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현관에 들어왔다
무더운 7월 말 어느 날 집에 들어오는데 아파트 공동현관 근처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삐약삐약' 내지는 '삐용삐용' 정도의 느낌이었다. 계단 옆을 보자 주차된 차량 바퀴와 경계석 사이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보였다. 기껏해야 세 달 정도의 월령으로 보이는 크기에 예쁜 삼색이였다.* 어미나 형제와 떨어졌는지 쉬지 않고 울어대고 있었는데 도망가지 않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우는 꼴을 보아하니 이미 사람 손을 탄 고양이였다. 매일 집에서 드나들며 동네 고양이들을 봐왔기에 단박에 처음 보는 아이임을 알았다. 얼핏 봐도 깨끗하고 겉보기엔 건강했다. 쪼그려 앉아 조심스레 내민 주먹에 코인사를 건네 왔다. 가방에서 고양이 간식을 꺼내 주니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간식을 다 먹고서도 길을 나서긴커녕 계속 울며 보채고 발걸음을 옮기면 따라오는 통에 손가락으로 장난을 걸자 금방 놀이 모드가 됐다. 짝꿍이 집에서 나무젓가락에 리본을 묶어 낚싯대를 만들어와 한동안 놀아줬다.
"누구를 부르는 거니?", "너는 어디서 왔니?" 물어봐야 고양이가 대답 할리는 만무. 어느새 구면인 동네 성묘가 바로 지척에 다가와 새끼 고양이를 살피고 있었는데 작은 고양이가 열심히 하악질을 해댔다.** 최근 출산을 했다는 걸 알았기에 혹시 다가온 성묘의 새끼일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지나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새끼 고양이에게 눈길을 보내고, 우리에게 아는 고양이인지 묻기도 했다. 가까이에 있는 성묘가 어미인가 생각했다 하악질 하는 모습에 "아닌가 보네." 하며 멀어지는 사람들.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기본적인 용품도 구비했던 우리는 순간 어찌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흔히 말하는 집사 간택이나 냥줍의 전형적인 상황 아닌가.
한참을 고민하다 '제 발로 집에 들어와 눌러앉으면 같이 살아야지'생각에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지도 모를 고양이를 구조라는 이름으로 덜컥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게 맞는가 하는 고민도 있었고, 무엇보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앞서 '발걸음을 옮겼다.'라고 표현했는데 그 발걸음은 사실 몇 걸음 되지 않았다. 우리 집은 복도식 아파트 1층에 있었고, 그중에서도 공동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세대였기 때문이다. 경비실을 끼고 복도로 들어가며 뒤를 돌아봤는데 작은 고양이가 계단 맨 위까지 올라와서 계속 삐약삐약 울며 쳐다보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해가 길어 아직 밝았지만 저녁시간이었어서 밥 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고양이랑 놀아주느라 시간도 훌쩍 지나 배고픈 와중에 밥 준비를 하면서도 신경은 계속 밖으로 쏠려있었다. 코너를 돌아설 때 봤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작은 새끼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과 똘망똘망한 눈빛, 그리고 끝없이 부르는 목소리에 제대로 저격당한 것이다. 결국 밥을 먹기 전에 다시 집 앞에 나가보니 예의 그 자리에서 똑같이 울고 있다 반가운 듯 계단을 뛰어올라왔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경사로 담장을 오르내리며 어찌나 발랄하게 장난을 치던지. 돌아올 대답도 없고 해 봐야 소용없는 인간의 말을 몇 마디 걸다 다시 집으로 돌아섰는데 고양이가 제 발로 나를 쫓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서 고개를 내밀어 보니 경비실 문 앞에 앉아서 나를 올려다본다. "같이 살고 싶으면 들어와." 얘기하고 문을 조금 열어뒀다. 잠시 후 문 앞에 나타난 고양이는 문지방 냄새를 조심스럽게 맡기 시작했다. 이내 앞발을 현관 안에 들인 찰나 공동현관을 드나드는 주민 소리에 놀라 밖으로 도망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일부러 부르거나 꼬시지 않고 집안에서 진득이 기다렸다. 현관 안의 신발 냄새를 맡기도 하고 문 앞에 다소곳이 앉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문지방을 넘어 집사를 간택하는 순간이 내 인생에 찾아오다니! 조금 급작스럽긴 해도 이미 마음먹었던 일이니 '이렇게 묘연이 닿나' 싶은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 소리에 놀라 호다닥 도망치곤 돌아오지 않았다. 