서로의 머리칼에 부비기도 했다


한 동안은,

각자의 채비를 마친 뒤

하루를 시작하러 나서기 전 찰나가 아쉬워

서로를 껴앉고 뒹굴기도 했다


오늘 8월 1일,

08:00 움직이기 싫은 몸을 일으키고서

회색 칫솔을 들어 양치를 했고


09:00 늘 지나치던 뚝섬유원지역의

강과 햇볕을 보며 그래도 나름 살만하다 느꼈고


09:30 하루를 시작하고

12:30 의미 없는 대화로 배고픔을 채웠으며

15:30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가

18:30 오늘도 잘 지나갔다 위안하고


다시 열차에 몸을 실어

뚝섬유원지의 강과 햇볕을 보며

너가 없음에도 나름 살만하다 느꼈다


오늘 끼니를 때울 장거리를 사들고 와

냉장고에 야채를 채워넣기도 전에

소파에 누워 음악을 틀었다


늘 같이 들었던 노래도 있고

같이 들었던 적 없는 노래도 있고


언젠가 함께 듣고 싶은 노래도 있다


사온 장거리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이 하루가 내일도, 모레도

1년 뒤, 5년 뒤에도 같을 것이란 걸

다시 한번 체감했을 때


삶이 힘들어 떠나간 당신의 하루는

이보다도 더 지긋지긋했겠구나


아무도 모르는 밤의 시간이 왔을 때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끝끝내 술잔을 기울였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숨이 막히고

그래서 한 잔 더 기울인 술잔엔

끝끝내 마음 같지 않은 하루가 남을 뿐


나는 늘 그대가 그립고

내가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내가 낄 틈도 없었고 또 내가 필요도 없었던

당신의 그 힘겨운 순간순간에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없으니


매일 그런 무력함을 수긍하면서

그저 살아야지, 살아야지


그렇게 모두가 살아가는 거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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