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당신은 내가 눈을 좋아하던 걸 기억할까>
하염없이 눈이 쌓이는 걸 구경했어.
얼마나 앉아있었는지도 모르게 하염없이.
그러다 외풍이 들고 있었는지
갑자기 발끝이 시려오는 느낌에
‘탁’하고 시간이 느껴졌어.
K는 이 새벽을 잊지 못한다.
유독 잠이 쏟아졌던 주말, K는 장장 밤 열한시까지 낮잠 아닌 낮잠을 잔 뒤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게 되고 말았다. 쏟아지는 약 기운에도 눈은 감기지 않아, 생각하지 말고 눈을 감자, 생각하지 말자, 100번은 되뇌었을 때, 그녀는 마침내 잠에 들길 포기한다.
이런 새벽은 저 깊은 곳에 숨겨놨던 기억들을 이따금씩 들춰보게 한다. 어제, 한달 전, 반 년 전, 1년 전, 3년 전…. 몽롱한 약 기운에 그 때의 시간들이 지금 K의 침대로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는다. 그러면 어딘지 모르게 포근하고 뜨거워져서 몸에 돌던 한기가 가신다.
어제의 그녀는 술잔에 외로움을 한가득 부어 마시고선취한 채로 잠이 들었고
한달 전의 그녀는 또다시 가슴이 욱신거릴 정도로 많은 것들이 그립기 시작했다.
반년 전, 그녀는 이따금 행복하고도 마음이 저렸고
1년 전, 그녀는 깊은 물에 잠겼다.
2년 전 언젠가, 잠시나마 그녀는 온전히 행복했으며
3년 전, 그녀는 아무한테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다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침대에 누운 그녀 곁을 채운 무형의 존재는 그녀의 등을 따뜻하게 뎁히며 담요처럼 그녀를 꽁꽁 덮어주었지만, 이내 어둑하게 몸집을 불리며 그녀를 잡아먹고 말았다.
그 안에서 그녀는 도리어 편안하다. 한 줌의 빛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그 곳에서 그녀는 마침내 안식을
찾았는데, 그 때 발끝에 닿은 창문의 찬 기운이 섬칫-
그녀를 깨우고 말았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무형의 존재가 남겼던 마지막 말을 되뇌이며 K는 오늘을 시작한다.
K는 그 어느 것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