어떡하지 고민하던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아쉬움만큼 현관문을 조금 열어둔 채 방금 일어난 일을 반찬삼아 얘기하며 저녁을 먹었고, 바깥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온 마음이 바깥에 있었던 나는 식후에 우산을 챙겨 나갔는데 공동현관 근처 어디에도 새끼 고양이의 흔적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 이곳저곳 기웃거려 봐도 보이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멀리 도로변 화단에 홀로 서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바닥에 이동장을 두고 있기에 집에 찾아왔던 고양이 때문이리라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옆 동에서 개와 함께 산다는 그 사람은 산책 나왔다 다리를 저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해서 포획을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리를 전다'고? 가로등 불빛에 보이는 비에 젖은 작은 고양이는 분명 몇십 분 전에 우리 집에 왔던 깨발랄한 그 고양이가 맞았다. 그런데 방금 전의 에너지는 다 어디 가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아닌가. 비록 짧지만 인사도 주고받고 장난도 쳤던 사이라 생각해 주먹으로 인사를 건네니 황급히 물러서는데 정말로 뒷다리 하나를 제대로 딛지 못했다. 내가 밥을 먹는 그 잠깐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당혹감과 함께 일종의 죄책감이 들었고 몇 시간 동안의 고민이 무색하게 어떻게든 치료하고 함께 살아야겠다는 굳은 확신이 생겼다.
전화 연락을 받은 짝꿍도 황급히 고양이 간식을 챙겨 나왔고, 화단에서 포획을 시도하던 사람의 남편도 전화를 받고 합세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새끼 고양이 포획을 시도하기를 수십 분. 이 화단, 저 화단으로 옮겨가고 이 덤불, 저 덤불에 숨고. 동네 스포츠센터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고 길 까지 건너, 원래 보금자리임이 확실한 곳에 다다른 것까지만 확인하고 포획에는 실패했다. 반바지 아래 무릎과 덤불 속 고양이를 잡으려다 물려 구멍 난 손에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공허한 마음으로 가까운 응급실을 찾았다. 어찌 된 일인지 물은 의료진은 다친 고양이 잡으려다 그랬다니 함께 안타까워하며 이런저런 주사를 놔주었다.
이날 밤 마음이 여러모로 복잡했다.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고 고양이를 다치게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깨발랄하던 새끼 고양이가 밥 먹는 사이 다친 다리를 절뚝이며 비를 맞는 모습은 왠지 내 탓인 것 같았다. 전부 다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 일부는 그런 것 같았다. 갑작스럽네 어쩌네 고민할 게 아니라 그냥 데리고 들어왔으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 어차피 고양이와 함께 살 준비를 오랫동안 했으면서 왜 살면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 순간에 그렇게 멈칫했을까. 심하게 다친 건 아닐까. 비가 쏟아지는 오늘 밤은 잘 견뎌낼까.
다음날 이사 갈 집을 알아보러 다른 도시에 다녀와 늦은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 단지 상가 고깃집 나무데크 아래에서 삐약삐약 우는 새끼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가 쪼그려 앉으니 작은 삼색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 '삼색이'는 흰색, 주황색(갈색), 검은색(회색) 세 가지 색이 코트에 섞여있는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다. 유전적으로 거의 다 암컷이다. 아주 드물게 수컷 삼색이가 있는데 고양이 전문 수의사들도 수십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고 한다.
** '하악질'은 고양이가 위협의 의미로 입을 크게 벌리고 '하악'하는 소리를 내는 행위를 말한다.
- 이 글을 시작으로 매거진 '묘한 묘연'에 고양이 에세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01화. 집사 간택의 순간 -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현관에 들어왔다
02화. 갑자기 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03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04화. 마루 밑 고양이에서 책장 밑 고양이로 - 묘생 역전의 시작
05화. 그렇게 식구가 된다 - 고양이가 집에 온 첫날
06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1 -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