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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nnjoy Aug 05. 2023

답가

박준 <그해 봄에>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그해 봄에

나는 당신과 마주앉아 통닭을 먹었다


나는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비출 검은 테가 못내 신경쓰였다


나의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사랑하게 될까 두려운 당신이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당신이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나를 살피는 당신의 말이

죽을듯이 두려웠던 나는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위로 하나에 나는 기어이

당신을 사랑하고 말았으니


그래 정말,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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